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17일 저녁 성수동 한 추어탕 집에서 O사장의 소개로 빗물을 연구 하시는 서울대 H 교수님과 같이 추어탕으로 저녁 식사를 하면서, 빗물 저장과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몇 시간 째 나누게 되었다. 뭔가 가슴에서 이 분야를 해야 한다는 욕구가 분출된다.
21일에 이란 정부의 초청으로 빗물 이용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하러 1주일간 출장을 간다고 하신다.
18일 출근을 하자마자 S 전무님께 보고를 하자 곧 바로 사장님께로 업무 보고하러 가신다.
30분이 체 안되어서 오시더니 21일 출장 준비를 하란다.
그재서야 이란 항공의 비행기 티켓을 알아보니 자리가 없단다.
결국은 가는 길은 비즈니스 석으로 예약을 하고 출장 결재도 서둘러서 받았다.
그러나 “이란”이라는 나라는 그 동안 말로만 들었지 한번도 가 보질 못했고, 생각 하지 도 못했던 터라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 보니 낯설고 먼 나라라 그런지 자료 또한 시원치 가 않다.
이젠 비자가 문제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란 공항에서 입국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글과 아프카니스탄 납치 문제가 불거진 후 없어졌다는 글이 같이 공존한다.
일 아침에 서야 이란 대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초청장이 있으면 72시간 체류비자를 입국 공항에서 발급 해 준다고 한다.
그러나 난 1주일을 체류해야 하고 걱정이 앞선다.
어떻게 하겠는가 이란 까지 가서 되돌아 오는 한이 있더라도 가서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2008년07월21일(월요일)
사무실에서 14시 30분 경에 출발해서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4시 정도가 되었다.
이란항공 발급하는 곳은 난 처음인데 가는 사람이 왜 이리도 많은지 줄이 무척 길게 늘어섰다.
이란으로 가는 한국 분들이 몇 분 있어서 입국 비자에 대해 물어 보니 모두들 잘 모른고 한다.
오후 5시 30분경에 H 교수님께서 이란에서 서울대에 Post Doctor(박사 후 과정)을 온 야즈디 박사 가족과 같이 공항에 오셨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입국장을 들어 가니 우리가 타야 할 이란 항공은 2시간 늦어 진단다.
저녁 8시에 필리핀으로 출장가는 S 전무님과 보세 구역 내에서 H 교수님을 인사 시켜 드리고 차 한잔을 한 후 헤어 졌다.
비즈니스 석으로 발권한 내 좌석과 H교수님과 자리를 바꾸고 난 이코노미 석으로 오니 이란 할머니가 내 자리 까지 차지 하고는 비켜 주려고 하질 않는다.
말은 안 통하지만 몸이 불편하다며 좀처럼 자리를 내 주질 않아 승무원한테 이야길 했더니 그제서야 겨우 자리를 비켜 주면서 좁은 자리의 반 정도를 침범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렇게 출발시간이 2시간 지난 오후 8시 30분경에 이란항공은 하늘을 날아 올랐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내 좌석 옆에는 다른 항공에서는 볼 수 없는 기도하는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닌가.
9시가 넘자 한 사람, 두 사람 이 기도실로 오면서 주변이 시끌 벅적하다.
그 동안 많은 비행기를 타 봤지만 이건 최악이다.
갈 길은 먼데 좀 처럼 주위가 부산하여 잠을 잘 수가 없다.
주변은 시끄러워도 비행기는 목적지를 향해 나르고 있었고, 9시간의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무사히 도착 했다.
서울 시간으로 아침 5시 30분, 이란시간으로는 우리와 5시간 30분의 차이인 밤12시경이다.
이젠 입국 수속이 걱정이 된다.
입국수속을 하려니 뒤쪽 사무실에 가서 비자를 받아 오란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사무실로 가니 늙은 노인 한 분이 비자 신청서를 쓰라고 하고 미화 80불을 옆에 사무실에 가서 내고 오란다.
생각보다는 쉽게 2주 짜리 비자를 발급받았다.
결국 한국 주재 이란 대사관 보다 도 최근에 여행을 왔다간 여행자가 써 놓은 인터넷 블로그 글이 정확 했다.
무사히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아 공항 밖을 나오니 우리를 마중 나온 분이 인도 정부가 마련해준 Quest House까지 바래다 준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차량과 운전 기사도 이란 정부에서 제공해 준 것이이라고 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곳이라 시설이 좋을 것으로 생각 했지만 문화가 달라서 인지 다소 지저분하다.
주로 정부 공무원이나 외국 손님이 올 때 묵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숙소라고 한다.
