나의 삶/나의 생각

대규모 국책사업에 대해

지오마린 GeoMarine 2008. 1. 7. 12:05

얼마 전 정부는 시화호에 대해서 담수화 포기를 결정했다.

깨끗한 물을 담수하여 농공업용수를 쓰고자 했던 당초의 계획이 완전히 뒤바뀌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 시화호는 서해안의 조석(밀물과 썰물)에 따라 바닷물을 조절하여 해수호가 될 것이다.

앞으로의 희망이 있다면 시화방조제 축조로 얻어진 토지이용과 해수호를 통해 그나마 남아있던 갯벌이 되살아났으면 하는 바램일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농공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또 다른 용수를 찾아 개발해야 하는 경제적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다.

 

간척사업 농어촌진흥공사가 펴낸 책자『한국의 간척』에서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라고 했다. 간척사업은 정책 입안자나 건설 기술자들에게 대단히 매력 있는 사업이다.

즉, 서해안은 간만의 차가 커서 갯벌(간척지)이 잘 발달되어 있고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다. 연안에는 많은 섬이 있어서 매립 면적에 비해 방조제 길이가 짧고 공사를 단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또한 태풍이나 해일에 의한 해수면의 상승도 네덜란드나 일본보다 낮아서 방조제를 높이 쌓지 않아도 되며 방조제 축조에 필요한 돌과 흙도 인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등 간척사업에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갯벌의 토질도 좋고 배수도 용이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인구에 비하여 국토가 매우 협소하고 그나마 산지가 3분의 2가 넘는 등 실제 사용 가능한 국토 면적이 26%에 불과하기 때문에 해면 매립을 통한 국토의 확장은 바람직한 일로 간주되어 왔다. 급격한 산업화에 따라 공업용지에 대한 수요는 증대하는 반면 농업 용지는 감소하고 있는 현실에서 "비용이 저렴하다" 생각 해안 개발은 즉 바다를 메워서 육지를 만드는 것은 자연과 싸워서 이를 극복하는 "인간승리"라는 상징적 의미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경제적, 상징적, 자연적 조건 때문에 서해안은 네덜란드와 더불어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간척이 활발한 곳이었다.

특히 1960년대 국가 경제 개발의 목표 아래 간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에는 남양, 아산, 삽교천방조제 공사가 진행되었고, 1980년대에는 영산강, 대호, 금강방조제 공사를, 1990년대 초에는 영암방조제 공사를 완료하였다. 1994년 1월에는 세계 간척사상 유출입 조석량이 가장 클 뿐 아니라(9억㎥) 네덜란드의 전문가도 회의적이었던 시화방조제 물막이 공사를 "우리가 개발한 독창적 구조와 공법으로 성공"시켰다. 그리고 현재는 "지난 30여 년 동안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유출입 조석량이 시화호의 2배나 되며(18억㎥) 길이도 세계에서 가장 긴 새만금방조제(33km) 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 공사가 완공될 경우 여의도 면적의 1백 40배에 해당되는 1억2천만 평의 새로운 국토가 조성된다고 한다.

간척사업은 농지 확대를 통한 식량 자급률의 증대와 산업화 및 도시화 과정에서 급증하는 토지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아왔다. 이 과정에서 간척사업의 시행이 반드시 갯벌을 심각하게 파괴하거나, 재생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수질오염에 대한 우려 등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화 간척지의 물막이 제방공사가 완료되고 난 후부터 갯벌과 수질의 오염문제가 크게 대두되면서 간척사업으로서의 잉여토지에서 얻는 수익보다 자연 갯벌에서의 수익이 더 높다는 경제논리와 환경문제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고, 전라북도 군산과 부안을 잇는 새만금간척지에 대해서도 시화호와 같은 이유로 많은 지적을 받고 있다.

시화간척지 시화호는 서울에서 서남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으며 주변에는 인천, 수원, 안양 등의 도시가 인접하고 있다. 행정 구역상으로는 경기도 시흥시, 화성군 및 안산시에 걸쳐 있다. 이 지역에 대한 간척사업은 1960년대부터 그 가능성이 검토되었으며, 한국수자원공사에 의해 1987년 6월부터 사업이 진행되어 물막이 공사가 완료되었다.

당초 계획에 의하면 시화지구에는 농경지와 공업단지, 그리고 용수를 공급할 깨끗한 담수호가 조성될 예정이었다.

