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258

서북청년단

장모와 사위를 잡아 놓고 옷을 벗긴채 공개 성행위를 시키고, 죄없는 양민을 빨갱이로 몰아 죽인후 애인이나 부인을 강간하거나 첩으로 삼고, 아편먹은 환각상태에서 부녀자들을 강간하고... 1946년부터 1949년 12월까지 서북청년단들의 모습이었다. 반공이라는 이념적 광기와 사적폭력이 난무하던 이 시절. 적어도 이 시기에 극우의 기독교에는 하나님은 없었다. 서북청년단은 평안도 일대 지주의 자식들이 해방후 김일성의 친일파숙청을 피해 남으로 피신해와서 한경직목사 등의 도움으로 만든 반 군사조직이다. 군인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 앞잡이 노릇을 하던 사람 잡는 인간백정들이었다. 돈달라고 해서 안주면 죽이고, 시계달라고 해서 안주면 죽이고, 이승만사진이나 태극기를 강매하다가 안사면 빨갱이로 몰아 죽이고, 예쁜 여자를 ..

4.19혁명

지금부터 65년 전인 1960년에 일어난 4.19 혁명은 당시 이승만 자유당 정권(현 국민의힘 근원)이 이승만 자신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투개표 조작을 하자 이에 저항한 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됐다. 당시 전체 국민 거의가 '대통령 이승만은 물러가라'고 원성이 높았다. 그야말로 '국민통합'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4.19 의거 기간 동안 학생 시민 등 비무장 시위대에 발포하여 185명이 사망하고 1천5백여명이 부상했다. 피를 흘리고 독재자 이승만을 권좌에서 쫒아냈지만 1년 후 1961년 5월 16일 일본군 출신 육군소장 박정희가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18년 장기독재, 박정희 피살. 이어서 1979년 박정희 경호장교 출신 보안사령관 육군소장 전두환 군사반란 1980년 전두환 광..

윤석열의 단죄

내란수괴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지만, 승복도 반성도 하지 않고 있다.오히려 국민의힘의 대선 승리를 당부하고 탄핵반대 지지층을 선동하는 메시지를 내보내며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형사재판은 헌법재판과 다르지만, 헌법재판소가 인정한 12.3 계엄의 사실관계 대부분은 형사재판에서도 인정될 것이다.12.3 계엄 관련자들은 윤석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그러나 대다수 국민을 어이없게 만든 지귀연 부장판사의 신박한 구속일자 계산법과 심우정 검찰총장의 즉시항고 포기로 윤석열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그런데 윤석열의 범죄혐의는 내란만이 아니다.첫째, 많이 잊혀져 있는 ‘고발 사주’ 사건이 있다. 검찰총장 시절에도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며 정치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20..

제주 4·3 ‘민주화 항쟁’ 77주기 특별기고문

【제주 4·3 ‘민주화 항쟁’ 77주기 특별기고문】 제주 4·3 ‘민주화 항쟁’ 정신의 대법원 판례 투영은 바로 헌법 제12조 제1항 「적법절차 원리」 - 윤석열 파면 선고할 수 밖에 없는 헌법정신Ⅰ. 제주 4·3 ‘민주화 항쟁’의 역사적·헌법적 의미1. 역사적 의미제주 4·3은 해방 직후 민족분단과 냉전의 격랑 속에서 벌어진 비극이다. 1947년부터 제주도에서 3만 명 학살되었다. 당시 제주지역 주민들의 민주적 자치와 반독재 열망이 분단 체제와 외세의 영향을 받으면서, 경찰·군·우익단체(서북청년단은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 중심) 등 국가 권력이 “빨갱이”로 몰아 강경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많은 민간인 희생을 낳은 국가 폭력이었으며, 훗날 과거사 진상규명..

가난의 책임.

'당신이 가난한 것은 오롯하게 당신만의 책임이 아니다'그런 사회 구조를 만든 정치인과 약탈적으로 노동력을 착취해가는 재벌 대기업의 책임이 더 크다.우리나라 기업이 노동자에게 주는 보상을 보면 대기업(제조업 기준)은 부가가치의 28%만을 줬다. 반면에 중소기업은 50%를 지급했다. 대기업의 부가가치 대비 노동자 보상률은 조사대상 OECD 국가 중 최하 수준이다.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도 컸다. 대부분 노동자가 일하는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의 41.3% 수준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임금 격차 역시 OECD 국가 중 상위권이다. 그런데 대기업의 고용 비율은 그리스를 제외하고는 최저 수준이다. 즉 대기업은 일자리 창출 능력도, 보상 능력도 최하위란 얘기다1990년대 이후 내수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을 보면..