출입문에도 경비가 서 있고 게스트 하우스 내 에도 관리자가 있다.
피곤한 몸을 쉬기로 하고 H 교수님과 같은 방에서 잠을 청 했다.
2008년 07월 23일(화요일)
우리를 이곳 게스트 하우스로 데려다 준 운전 기사가 아침 일찍 식사를 준비 해 준다.
우리의 밀가루 전과 같은 빵(난)과 계란 붙임, 우유 등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SCWMRI(Soil Conversation and Watered Management Research Center)로 갔다.
야지드 박사는 이 연구소의 마샤드(Mashad) 분소에 근무 중에 한국으로 유학을 간 터라 오랜만에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한분 한분 소개를 받노라니 이 연구소에 계는 분들은 모두가 대단한 분들이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유학을 하고 온 박사급 국책 연구원들로 명함에는 모두 교수로 되어 있다.
30여명이 모인 회의실에서 우리 소개를 거창하게 해준다.
H 교수님이 우리나라와 이란의 인연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한 후, 빗물은 생명이라고 하는 주제로 빗물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여 새로운 페러다임을 제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심도 있는 토론이 있었다.
사막답게 관심도가 대한 하다.
H 교수님께서 한국의 대장금과 김치, 비빔밥을 소재로 프리젠테이션을 시작 했다.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수력학분야의 Mr. Mohammad Ghafouri박사의 안내로 연구소 구석 구석을 견학 할 수 있었다.
규모가 대단하다.
한국에서도 용역을 주면 수치해석과 모델링을 해주겠다고 느스레를 뜬다.
내가 전공한 토질과 수질 연구실은 나로선 더 관심이 간다.
그러나 여기 시험기기는 우리나라에 비해서는 내가 보기엔 빈약해 보인다.
연구소 전체가 조금은 부잡 스럽다.
그러나 많은 연구원들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은 여느 나라와 다르지 않은듯 했다.
10여명의 박사들과 이란 전통 식사인 케밥으로 같이 회의실에서 식사를 하고, 곧 바로 우리나라로 보면 농림부(Ministry of Jihade Agriculture Forest’range & watered Management Organization)라 할 수 있는 곳을 방문하여 물 관리 국장급인 S.A.Banihashemi를 비롯하여 6명의 환대을 받았다.
산지에 적용할 빗물 저장고에 대한 제안서를 제출해 달란다.
적극 적으로 검토 하겠단다.
내가 준비해간 토목섬유 튜브에 대해서 몇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매우 흥미롭게 받아들인다.
일단은 매우 성공적이다.
우리회사 소개서를 주니 회사 규모나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많은 질문이 이어 진다.
성심껏 이야길 하고 필요한 자료는 메일로 보내 주기로 했다.
어제 늦은 도착에다, 시차등으로 인해 무척 피곤하다.
Quest House에 오후 5시 정도에 돌아와 일단 휴식을 취했다.
저녁 8시에 야즈디 박사가 저녁 식사를 하러 가자고 왔다.
내가 저녁을 사겠노라고 춤과 노래가 있는 근사한 식당으로 가자고 하니 한참을 달려 어느 지하 식당으로 우릴 데리고 간다.
1, 2층으로 된 식당으로 한 벽면에 조그마한 무대가 있는 식당인데 테헤란에선 매우 고급 식당이란다.
내가 보기에도 이곳에 오는 손님은 꾀나 귀품이 있어 보이고 차도르를 쓴 여자들 모습에도 아름다움이 배어 나는 듯 싶다.
상당히 부유층이 오는 식당 인 것 같다.
이 나라는 술이 없는 나라고, 여자가 접대를 하는 경우가 없는 곳인지라 그런지 무대에선 4명의 남자가 연주하는 타악기에 맞추어 50대 중년의 남자가 노래를 한다.
이를 즐기면서 우린 케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4명이 먹은 저녁 식사로는 큰 금액인 미화 120불(약12만원)을 지불 했다.
2008년 07월 24일(수요일)
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우리를 시중들고 있는 50대 중반의 운전 기사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었고, 야즈디 박사의 숙소가 있는 곳까지 가서 같이 합류 시킨 후 테헤란에 가장 높은 산인 토챨산(Tocjal)으로 가려는데 우리가 탄 승용차 엔진에서 연기가 난다.
이 도시의 자동차 중 가장 오래되고 날은 자동차는 택시가 차지 한 것 같고,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인 기아의 프라이드가 아마도 보기엔 3-40%이상 차지 하고 있는 것 같다. 도시 전체의 자동차는 아마도 2-30년은 지난 자동차가 대부분 굴러 다니는 것 같다.