즉, 시화지구 개발사업으로, 첫째, 1백69km에 달하는 국토 면적이 확장되고 1백1km의 해안선이 단축될 것이며, 둘째, 시화지구는 대륙과 대양을 향한 서해안 공업의 전초 기지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며 수도권 공장 1천6백여 개를 공업단지에 유치함으로써 수도권의 인구 분산 효과를 거두는 것은 물론 고용 증대와 관련 산업에 대한 커다란 파급 효과를 기대하였다. 셋째, 방조제 축조로 매년 발생하는 약 1억 8천만㎥의 담수를 이용하여 91.1㎢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 대단위 기계화 영농 단지를 개발할 예정이었다. 넷째, 서해안의 여러 섬들을 연결하는 방조제는 교통의 편리는 물론 아름다운 서해안 경관을 이용한 새로운 관광 명소로 각광을 받게 됨에 따라 낙후된 지역의 경제 및 문화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다섯째, 인근 안산시와 연계 개발로 약 1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단 배후 도시를 건설하여 기존의 수도권 도시들의 인구 과밀 현상을 완화할 것이 기대되었다.

시화호 주변은 전형적인 노년기 지형의 지역으로서 표고 50m 이하인 곳이 약 75%이고, 2백m를 넘는 곳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다. 해안선은 리아스식 해안이 잘 발달되어 있었으나 간척사업으로 크게 변하였으며 그에 따라 해수의 흐름이 바뀐 것은 물론, 자연적인 침식 및 퇴적 작용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또한 이로 인하여 갯벌의 환경도 변화를 겪었다.

시화호로 흘러드는 하천은 대부분 물이 흐르는 거리가 짧은 소규모 하천으로서 오염 물질의 정화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공장폐수와 생활하수 등이 처리되지 않은 상태로 유입되고 있다. 시화호가 조성되면서 일어난 변화 중 중요한 것은 과거 바다였던 곳이 담수호로 변하여 겨울철에 수면이 얼어붙기 시작함에 따라 주변 지역에 국지적인 기온 하락이 발생하였다는 사실이다.

또한 방대한 갯벌이 마르면서 바람에 의해 분진이 날려 주변 지역에 각종 피해를 가져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환경변화가 주변의 농업과 주민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혔는지에 관해서는 별도의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그 가능성은 사업을 시행하기 이전에 행하는 환경영향평가 단계에서 충분히 예측됐어야 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시화지구 간척사업은 어떻게 보면 오래 전부터 논의되었던 일이었으나 구체적으로 사업이 결정되어 실행에 옮겨진 기간은 매우 짧다. 즉, 일반적인 가능성이 논의되었을 뿐 구체적인 계획과 설계를 위한 조사기간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간척사업의 대상지에 대한 조사는 이미 일제시대부터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인 조사사업이 시작된 것은 1962년으로, 네덜란드의 기술 용역단이 현지답사를 통해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제1차 조사이다. 이후 건설부의 "해안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제2, 제3, 제4차 조사가 실시되었는데, 1972년에 제출된 최종보고서에 의하면 1백49개 지구 27만 6천ha가 간척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농수산부 주관 하에 농업진흥공사(현 농업기반공사)도 1975년과 1976년 조사를 실시한 결과 개발 가능지를 63만 5천ha로 보고하였고, 1979년 건설부 주관 하에 국토개발연구원의 조사는 개발 가능 총면적을 72만 7천ha로 추정하였다.

농업진흥공사는 1980년 서남해안에 대하여 재조사를 실시하였으며 1987년부터 1989년까지 3개년에 걸쳐 농지조성뿐 아니라 종합개발을 위하여 토목, 수문 및 해상, 환경, 토양, 토질 및 재료, 농업경제, 사회환경 등 7개 분야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였다.

한편 국토개발연구원은 1984년에서 1985년에 걸쳐 해안 매립 장기 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타당성조사를 실시하여 전국 1백55개 간척 및 매립 대상지 중 해안개발의 잠재력을 평가하여 48개 지구를 선정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각 용도별로 우선순위가 높은 10개 지구를 확정하였다. 그 중에서도 시화지구는 수도권에 위치하여 공업용지의 수요가 있고, 반월 및 인천 남동공단에 인접하고 있어 사회 간접 자본의 추가부담이 적었기 때문에 가장 타당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선정되었다고 한다.

즉, 시화호 인접지역의 주민들은 "국토 공간상 입지 여건을 볼 때 저렴한 투자비로 개발할 수 있는"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간척사업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시화지구는 이미 1975년 농업진흥공사의 서남해안 간척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1977년 6월 대통령의 반월 신도시 건설 현장 순시 때에도 그 가능성이 거론되었다고 한다.

