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지구만들기/Rainwater

“빗물이 돈이라면 흘려버릴까요?”

지오마린 GeoMarine 2011. 6. 13. 16:10

 

“빗물이 돈이라면 흘려버릴까요?” 브레인 Vol. 28   브레인 인터뷰    2011년 06월 09일 (목) 05:07   


그냥 흘려버리는 비를 아까워하는 사람이 있다. 버리는 빗물을 이용하면 댐이나 상하수도를 새로 만들고 유지보수하는 데 많은 돈을 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빗물박사’로 잘 알려진 서울대 환경공학부 한무영 교수에게 듣는 빗물 이야기.


한무영 교수와 인터뷰하기 전날 ‘방사능비’가 내렸다. 최대한 비와 접촉하지 않으려고 중무장을 하고 나온 사람들 속에서 빗물이 옷에 묻을까봐 신경 곤두세우며 피곤하게 보낸 날이 지나고 인터뷰 당일은 눈부실 만큼 햇살이 화창했다.

“휴~ 인터뷰 하는 날에 비가 안 와서 정말 다행이네.” 지난해 말 구제역 한파로 인한 침출수 문제도 그렇고, 일본대지진으로 인한 방사능비도 그렇고, 올 봄 우리에게 비는 달갑지 않은 존재였다.

막연한 두려움이 공포를 만든다
“교수님, 산성비도 그렇고 방사능비도 그렇고, 맞아도 될 만큼 안전한가요?” 제일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산성비에 방사능비까지 이제 ‘비’라고 하면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지경이죠.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래요.”

비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많은 편견이 산성비에 관한것.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비를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것이다. “만일 비 맞아서 머리카락이 빠졌다면 저한테 오세요. 제가 그 머리 다 심어 드릴게요. 하하.”

산성비가 산성인 것은 맞지만 염산처럼 매우 위험한 물질인 것마냥 너무 과장돼 있다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그나마도 산성비는 땅에 떨어지면 금방 중성이나 알칼리성으로 변하는데 무슨 수로 산성비가 숲과 토양을 산성화시킬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산성도를 나타내는 pH수치는 낮을수록 산성, 높을수록 알칼리성을 나타내고 중성은 pH7 정도다. 우유는 pH6.4~7.6, 오렌지주스는 pH2.2~3.0, 식초는 pH3.0 정도 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걸 마시고, 물에 희석시켜 머리감을 때 사용하기도 한다.

이것을 조금 더 쉽게 풀어보면 오렌지주스는 산성비의 100배, 콜라는 500배 정도 강한 산성이고 린스나 샴푸 중에서도 어떤 제품은 산성비보다 100배 강한 것도 있다고 한다.

이어 대기 중의 오염물질 때문에 빗물이 지저분할 거라는 일반인들의 오해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빗물에 대기오염 물질이 있을 수 있지만 비가 내리고 20분 정도가 지나고 나면 그런 오염물질들은 다 씻겨 내려가므로 안전하다. 물 1ℓ에 얼마나 많은 이물질이 녹아있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것을 총용존고형물(Total Dissolved Solids)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물 1ℓ에 소금을 0.5g을 넣은 뒤 증발시키면 소금 0.5g이 남는다. 이때 TDS는 500㎎/ℓ이고 이를 500ppm이라고 표현한다. 우리나라는 먹는 물의 수질기준을 500ppm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빗물에 있을 수 있는 오염물질은 10~20ppm정도라고.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을 나타내는 단위에서도 안정성을 유추해볼 수 있는데 대기 기준 단위는 ㎍(마이크로그램)/㎥이고, 수질 기준은 ㎎/L이다. 곧 1,000㎍=1㎎이고 1㎥=1,000ℓ다. 이는 대기오염의 기준보다 100만 배가 넘어야 수질기준에 문제가 된다는 얘기다.


이어 한 교수는 “괴담을 양성하는 언론도 문젭니다. 언론이라면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얘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서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냅니다. 산성비도 그렇고 방사능비도 마찬가지예요. 과학적인 근거 없이 괴담 수준으로 퍼진 편견과 오해는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하기 힘듭니다.