우리가 탄 자동차는 푸조인데 무척 오래된 자동차로 보였는데 결국은 우릴 끝까지 책임 지질 못하고 주져 안는다.
우린 어쩔 수 없이 택시를 이용하여 겨울 스포츠의 메카인 우리나라의 북한산 정도의 위치인 산으로 가서 정상을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그러나 경찰자동차는 내가 보기엔 벤츠, 볼보등 아주 새차에 고급자동차로 무장이 되어 있다. 엮시 국가는 무지 돈이 많은가 보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은 줄이 너무 길다.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야즈디 박사는 우릴 앞세우고 많은 사람이 줄서 있는 곳이 아닌 다른 통로를 통하여 매우 손 쉽게 케이블카를 탈 수 있게 해 준다.
같은 케이블 카 이더라도 돈을 더 주면 그들과 관계 없이 앞서서 탈 수 가 있는 모양이다.
케이블카는 모두 7곳의 정류장으로 되어 있는데, 겨울 스키 시즌이 되면 모두 개방하게 하지만 지금은 2번 째 정류장까지만 운행을 한단다. 이곳이 해발1,700m라고 표시 되어 있다. 시내와는 전혀 다른 냉기가 서린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약간은 춥다.
오늘 테헤란의 낮온도는 42도 인데 말이다. 최 정상은 3,957m 이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보는 테헤란 시내 풍경은 회색도시로 녹지 공간보다는 단순한 회색 건물만이 즐비하다.
나무가 있은 곳은 어김없이 물을 공급하는 관수(스프링쿨러 시스템)가 보이고, 나머진 나무 한 그루가 없다. 골짜기엔 모래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사방댐에 즐비하게 축조 되어 있다. 물이 귀한 곳이라 물을 관리하는 방법은 우리나라 보다 더 선진화 되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붐빈다. 우리를 보고 동양인을 잘 보질 못해서 인지 신기한 눈빛으로 자꾸만 곁눈질을 한다.
케이블카탄 곳으로 되돌아 내려오니 다른 픽업 트럭을 몰고 운전 기사가 우릴 기다리고 있다.
숙소에서 짐을 챙긴 후 시청으로 가서 한 교수님과 야즈디 박사는 시청의 시장의 정책 보좌관을 만나고, 난 요즘이 여름 휴가 철이라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먼저 다음 행선지인 Shiraz로 향했다.
내 이름으로 된 비행기 표가 아닌 야즈디 박사의 이름이 적혀 있는 비행기표로 오후 4시경에 비행기는 시라즈로 향했다.
페르시안 만 상류에 위치하고 있고, 테헤란에서 서남방향으로 약 1,000km거리에 위치 하고있는 시라즈(Shiraz)는 넓은 들판이 시야에 들어온고 조용하고 한적하다는 느낌이 든다.
비행기 안 내 옆자리엔 금발의 모녀가 타고는 무척이나 심한 향수를 풍긴다. 딸은 노란 차도로에 노란 핸드백, 노란 매니큐어를 했고, 어머니는 진한 빨강색으로 딸과 같은 방법으로 화장을 했다. 나에게 시라즈에 왜 왔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처음인지, 자 꾸만 말을 붙인다. 손에 삼성 휴대폰이 들려 있기에 그것을 가르키며 한국에서 왔고 일 때문에 왔다니까 자기네 고향인 이곳에서 일을 잘 보고 가란다.
공항을 빠져나오니 조그마한 체구의 Mr. Rahbar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마중을 나온 Rahbar말레이시아에서 토양학으로 박사과정중에 귀국 한 후 30살의 노총각으로 이곳에서 근무 한다고 한다.
Guest House로 와서 저녁 8시 30분에 테헤란을 출발하는 한 교수님께서 도착 할 때 까지 잠시 쉬기로 했다.
2008년07월25일(목요일)
간밤에 12시가 다 되어서 교수님은 도착을 했고, 아침 7시에 시라즈에서 남서쪽으로 액 250km정도에 위치하는 사막 한 가운데 조림이 되어있는 농장으로 향했다.
시라즈 시내를 벗어나서 약 30분정도 달려 가니 좌측에 무지하게 큰 호수가 나타 났는데 물은 하나도 없고 소금을 채취해 놓은 산더미 같은 소금 언덕이 보인다.
내륙에 있는 호수이지만 염분이 있는 호수이고 비 올때를 제외하면 항상 바닥을 들어 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그냥 마른 호수 바닥에서 소금을 채취 한단다.
호수주변은 어릴 때 시골 정미소에서 보았던 디젤 엔진으로 지하수를 뽑아 올려 농사를 짓고 있는데 호숫가는 농작물과 나무들이 어우려져 사막이란 생각이 전혀 느껴 지지 않는다.