한편 한국수자원공사에서도 1984년 11월부터 본격적인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관계 기관과 협의를 계속해 왔다. 1985년11월 11일 한국수자원공사 반월건설 사무소에서 시화지구 개발 타당성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1985.10.11 - 1986.4.8) 감독 업무를 수행하였고, 1986년 6월에 시공사로 현대건설이 물막이 공사를 시작하였다.

 

새만금 간척지 새만금 간척지는 전라북도 군산시, 김제시, 부안군에 걸쳐있는 세계 최대규모의 간척사업으로서 새만금 사업 구상이 구체화된 것은 5공 시절인 1986년이었다.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호남 지역을 푸대접한다”는 지역 비난여론이 비등하자 당시 정부와 여당은 전북 지역에 대규모 지역개발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전북 출신인 황인성(黃寅性) 농림수산부 장관은 87년 5월12일 새만금 사업의 모태인 ‘서해안 간척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민정당이 노태우(盧泰愚) 대표를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의 후계자로 확정하고 사실상의 선거운동에 돌입한 시기였다. 그러나 경제기획원은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막대한 사업비를 들여 농지를 조성하는 것보다 식량을 수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노태우 후보는 87년 12월10일 전주 유세에서 “서해안 지도를 바꿀 새만금 방조제 축조사업을 임기 내에 완성해 전북 발전의 새 기원을 이루겠다”고 공약했다.

사업계획의 요지는 2000년대 서해안 시대의 전초기지로서 새만금간척 종합개발을 실시하여 새 국토를 조성(1억2천만 평)하고, 대단위 기계화 영농단지·국가공단 조성, 항만도시 건설, 관광단지 건설, 새만금 담수호(3억5천만 톤 저수)를 조성하여 농공업용수로 사용하고, 육운 66km를 단축한다는 방대한 구상이 시작되었다.

농어촌진흥공사(사장 文東信)가 1990년11월에 공사 착수한 이래 7년이 지난 이 사업은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에서 전북 옥구군 고군산도를 거쳐 군산시 비응도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로서 길이가 33km에 달하며 조성되는 면적만도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하는 약 1억2천만 평을 창출하는 건국이래 최대규모의 간척사업이었다.

새만금사업은 1986년 김제, 옥구, 부안지구를 통합한 종합개발계획을 구상하게 되었고, "88년에서 "89년까지 기본조사 및 기본계획을 수립, "90년에서 "91년까지 외곽시설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91년 10월22일 공유수면 매립면허를 득한후 "91년 11월 28일 대통령 및 전북도민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과 함께 1호 방조제를 착공하였으며, "92년 6월에는 제 2,3,4호 방조제를 착공하여 2년 8개월만인 94년 7월25일 1호 및 3호 방조제 끝막이 공사를 한 바 있다.

그동안 4개 방조제 연장 33km중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와 옥구군 남가력도를 잇는 길이 4.7km의 1호 방조제와 옥구군 옥도면 신시도와 야미도를 잇는 길이 2.7km의 3호 방조제는 이미 "94년 7월에 끝물막이 공사를 마치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며, 나머지 2호 및 4호방조제(연장 25.6km) 공사도 진행 중에 있다. 이 사업이 완료되면 농·어업 용수 및 생·공업용수 등으로 연간 10억 톤의 수자원을 이용할 수 있어 전북 서부 내륙지역의 만성적인 용수 부족현상이 해소될 수 있다고 한다.