지금 산성비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기피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막연한 두려움이 공포를 만들고 언론이 그것을 양산하죠. 이제는 괴담을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문제는 과학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기자는 막연한 추측이 빚어낸 공포로 온갖 호들갑을 떨었던 전날의 행동이 떠올라 얼굴이 벌게지는 걸 느꼈다.

가진 걸 버리니 사람이 보이더라
한무영 교수는 원래 상하수도, 수처리, 토목 전문가다. 그가 빗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0년 봄. 가뭄이 들어 온 나라가 걱정이었다.

수처리 전문가에게 처리할 물이 없으니 그가 가진 지식도 무용지물이었다.

“이 기술로 내가 죽기 전에 몇 사람이나 살릴 수 있을까?”란 생각으로 고민을 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빗물에 대해 주목하게 됐다.

자신의 전공분야인 수처리 기술개발을 활용해 돈을 벌 길을 찾을 수도 있고, 그간 공부하느라 쏟아부은 시간과 명성이 아까울 만도 했지만 그는 모든 걸 과감히 버리고 다시 시작했다.


“빗물을 연구하면서 내가 가진 지식, 돈, 기득권까지 다 내려놓으니까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비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내립니다.

‘당신 땅에 내린 빗물은 당신이 사용하시오’란 생각을 하니까 이것(빗물 이용법을 알리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이 또 없더라고요. 홍익에 눈을 뜬 겁니다. 그리고 신기하죠. 빗물연구를 하면서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제 전공분야가 빗물 관련 시설을 만들다 보니 유용하게 쓰이더라고요.”


10년 동안 빗물이용하기 운동을 벌이면서 힘든 일이 많았을 텐데 한 교수는 “지금이 가장 힘들다”고 답한다. 어느 사회, 어느 분야에서건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기존의 패러다임과 충돌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람을 느낄 때가 더 많다. 올해부터 중학교 2학년 국어책에 ‘지구를 살리는 빗물’이라는 제목으로 한무영 교수의 빗물 이용에 대한 글이 실렸다. “기존 세대는 비를 피하겠지만 이 교과서를 보고 배운 아이들은 다른 생각을 하겠죠. 이 아이들이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벅찹니다.”

2012년 고성군에서 열릴 <세계공룡엑스포>의 슬로건은 ‘하늘에서 내린 빗물, 공룡을 깨우다’이다. 엑스포가 열리는 단지 내에서 쓰일 물은 모두 빗물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렇게 그의 생각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면서 성과가 하나둘 나타나고 있는 중이다.


“빗물 이용이 주목받다 보니 해외 학회나 강연에 초대받는 기회가 많아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대해 얘기하게 됩니다. 강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저수지, 턱을 높여 빗물이 고이게 한 논, 강우량을 재는 측우기 등 조상의 지혜 속에는 상류에 있는 사람이 하류에 있는 사람을 배려한 기술이 녹아 있거든요. 조상들의 빗물 이용의 원리에서 ‘홍익’을 발견한 거죠.”

빗물도 모으면 돈이 된다
“공용 수도요금이 100~200원이라면 믿으시겠어요?” 그는 주상복합건물인 스타시티에 산다. 그가 설계한 스타시티 빗물저장 관리시설은 3천 톤의 빗물 저장조에 빗물을 모았다가 홍수방지용, 조경용, 소방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스타시티의 빗물저장 관리시설은 주거단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이고 국제물협회(IWA)에서 펴내는 학회지에 ‘세계 최고의 시설’로 표지를 장식했을 만큼 국내외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서울대학교에도 기숙사와 공대 건물, 새로 짓는 일부 건물에 빗물이용 시설을 설치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는 직장과 집, 안팎으로 빗물을 이용하면서 살고 있는 셈이다.