그러나 길을 사이에 두고 오른 쪽은 풀 한 포기 없는 풍화암석 덩어리의 산지 이다.
빈약하기 짝이 없는 휴게소와 어느 시골 상점에 들러 홍차와 비스켓, 물을 번갈아 사먹으며, 10시경에 농장에 도착 했다.
사막한가운데에 위치한 이곳은 정부에서 빗물을 이용하여 녹화사업을 25년전부터 시행해오고 많은 사람들에게 교육현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교육장에는 현장 지형을 똑같이 모형으로 만들어 놓고 빗물을 효과적으로 관리 하기 위해 비가 올 때 강물을 사막의 전체로 끌어들이기 위한 논두렁을 만들어 놓고, 물을 유입시키는 운하(도랑:폭 약5.0m, 깊이 약 1.0m)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 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을 사막 한 가운데에다 만들어 놓은 곳이다.
교육장을 벗어나 픽업트럭을 타고 현장을 둘러 봤다.
나무는 울창하게 자라고 있었고, 땅에는 곤충을 서식하게 하여 지력을 증진 시킨다고 했다.
사막에서도 살수 있는 곤 충으로 땅속으로 약 2.0m깊이까지 덜어가서 산다고 한다.
산림이 울창한 조림지를 벗어나 사막을 한참 달리다 강열한 때악볕을 받으며 계곡으로 들어가니 조그마한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오아시스로 들어가니 맑고 깨긋한 웅덩이가 계곡아래 자리 하고 있는데 이곳에도 물고기가 살고 있다 무척 신기하다.
햇살은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강렬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내가 처음 보는 사막이다. 비가 올 때 자라났던 가시가 가득한 식물들은 모두가 말라있고, 입자가 매우 고운 흙이 광활한 대지를 덮고 있다.
주로 1월에서 3월까지 비가오는데 비가오면 황토빛 물이 이 대지위를 엄청난 속도로 내달린단다.
이 때 물을 확보하지 않으면 년중 빗물을 구경하지 못한단다.
연년중 강우량은 약 200mm정도로 우리나라가 약 1,400mm정도 이니까 7분의 1정도 밖에 내리지 않고 그 것도 이른 초봄에만 내리기 문에 이곳이야 말로 물은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물이 매우 절실한 이유다.
올라오는 길 옆은 양떼들이 마른 풀을 띁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어느 시골에 들어서서 식사를 하려는데 좀처럼 식당을 운전기사가 찾질 못한다. 이골목 저골목 한참을 돌아다니다 어느 규모가 있는 식당에서 케밥으로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자동차로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검은 차도로를 쓴 여자들과 남자들은 같은 상점이더라도 물건을 살때 입구에 칸을 나누어 분리해 놓았다.
이슬람 종교의 계률에 따른것이겠지만 여자들은 무척이나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는듯 하다.
식당에는 손님이 우리 밖에 없는 터라 종업원들이 신기한듯 우리 곁으로 닥아와 이것 저것을 묻는다.
우리가 한국사람이라고 했더니 한 종업원은 대장금에 나오는 배우 사진을 자기 휴대폰 화면에 올려 놓은 것을 보여 주며 각별한 친근함을 표시하며 서로 사진도 찍어 주고 받으며 같이 한동안 웃고 즐겼다.
우리나라 드라마인 대장금이 이곳에서 방송되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상도"라는 드라마와 어린이 만화 "대장금"이 방송되고 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시라즈로 올라오는 길 옆은 야생으로 서식하는 올리브 나무가 한동안 시야에 들어온다.
우리 일행은 올리브를 재배하는 한 농장으로 들어가니 빗물을 모아두기 위해 올리브 나무 밑에는 어김없이 물이 고일수 있도록 두렁을 만들어 놓았다.
올리브 농장에는 무화과 나무가 더러 있는데 조금 있으면 수확기라서 익은 것 몇 개를 따먹어보니 서울에서 술안주로 가금 나오는 마른 무화과하고는 다르게 물기도 많고 매우 달콤한 맛이 난다.
이러한 농장의 대부분은 풀이 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 처럼 풀 뽑는 문제가 없어서 무더운 날씨에 밭을 메는 어려움은 없을것 같다.
시라즈를 약 100km정도 남겨 놓고 조그마한 시골집으로 운전 기사와 Rahbar는 잘아는 집인듯, 자동차를 몰고 들어서니 노인 한 분과 아들인 듯한 젊은 사내가 우릴 반긴다.