계엄의 밤

계엄의 밤박정희의 5.16쿠데타에는 3500명의 병력이 동원되었다. 윤석열의 12.3 쿠데타에는 군인 1500명이 동원되었다. 특수전사령부는 1139명, 수도방위사령부는 211명을, 방첩사령부는 국회의원 체포조 49명을 포함하여 200여명을 투입했다. 정보사는 북파공작을 수행하는 HID 30여명을 보냈다. 육본과 합참 인원 그리고 국회 외곽을 통제한 경찰 병력까지 합치면 그 수는 2000여명을 넘어선다.이 숫자는 표면적인 것이다. 만약 계엄이 두시간 반만에 끝나지 않고 지속되었다면, 국회 장악에 성공했더라면 계엄군의 증원이 예정되어 있었다. 제7공수특전여단과 제13특수임무여단은 12·3 내란사태에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이후 서울로 올라오게 예정되어 있었다.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 사령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20250319-필리핀 마닐라

2025.03.19[수] 아침 7시35분 마닐라행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했다.오늘 오후 1시30분과 4시에 회의가 있다.집에서 가벼운 여름 슈트를 입고 어둠이 짙은 4시에 공항으로 출발했다.약 85km를 달려 공항에 도착하니 5시 20분이다.Kiosk로 미리 예악해둔 아시아나 항공으로 발권을 받았다. 오전 6시가 되야 환전과 로밍을 한다기에 조금 기다려서 택시비를 위해 20만원을 페소로 환전하고 하루 로밍을 했다.공항은 아침부터 무척이나 붐빈다.입국장 Gate도 24시간 개방되는곳은 1개소 뿐이라  나머지는 6시가 지나자 열렸다.입국장으로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너무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아침해가 떠오르고 예정된 시간에 탑승했다.빈자리가 많다.4시간의 비행시간이 지나 필리핀 마닐라 Ninoy Aquino..

버거 보살 노상원

제 26화 버거보살, 계암의 막후 설계자 노상원실록 옴니버스 윤석열의 초현실 비상계엄(2부)버거 보살’ 노상원은 김용현의 핵심 측근이다. 그는 비상계엄에서 윤석열과 김용현, 그리고 자신이 꽂혀있는 부정선거 의혹을 입증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의 점집에서 70쪽에 달하는 방대한 설계가 담긴 수첩이 발견되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적 감정 결과 노상원의 것임을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수첩에는 NLL 북한 공격 유도, 정치인 수거(체포) 사살 등 충격적인 내용이 들어있다. 이 수첩의 내용을 누가 작성했는지가 중요한 관건이다. 1981년 육군사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한 노상원은 독특한 기행으로 말이 많았다고 한다. 대위 시절부터 육군사관학교 후배들에게 손금을 봐주겠다고 했고, 1995년경 1사단 예하 대대에서 ..

윤석열의 전쟁도발

또다시 불거진 '전쟁 도발' 의혹‥'외환유치' 혐의는? - MBC 뉴스데스크윤석열 정부가 북한을 자극해 국지전을 일으키려 했단 의혹은 그동안 수차례 제기돼왔습니다.대통령 개인의 위기를 덮으려고 일부러 군사적 충돌을 일으키려 했다는 건데요.그럴 때마다 군은 강하게 부인하며 반발해 왔는데, 하지만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의 근거들은 구체적이고, 맥락도 맞아떨어집니다.지난해 6월 26일, 해병대가 백령도와 연평도에서 실시한 대규모 해상 사격 훈련.K-9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천무, 스파이크 미사일 등 군의 최첨단 무기 290여 발을 쐈습니다.9.19 군사합의로 훈련이 중단된 지 6년 10개월 만이었습니다.당시 군은 9·19 군사합의가 파기됐고 오물 풍선 살포와 GPS 교란,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 등에 대응하기 위..

심우정의 윤석열 석방에 얽힌 기막힌 인연과 어설픈 의리

[단독 야만의 시대 145] 심우정의 윤석열 석방에 얽힌 기막힌 인연과 어설픈 의리vol. 1449 | Posted on March 12, 2025 by sunday_admin in 정치, █ 윤석열과 심우정, 문제의 아크로비스타 살고 있는 이웃사촌█ 심우정총장은 김건희 오빠 ‘비선실세’ 김진우와 휘문高동문█ 아크로비스타는 김건희 오랜 활동무대, 각종 염문설 진원지█ 심우정 부친 심대평 전 충남지사, 윤 부친과 동향으로 친분법원이 내란수괴 윤석열 측의 구속취소 청구를 인용함에 따라 윤석열이 한국시간으로 지난 8일 석방됐다. 법원의 느닷없는 구속 취소 결정도 기괴하지만, 심우정 검찰청장의 ‘백기 투항’은 그 보다 더욱 황당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법원 결정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였다. 석방 과정에서 석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