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fia(마피아)와 Santa Lucia(산타루치아) 유래♧
제주도의 14배의 크기인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 시칠리아 섬은 이탈리아의 남쪽 끝에 있고 북아프리카에 더 가깝다.
고대 지중해 해상 교통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외세 침입을 받았던 지역이다.
화산섬으로 비옥하였던 시칠리아섬은 오랜 옛날부터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붙었던 지역. 예수탄생 그 훨씬 이전부터 고대 그리스도시국가들과 페니키아의 세력 각축장이었고 로마와 카르타고간에 포에니 전쟁의 원인이자 무대였다.
로마제국의 식량 창고 노릇이 끝난 뒤에는 비잔틴제국의 소유물이었다가 다시 이슬람 교도들의 사라센 제국 통치를 거쳐 바이킹 지배까지 받았다.
독일의 호헨슈타우펜 가문과, 프랑승 앙주 가문 뒤를 이어 독립전쟁 덕분에 시칠리아 통치자로 나선 스페인 아라곤 왕국 이후도 이탈리아 사보이 왕국, 스페인, 나폴레옹의 프랑스, 이탈리아 통일까지 수많은 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 시칠리아에서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치보기와 네트워크라는 독특한 문화가 자리 굳혔다.
외세 침입을 받으면 남자들은 거의 죽거나 노예로 팔려가고, 여자들은 강간을 당한다.
시칠리아 사투리로 '불쌍한 내 딸'이란 말의 의미가 바로 '마피아'였다고 한다.
강간당하는 딸을 지켜보면서 엄마, 아빠가 외쳤던 울부짖음이 '마피아'였던 것이다.
불쌍한 내 딸을 지키기 위해 시칠리아 주민 스스로 무장을 해야만 했다. 여기에서 지하 비밀결사 조직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고, 이 비밀결사가 마피아가 된 것이다.
마피아 조직은 자기를 지키고, 딸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이웃을 지키기 위한 자위대 성격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믿을 데는 자기 밖에 없었고, 그러자니 주변 동지들과 피를 나누는 맹약을 할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마피아는 이탈리아에서 700여 년의 역사가 있다.
나폴리를 비롯한 남부 이탈리아는 수백 년 동안 거의 마피아적인 협객 (俠客) 정서가 지배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가리발디가 1800년대 중반에 전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400여 개 도시 국가들로 나뉘어 군웅할거를 하던 나라였기 때문에 전국적인 치안 조직이 없었다.
남부 지역은 마피아의 행동 양식과 정서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이탈리아는 수백 년간 이 마피아가 지배를 하는 사회였다.
정부 공권력을 대신해 마피아가 그 역할을 수행했다.
이 마피아를 때려 부순 인물이 무솔리니다.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마피아 소탕 작업에 들어갔다.
마피아조직들이 무솔리니에게 쫓겨나면서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미국으로 탈출했던 장소가 바로 산타루치아 부두였다.
미국으로 가는 배는 여기에서 출발을 했다. 나폴리 해안의 항구가 산타루치아다.
노래 ‘산타루치아’는 마피아들이 정든 고향땅을 떠나면서 부르던 노래였다.
마피아들을 극도로 증오하였던 뭇솔리니에 의해 감옥에 대거 갇혔던 마피아는 연합국 진군에 협조하며 다시 살아났다.
전후에도 미국 및 연합국은 이탈리아에서 좌파의 득세를 막기 위해 마피아 조직원이 기독민주당을 지원하는 구도를 만들었다.
오늘날까지 이탈리아 정·재계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마피아 유착관계는 전통과 전후 처리가 만난 결과물이다.
《이슬람과 마피아의 관계》
23:24 https://youtu.be/GqVx3mZ2jvc
Tenor Luciano Pavarotti가 부르는 Santa Lucia입니다.
01:30 https://youtu.be/S7WtpYrM1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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