지하수를 뿜어내는 펌프가 있고, 양떼들을 두 사람이 나무 그늘에서 지켜 보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평화 스럽게 보인다.
오가는 사람이 많이 없는 탓 인지 우릴 너무 반겨 주고 집안으로 불러들여 홍차를 기꺼이 내 놓는다.
집은 한 10평정도도 안되어 보이는데 매우 시원하고 흰 벽에는 어떠한 장식도 없다. 방2개에 조그마한 부엌, TV는 우리를 맞이한 방에 있고, 조그마한 부엌에는 냉장고가 보인다. 너무 단촐하다.
그러나 이 분들의 모습에서 평화로움과 행복한 웃음이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든다. 우린 뭐가 그리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 가는지….
집앞에 조그마한 마당이 있고, 마당 건너에는 수박밭이 있는데, 6통의 수박을 우리가 탄 차에 실어 준다.
그 옆에는 여러가지 허브를 심어 놓고 표지를 붙여 놓은 농장이 있어 들어가니 끝에 아주 화려하게 핀 무궁화 꽃밭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일행과 같이서 사진을 찍어 본다.
여전히 내리 쬐는 햇살은 지칠줄 모르고 강렬하게 대지의 한방물의 물끼라도 빨아들이고 있는듯하다.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뒤 시내 한 식당에서 전에 한국에 일주일정도 서울대학교에 방문한 적이 있다는 시라즈 대학교 농과대학 Mr. Jafer교수가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함께 와서 한 교수님과 아주 재미 있게 피자로 저녁식사를 하며 보냈다.
이곳은 금요일이 휴일이라 오늘 저녁은 식당뿐만 아니라 거리에도 많은 인파가 붐빈다.
2008년07월26일(금요일)
이슬람 문화권은 금요일이 휴일이다. 느지막히 일어나 식사를 하고 시라즈에서 북쪽 약 50km의 거리에 있는 Persepolis로 갔다.
휴일이라 거리엔 많은 자동차가 붐볐고, 궁전입구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화려했던 궁궐은 파손되어 석상과 기둥만 남았으나 우린 이 황량한 곳에 물을 어떻게 사용했을까 하고 빗물 저장고을 찾았다.
궁궐 뒷 산쪽에 우물처럼 저장고가 보인다.
산에 내리는 빗물은 모두가 이곳으로 집수 되도록 물길을 만들어 놓았다.
예상했던 대로 물 저장고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닦아 왔다.
깊이가 무척이나 깊다.
궁궐에 많은 사람이 쓰기에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뒷산으로 올라 가니 궁전앞으로 넓은 들판이 제국의 융성했던 지난날을 보는듯하다.
이 궁전에서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 싼 바위산 아래 넓고 넓은 이 광활한 토지를 바라보던 재왕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 지는 듯 하다.
궁전 뒷산은 이 무더운 날씨에 올라 가기에는 조금은 짜증이 나는 곳인 지라 아무도 올라오지 않는 듯 싶다.
내려 오는데 낮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한국 관광객이다.
한 20여명은 되는듯 하다. 몇 가족이 여행을 왔나 보다. 엮시 한국사람이다.
궁전 뒷산을 오르고 있다. 이 멀리 까지 여행을 왔으니 본전을 뽑아야 겠지.
이란에서 페르시아의 고도를 한 곳만 보기를 원한다면 바로 Persepolis를 가보면 된다고 한다.
중근동 일대를 접수하고 인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대 제국을 건설한 고레스왕과 다리오 왕 시절 수백 도성의 사신들이 연초에 신년하례를 오게 되는데 그들에게 대 바사 제국의 위엄을 갖추기위한 목적으로 그리고 여름 도성으로 사용키 위해 대 공사를 시작하였다고 한다.
BC 518년 다리오왕에 의해 시작된 Persepolis의 대 공사는 후대의 5대 왕에 걸쳐 180여년에 걸쳐 완공되었다고 한다.
대국의 위엄을 갖추기 위해 성의 전체 대지를 지상에서 높이 올리고 왕의 보좌를 역시 높게 올렸으며 화려한 왕관과 왕의 예복을 요란하게 갖추므로 위엄을 자랑 하였다고 한다.
왕의 머리에 쓰는 왕관의 역사는 이곳 바사 제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하수에루왕 2세의 무덤앞에서 궁전을 바라보며 Persepolis의 원명은 Parsa였다고 한다.
신년 하례를 위해 성에 도착한 사신들이 111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면 망대에 있는 나팔 수가 팡파르를 울리기 시작하며 도착을 궁에 알린다고 한다.
당시의 신년 하례의식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대단했던 모양이다.