한 교수는 빗물에 대한 일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많은 개발도상국가들이 상하수도 설치는 물론 지하수의 오염문제 등 많은 물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로 그들의 오랜 식수원이었던 지하수가 오염되고 있지만 생수를 사먹을 돈이 없는 사람들은 위험한 줄 알면서도 그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땅에 닿는 순간 깨끗해진다. 오히려 댐에 한참 고여 있다가 낡은 수도관을 통해 각종 약품으로 소독돼 공급되는 수돗물보다 나을지 모른다. 그런 그들에게 빗물은 생명의 물이다.

그는 지난 2007년 쓰나미 피해를 입은 인도네시아 반다아체를 시작으로 베트남 라이샤 지역에 학생들과 함께 비활(아시아 개도국의 물 문제 해결을 위한 생명의 빗물 모으기) 활동을 5년째 하고 있다.

“처음에는 쓰나미로 피해를 입은 지역의 식수 부족문제를 빗물이용 시설로 해결해보고자 시험 삼아 갔는데 이제는 확신이 생겨요. 특히 학생들이 많은 것을 느끼고 옵니다. 일회성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돌아와서도 지속적으로 빗물이용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합니다.”

일반인으로까지 확대할 계획이 없느냐고 묻자 그럴 계획은 없다고 한다. 일반적인 봉사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것보다 전문인원만 최소화하는 것이 그들을 더 많이 도울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일반인도 참여하면 좋지만, 그 비행기 삯으로 개도국에 좀더 많은 빗물이용 시설을 설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가서 아직은 참여인원을 되도록 늘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신 그는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빗물이용 방법을 알려준다. “서울시에서는 개인이 빗물저금통을 설치하면 보조를 해줘요. 단독주택에 사는 분들은 개인 빗물저금통을 설치해보세요. 수도요금이 크게 줄 겁니다. 또 47개 시군에 빗물조례가 마련돼 있으니 그 시도에 사는 분들이라면 조례를 이용해 빗물이용 시설을 설치하시고, 빗물조례가 마련돼 있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분들은 우리 지역에는 왜 빗물조례가 없냐고 건의해보세요.

‘비활’에 참여하시는 것보다 이렇게 빗물이용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또 정원을 설계할 때도 볼록렌즈형보다 오목렌즈형으로 설계하면 그대로 흘려버리던 빗물을 땅속에 저장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아파트의 경우 공용 빗물저금통을 만들어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나 깨나 빗물 생각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묻자 할 일이 참 많다고 한다. “이제 사람들이 조금씩 빗물 이용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는 과학자이고 공학자입니다. 과학자는 과학의 언어로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실천에 옮기게 하려면 고성군이나 스타시티 같은 좋은 시범사례들을 많이 만들어야 해요.

그래서 거대한 조직이 한꺼번에 일을 추진해야 하는 ‘레인 시티’보다 좀더 작은 단위로 움직일 수 있는 ‘레인 빌리지’로의 방향전환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또 빗물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연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겠죠.”

인터뷰가 끝나고 사진촬영을 위해 자리를 옮겼다. 공대 건물 옥상에 설치된 빗물받이 통의 빗물을 보고 “이거 pH좀 측정해보면 좋겠는데……”라고 혼잣말하는 그를 보니 자나 깨나 빗물만 생각하는 빗물박사의 모습이 틀림없다. 그리고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한 교수에게 인터뷰를 제의하기 위해 전화를 하자 대뜸 그가 물었다. “그 잡지, 사람들이 많이 보나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니, 유명하신 분이 왜 그러실까’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하고 나니 그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질문은 ‘이번엔 얼마만큼의 사람들에게 빗물이용 소식을 전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한무영 교수의 ‘비활’


① 한무영 교수와 서울대학교 환경공학부 학생들은 2007년부터 매년 아시아 개발도상국가의 물 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도상국가에 빗물이용 시설을 설치하는 빗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② 비활을 온 학생들이 빗물이용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사전작업을 하고 있다.
③ 빗물을 저장해 사용할 수 있도록 빗물이용 시설이 설치된 모습

④ 한무영 교수가 지난 해 빗물이용 시설을 설치해준 가정을 방문해 시설을 점검 한 후 집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글·정소현 nalda98@brainmedia.co.kr
사진·박여선 pys031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