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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민주화 항쟁’ 77주기 특별기고문

【제주 4·3 ‘민주화 항쟁’ 77주기 특별기고문】 제주 4·3 ‘민주화 항쟁’ 정신의 대법원 판례 투영은 바로 헌법 제12조 제1항 「적법절차 원리」 - 윤석열 파면 선고할 수 밖에 없는 헌법정신Ⅰ. 제주 4·3 ‘민주화 항쟁’의 역사적·헌법적 의미1. 역사적 의미제주 4·3은 해방 직후 민족분단과 냉전의 격랑 속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1947년부터 제주도에서 3만 명 학살되었다. 당시 제주지역 주민들의 민주적 자치와 반독재 열망이 분단 체제와 외세의 영향을 받으면서, 경찰·군·우익단체(서북청년단은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 중심) 등 국가 권력이 “빨갱이”로 몰아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 희생을 낳은 국가 폭력이었으며, 훗날 과거사 진상규명..

상호관세

오늘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 한국, 대만, 베트남 등 주요 무역 파트너 국가들에 대한 '상호 관세'를 발표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오늘을 '해방의 날'이라고 부른다.아스팔트서 극우들이 열심히 성조기를 흔들어 대는 동안 트럼프는 우리나라에 무려 25% 관세를 때렸다.미국은 우리나라와 한미 FTA 체결을 맺어 그 협정에 따라 대부분 서로 무관세를 매겨왔다. 그런데 이번 상호관세로 FTA협정은 말 그대로 휴지조각이 되었다.트럼프 행정부의 상호 관세 정책은 한국 경제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상당히 높고 국가관 협정을 미국은 자국의 입맛에 따라 언제든지 뒤엎는 아주 나쁜 선례를 만들어 버렸다.충격적인 트럼프의 상호 관세는 우리나라의 환율 변동성을 극도로 키우고 국내 산업에 큰 피해를 끼칠 것이 자..

우르과이 조난사고

우루과이 공군 571편 조난사고는 1972년 10월 13일 일어났고, 조난 72일째인 12월22일에 구조가 되었다. 최초 45명이었던 승객+승무원은, - 안데스 산맥에 불시착했을 때, 12명이 사망했고 (33명 생존)- 하룻밤만에 부상자 5명이 사망했고 (27명 생존)- 사람들은 열흘이 지나자 시체 인육을 먹기 시작했다. - 10. 29.에는 눈사태까지 발생해서 8명이 사망했고 (19명 생존)- 11. 15. 감염으로 한명이 사망했고, (18명 생존)- 11. 18. 또 한명이 감염으로 사망했고 (17명 생존)- 11. 21. 끝까지 인육을 먹기를 거부했던 누마 투카티(Numa Turcatti)가 굶어죽었다.그 때 몸무게는 25kg이었다. 누마가 마지막 사망자였다. (16명 생존)- 12. 12. 급기야..

굴참나무의 기적

굴참나무의 기적2017년 포르투갈에 거대한 산불이 일어났다.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산불이었다. 50만 헥타르가 불타올랐고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전례없는 재난이었다. 고온과 강풍이 산불의 확산 조건을 만들었지만,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도화선을 제공했다. 화재가 진화된 후 산불의 경로를 살펴보니 정확히 유칼립투스 플랜테이션을 따라 불길이 번졌다.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가장 유칼립투스를 많이 심는 나라다. 펄프 산업이 발달돼 있어서다. 본디 지중해의 대표적인 농촌 풍경이란 참나무와 굴참나무의 숲이었다. 하지만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압력에 농민들이 떠나고, 지주들이 유칼립투스와 소나무를 단일 재배하면서 농촌 풍경이 완연히 바뀌게 됐다. 생장 속도가 빠른 유칼립투스가 포르투갈 전역으로 뻗어나가며..

가난의 책임.

'당신이 가난한 것은 오롯하게 당신만의 책임이 아니다'그런 사회 구조를 만든 정치인과 약탈적으로 노동력을 착취해가는 재벌 대기업의 책임이 더 크다.우리나라 기업이 노동자에게 주는 보상을 보면 대기업(제조업 기준)은 부가가치의 28%만을 줬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50%를 지급했다. 대기업의 부가가치 대비 노동자 보상률은 조사대상 OECD 국가 중 최하 수준이다.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컸다. 대부분 노동자가 일하는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41.3% 수준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 역시 OECD 국가 중 상위권이다. 그런데 대기업의 고용 비율은 그리스를 제외하고는 최저 수준이다. 즉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 능력도, 보상 능력도 최하위란 얘기다1990년대 이후 내수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을 보면..