18M 높이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125,000 평방 미터에 이르는 Persepolis에는 배화교의 신 <아후라마즈다>를 칭송하는 조각과 글로 가득차있다.
예를 들면, "아후라마즈다는 하늘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의 행복을 주관하시고 많은 왕중에 <아하수에로 왕>을 만드셨으며 많은 주 중에 한 주를 만드셨도다 . . . . " "불의 신 아후라마즈다를 향한 다리오왕의 기도문: "아후라마즈다"시여 나의 도움이 되어주소서 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시고 기근과 거짓으로부터 보호하소서 . . ."
산정상에서 바라본 궁전과 넓은 들판과 평풍 처럼 둘러 쌓인 암벽 산 Persepolis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BC330년에 초토화 되게 되며 그 이후 Persepolis는 버려진 땅으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게 된다.
어떤 문헌에 의하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이 도시의 모습은 수 세기 동안 사막의 흙과 모래에 쌓여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진 땅이 되었는데 1930년대에 시작된 광범위한 발굴작업으로 “페르시폴로스의 웅장함"을 부분적이나마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 어제 만나 약속한 시라즈국립대학교에 Mr. Jafer교수를 만나러 갔다.
때마침 학교 입구에서 학교로 오는 교수를 만나 교수 연구실에서 그 동안 인터넷이 되질 않아 메일확인을 하지 못한 탓에 메일확인을 하고 몇곳은 회신을 해 주어야 하는데 한글이 되질 않아 확인하는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잠깐 뉴스를 확인하니 서울은 비가 무척이나 많이 와서 피해가 큰 모양이다.
이를 Mr. Jafer교수께 이야길 하니 놀라는 표정이다. 이 나라는 1년간 200mm정도가 오는데 어제 서울에서 하루 동안 약 300mm가 왔다고 하니 놀랄 수 밖에, 축복 받은 나라라고 이야기 해준다.
신께서 당신 나라에 석유와 풍부한 자원을 주었는데 비까지 주었다면 그 것이 공평하겠냐고, 우리나라는 물은 풍부하지만 자원은 없다고 하고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로 산책을 하며 엄청 난 규모의 학교를 소개 받으며 둘러 보니 이 사막 한가운데 아름드리 만한 나무가 즐비하고, 넓은 캠퍼스 구석 구성에 물 수로를 만들어 물이 학교 전체를 흐르도록 만들어 놓았다. 사막 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가 않는다.
휴일이라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과 같이 학교로 와서 휴일을 즐기는 터라 Mr. Jafer 교수 가족이 준비한 케밥 점식 식사를 학교 잔디밭 나무 그늘에서 아주 의미 있고 맛있게 먹었다.
일사광선이 강렬하게 내리 죄고 연일 40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지만 공기가 건조하여 그늘에만 들어 서면 시원하다.
그래서 인지 나무가 아주 울창하여 학교 전체를 나무 그늘아래로 다닐 수 있도록 해 놓았고 교수 연구실은 우리나라와 비교도 안될 정도로 깨끗하다. 강의실, 학생연구실, 자료 검색실, 단층 건물에 너무 깨끗하게 마련된 교수 연구실등은 너무 탐이 난다.
우리나라 최고의 서울대학교 교수인 H 교수님도 너무 부러운 표정을 감추질 못한다.
점심식사 후 시라즈 시내로 돌아와서 Quest House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밤 늦게 이곳을 출발해야 하는 관계로 짐을 챙겨서 자동차 드렁크에 싣고, 이란을 대표하는 정원이 시라즈 시내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시라즈대학교에서 관리를 한다고 한다.
이란 내국인은 우리돈으로 500원정도면 입장을 하는데 우린 외국인이라고 약 4,000원을 내란다.
울창한 나무들과 건축물을 잘 어울리게 만들어져 잘 관리가 된 정원이다. 많은 사람들이 휴일을 맞이 해서 산책을 즐기고 있다.
나무 한그루 한그루 마다 물을 주기 위해 물 호스를 연결 시켜 놓았고, 물 흐름을 조절 할 수 있도록 나무마다 두렁을 만들어 져 있다. 그러나 분수대는 매 말라 있고, 나무 아래의 흙도 물기가 없어 보인다.Shiraz는 Hafez, Sadi, Molla Sadra 등 세계적인 문인과 학자를 배출한 지식의 전당이다.
Persia 어원이 된 Fars주의 중심도시로서 주변지역이 아카메니드 왕조의 Darius 왕 (BC 6C) 이후 및 혼란기의 Zand 왕조 (18C)의 수도였던 역사적인 도시라고 한다. 인구 1백만의 시원한 서부 도시 Shiraz는 광활한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 전해져 오는듯 하다.