새만금 지구는 지리적으로 중국 청도항까지 580km밖에 되지 않아, 대중국 및 동남아 교역의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고, 대륙권 무역기지화에 유리하며, 백제 고도권, 변산국립공원 및 해양관광권(고군산군도)을 연계하는 국제적인 휴양관광단지로 개발이 가능하게 되며, 또한 고군산군도는 수심이 20~25m로 10만톤급 선박의 자유 입·출항이 가능하며, 방축도 등 주위의 섬들이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천혜의 항만 입지여건을 갖추고 있어, 새만금지구 사업수행으로 고군산군도가 연육되면 연간 5천만 톤 규모의 새로운 국제항 개발여건이 성숙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만경, 동진강 유역 12,000ha의 수해 상습지가 고질적인 홍수 및 침수피해로부터 벗어나게 되며, 새로운 4차선 해안도로 35km가 개설되고, 기존의 해안선이 66km나 단축되어, 전북 서부지역 육운 개선 및 교통편익이 증진될 것으로 연 1,399만 명의 고용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어, 지역균형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대책 정부는 당초 금년 2월 21일 새만금 간척사업의 재개여부를 결정,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그 시기를 한달 늦춰 3월말 최종 결정키로 했다고 지난 19일 밝혔다. 정부가 지금까지 1조1천3백85억 원을 들여 추진해온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정부의 최종결정이 발표 이틀을 앞두고 돌연 연기돼 새만금의 처리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병우 총리실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지난 15일 열린 당정회의에서 갯벌과 수질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검토가 더 필요하다는 의견이 모아져 한 달간 추가 검토작업을 벌인 후 3월말 결정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환경단체들은 새만금사업의 전면 백지화를 다시 요구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 데에는 새만금 간척지의 수질문제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새만금으로 흘러드는 강으로는 동진강과 만경강이 있는데 이중 만경강의 수질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하여 정부는 만경강은 상류지역에 하수 처리시설과 축산분뇨 개별처리시설 등을 설치하면 인(P)함유량을 0.120ppm(기준치 0.100ppm)에서 0.103ppm까지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인(P)성분의 경우 다른 나라에서는 농업용수로 쓸 경우 총량제한이 없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주무부처인 농수산부의 한 관계자는 "인(P)은 농수로 쓸 경우 양분역할을 하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제한규정을 두지 않으며 만경강에 포함된 인의 양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환경단체에서는 갈수기 때 수질이 곳에 따라 더 나빠질 수 있고, 갯벌에서 얻는 경제적 이득이 농업생산에서 얻는 경제적 수익보다 3.3배가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가 첨예하게 대립된 것이 정부의 새만금발표 시기를 한 달간 연기하게 된 이유인 것 같다. 명목상으로는 일본과 네덜란드 등 간척사업 경험이 많은 외국의 갯벌관리 실태와 친환경적 간척사례 등을 조사하기 위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현지를 조사할 필요가 있다며, 국무총리실 의 수질개선기획단에서 그 결정에 대한 조율을 좀더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시화호와 새만금은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서로 입지조건이 달라 수질에는 문제가 없을 수도 있고 환경단체가 주장하는 것처럼 환경재앙 지역으로 될 수도 있다.

시화호는 유입하천의 유량이 담수규모에 비하여 터무니없이 적고 유입수계가 공단지역으로 둘러싸여 통제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96년부터 제기해온 시화호의 수질문제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환경문제의식을 고취시켜 많은 교육적 효과를 얻었다면 분명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결과일 것이다.

이제 시화호에서 얻은 교훈을 우린 다시금 반복하지 하지 말아야 하고 이곳에서 얻은 많은 환경지식과 기술을 발전시켜 새만금에서 만큼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정부나 환경단체의 주장은 모두 옳다. 반드시 제2의 시화호를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에서는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

그러나 방법이 다르다. 환경단체에서는 공사를 중지함으로써 환경생태계를 복원하자는 주장이고, 정부는 시화호와는 입지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수질에는 별문제가 없고 기존에 투입된 많은 경제적 부담을 당초의 계획대로 완료함으로써 기대효과를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시화호나 새만금 간척사업은 계획되고 추진된 과정이 경제논리로 문제를 접근하지 않은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대단위 국책사업이 통치 수단으로 기획되고 이벤트성 사업으로 추진됨으로써 자연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엄중한 벌이 내려진 것 같다.

환경문제를 정치적 판단이나 통치의 목적으로 시작해서는 어떠한 결과가 오게 되는지 잘 알려준 것으로 정통성에 대한 문제가 야기된 정부일수록 대단위의 국책사업이 추진되어 왔었고, 6공화국을 들어오면서 건국이래 최고의 사업이라는 고속철도건설, 국제화를 부르짖으며 준비된 청주국제공항, 그리고 새만금간척사업 등이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추진되었고 그 무리한 부담을 다음 정부에서 국제통화기금(IMF)에 구걸해야 하는 상황까지 오게 만든 것은 아닐까.

이제 쾌적한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환경문제는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될 시급한 문제이다. 숨차게 달려왔던 지난 시절에서 이제 미래를 내다보고 후손들에게 깨끗하고 윤택한 국토를 남겨주기 위해서는 정부도 환경단체도 좀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대안을 마련해야한다.

또한 어떠한 주장과 결정을 할 때 철저하게 경제적 원리에 의해서 결정되고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한다.

자연 환경적 가치와 개발에 대한 가치를 엄격하게 조사 분석하여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경제적 가치를 염두해 두고 앞으로의 새만금에 대한 판단을 추진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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