헌법재판소

1.대통령을 국민이 뽑았으면,대통령 그만두라는 종국판정도 국민이 내리는게 합당하다.국회가 2/3로 탄핵소추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판정한다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소추 이후 국민투표 사이의 기간동안, 온갖 논쟁이 오가고, 국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의사를 표출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확정짓는다는 것이다.2. 특이한 주장일까? 아니다.우리에게도 그런 실질적 실험이 있었다.2004년 국회는 2/3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를 했다.마침 한달뒤 총선이 있었고, 국민은 투표를 통해탄핵한 의원들과 정당을 심판했다.헌재는 전원일치로 탄핵기각을 했는데, 재판관 중엔 탄핵찬성론도 있었지만, 표출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탄핵찬성은 국민의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니까. 결국 국민이 실질적 판정을 내린 것이다.3.박근혜 땐 어떤가..

나의 삶 2025.03.27

산불의 주범

1.2016년 이스라엘에 대형 산불이 났다. 총리 네타냐후는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일부러 불을 저질렀다며 엄중한 처벌을 하겠다고 야단을 피웠다. 당시 산불이 난 곳은 대부분 소나무숲이었다.2021년 이스라엘에 또다시 대형 산불이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났다. 소나무숲이 불타자 그동안 가려졌던 테라스 형태의 공간들이 드러난 것이다. 바로 이곳에 예전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았다는 증거였다. 아래 사진에서 보다시피 과거 팔레스타인인들은 저렇게 계단 형태의 경사에 올리브나무를 심고 살았다. 조상 대대로 그들은 올리브와 땅의 가치를 존중하며 살아온 터였다.바로 그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추방한 나크바 이후,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유럽 소나..

폭삭 속았수다.(2)

폭삭 속았수다.내 부모와 내 세대 이야기다.눈물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나에게 크게 다가 오지는 않았다.그 시절은 모두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나의 부모님은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고.나는 동생들과 식은 꽁보리밥에 김치로 끼니를 떼웠다.그 시절은 다 그런 줄 알고 자랐다.꽁보리밥, 수제비국, 국수.반찬은 김치와 콩장이 전부였다.이 마저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다.옷은 누더기. 옷을 산다는 상상을 못했다.고등학교와 대학교 다닐 때 자취.늘 단벌신사였고.항상 간장에 밥을 비벼먹었다.하숙하거나 월식을 하는 애들을 보면부럽다기보다 이상하기까지 했다.장학금과 부모님의 교육열.이게 없었으면 공부는 엄두도 못냈다.그래도 나는 내가 자랑스럽고부모님이 자랑스럽다.아들이 내게 하는 말"아버지는 가난하게 자란 티가 팍팍..

폭싹 속았수다.(1)

파혼하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펑펑 울었다. 수모를 당한 게 분하고 서럽고 억울해서. 굥교롭게 그 날, 북한은 김일성 사망을 알렸고 택시 라디오에선 아나운서가 흥분한 목소리로 김일성 사망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택시 안에서 펑펑 우는 젊은 여성과 김일성 사망 뉴스, 나이든 택시운전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가짜뉴스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전후 맥락을 무시하고 의도에 맞는 사실만을 취사선택하여 과장하고 왜곡하여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 괴벨스도 그랬다. 1%의 사실에 99%의 가짜를 섞어 가짜뉴스를 살포하고 대중을 선동했다.그 젊은 여성은 왜 그리 펑펑 울었는지 진실을 모르는 택시운전사는 김일성이 죽어서 그런다고 오해했을 것이고, 그 말이 한 입 건너 두 입 건너 옮겨지면서 대한민국은 간첩이 득실..

계엄의 밤

계엄의 밤박정희의 5.16쿠데타에는 3500명의 병력이 동원되었다. 윤석열의 12.3 쿠데타에는 군인 1500명이 동원되었다. 특수전사령부는 1139명, 수도방위사령부는 211명을, 방첩사령부는 국회의원 체포조 49명을 포함하여 200여명을 투입했다. 정보사는 북파공작을 수행하는 HID 30여명을 보냈다. 육본과 합참 인원 그리고 국회 외곽을 통제한 경찰 병력까지 합치면 그 수는 2000여명을 넘어선다.이 숫자는 표면적인 것이다. 만약 계엄이 두시간 반만에 끝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국회 장악에 성공했더라면 계엄군의 증원이 예정되어 있었다. 제7공수특전여단과 제13특수임무여단은 12·3 내란사태에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서울로 올라오게 예정되어 있었다.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 사령관은 국회 국방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