많은 인파가 붐비는 정원을 벗어나 이곳 태생의 시인의 이야기가 서려있는 도 다른 정원으로 들어서니 페르시안 궁전의 건축 양식을 토대로 조성된 조그마한 정원이 저녁 조명을 받아 소박한 아름다움을 전해 준다.
시라즈의 이야기를 오늘 저녁 밤 11시에 마샤드로 가는 비행기타면서 마무리 한다.
2008년 07월 26일(토요일)
Guest House바로 옆에 붙어 있는 KANRRC은 야즈디 박사가 근무하는 곳이며, 오늘 H 교수님께서 관계자 분들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곳이다.
걸어서 이곳 소장인 Mr. Hossein Tavaroli의 집무실로 들어가니 매우 반갑게 맞이 해 준다.
같이 환담을 나누고 10시 경에 프리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광당으로 들어 가니, 관계자 분들 100여명이 자리를 하고 있었다.
프리젠테이션을 하기 전에 종교의식이 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매우 신기하다.
종교의식이 끝나고 우리들 소개를 소장이 한 다음 한 교수님께서는 만연의 미소를 띠우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약 1시간정도 프리젠테이션이 끝나고 많은 질문이 이어 졌고, 끝이 난 후에도 여러 관심사들에 대해서 질문 공세를 펼쳤다.
건물 옥상 녹화에서 정원관리, 사면녹생등 매우 다양하게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 모두를 하늘에서 준 빗물을 모아 이용한다는 목표를 두고 다양한 의견들을 교환 했다.
야즈디 박사와 같이 시내에서 케밥으로 점심을 먹고 다시 Quest House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오후 5시 경에 야즈디 박사가 설계하고 추진한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농업 기술 센터"에 설치된 빗물 저장고를 둘러 봤다.
규모는 6개의 Tank로 각각에 중간에 물이 통할 수 있는 통로를 두고 격벽을 설치하였고 깊이는 약 5.0m 정도, 폭은 1개의 Tank가 약 5.0m 정도 로 전체 규모는 3,000㎥정도 되어 보이나 전통적인 페르시안 구조인 조적조로 축조하여 실제로 담수할 수 있는 물량은 약 1,200㎥정도라고 설명을 해 준다.
물은 채워져 있는데 몹시 수질상태가 않좋아 보인다.
이는 아마도 유입수를 좋은 물로 유입시키지 않아서 인 것 같다.
모든 물이 이곳으로 집수 되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완할 것이 많아 보이나 이 시설만 가지고도 여러 관계자 들은 매우 획기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단다.
이러한 시설을 기본으로 보완 개선한다면 사막에 새로운 인공 오아시스를 만드는데 그렇게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생각 된다
이제 내 마음이 조급해 지는 것이 느껴 진다. 가성성을 보았고 새로운 도전의 목표가 설정이 되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인간 최고의 희열이 아니 겠는가?
사막에 인공 오아시스 프로젝트, 생각만 해도 너무 감격 스럽다. 이젠 머리속 구상을 실현 시켜야 한다.
회사의 전 인력을 집중시켜 그 구상을 실현 시켜 이 거대한 사막에 최고의 갑진 선물인 물을 내 손으로 만들어 놓고 싶다.
아니 그렇게 한다.
그렇게 해야 한다.
마샤드시는 이란의 테헤란 다음의 두번째 도시이나 이슬람의 종교 도시로는 첫번째라고 한다.
그 이유는 도심을 약 1시간정도 벗어나니 계곡이 나오고 작게 나마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 우리나라에서와 마찬 가지로 음식점이 즐비하다. 계곡이 있고, 물이 흐르고, 나무가 자라나니 그 곳에 사람이 몰리고 몫 좋은 곳에 음식점이 자리 잡는 것은 우리나라와 다를 바가 없지만 이들은 이 계곡의 물을 신의 축복으로 신이 준 선물로 받아 들이고 있는 듯 하다.
계곡을 벗어나 조그마한 시골에 엄청나게 큰 식당에서 이란의 마지막 저녁으로 케밥을 먹으며, 작열했던 대양을 어둠속으로 보내고 나무 그늘과 정원에 물이 흐르는 물과 함께 바쁜 일정을 마무리 한다.
2008년07월27일(일요일)
비행기 표 사정이 맞지 않아 10시 30분 비행기로 H 교수님과 야즈디 박사는 먼저 테헤란으로 떠나고 나는 오후 2시 40분 비행기로 테헤란으로 가기로 하고 일단은 짐을 싸서 마사드 국제 공항으로 같이 나갔다.
시간이 4시간 정도 여유가 있는지라 페스트푸드점 테이블에 앉자 이번 이란 출장에 대한 내용을 정리 해 본다.
열심히 정리하는데 시간은 벌써 오후 1시가 넘어서고 있는데 준비해간 노트북은 배터리 교환신호를 보낸다.
어쩔 수 없이 작성하는 글을 멈 추고 대합실로 나오니 벽에 걸려 있는 TV에서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우리나라 “상도”라는 드라마를 이란언어로 해서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시청을 하는 것으로 보아 재미 있는 모양이다.
한참을 TV에 눈길을 주다가 보니 출발할 시간이 다 되었다.
Mashad 국제공항에서 "상도"드라마가 방영 되고 있다.
주위를 둘러 보니 동양인은 나 혼자 밖에 없나 보다. 예정보다 40여분 늦은 시간에 출발을 했다.
공교롭게 비행기 좌석이 중간이라 창 쪽에는 스웨덴의 31살이라는 얼굴에 수염이 많은 남자가 먼저 인사를 건 냈고 유창한 영어로 말을 붙인다.
자기는 관(Pipe)관련 엔지니어라고 하며, 아시아는 일본에 지사가 있다고 한다.
내가 마사드에 온 이야기를 했더니 무척이나 좋은 사업이라며 자기가 꼭 관련 자료를 얻고 싶다고 전화 번호와 메일 주소를 건네 준다. 이 이야길 듣고 있던 통로 쪽에 있는 젊은 이란 친구는 영어를 전혀 못하는 듯 하고 스웨덴 친구 한테 물으면 스웨덴 친구가 영어로 통역 하는 식으로 이런 저런 이야길 하는데 이 이란 친구는 수질 관련일을 한단다 면서 수질관리등에 대해서도 같이 많은 이야길 하고 서로 휴대폰으로 사진도 찍고 재미있게 테헤란에 무사히 올 수 있었다.
국내선 공항에서 국제선 공항 까지는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잘 모른다고 하니까 옆자리에 있던 이란친구가 택시를 타는 곳 까지 같이 움직여 준다.
여기 택시는 택시 표를 발급하는데 에서 행선지를 말하고 표를 사서 택시를 배정하는데 가서 이 표를 제시하면 택시 기사를 불러 주는 이상한 제도다. 택시요금은 150,000Rial(1만5천원정도)를 지불 했다.
이란 국제공항은 무척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한국 사람들도 보인다.
시라즈에서 곁눈질하며 보았던 우리나라 여행객들도 무리를 지어 있다.
내가 먼저 공항에 도착 해서 한 교수님을 탑승권 발급하는 곳에서 기다리다 음료수를 사먹으려고 자판기로 가서 이란 돈으로 33,000리알(3천3백원정도)을 넣었는데도 반응이 없다.
옆에 있던 청소부에게 제스쳐를 했더니 콜라 하나를 뽑아 준다.
그래서 잔돈을 반환 받으려는데 돈이 안 나온다.
몇 번을 해도 그렇다. 옆에 있던 청소부가 계속 음료수를 뽑으란다.
어쩔 수 없이 계속 음료수를 뽑으니 6개가 추가로 더 나온다.
그래도 200리알이 남아 있는데 이는 포기 하라고 하는 듯 하다.
어쩌겠는가, 여기에 왔으면 이곳 룰을 따라야지 자동판매기가 일단 돈이 들어가면 나오질 않고, 음료소만 나온다.
잔돈도 엮시 안 돌려 준다.
이렇게 이해 하면 될것 같다.
음료수를 들고 탑승권 발급하는 곳으로 돌아와 50대 중년 아주머니들에 이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며 나누어 주고는 같이 한 바탕 웃으며 서로의 여행에 대한 피로를 잠시나마 잊어 본다.
늦게 도착한 H 교수님과 야즈디 박사와의 마지막 인사를 하고 면세구역에 들어 오니 살 물건이 없다 당연히 보세구역이 있으리라 생각 했는데 종교적인 나라라 장사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어쩔 수 없이 이란 과자를 10봉지 사서 선물용으로 하기로 했다.
출발시간이 지나서 탑승을 허용한 비행기는 출발시간 한 시간을 넘기고는 이젠 간식을 나누어 준다 아예 저녁을 먹이고 출발할 모양이다.
결국 1시간 40분 정도 늦게 비행기는 이륙했고, 예정시간보다 늦은 월요일 오전 9시30분에 무사히 인천 국제 공항에 도착 했다.
이란은 한 때 인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광활한 영역을 차지하던 중동의 최 강자로서 위세가 당당하던 나라였으며, 페르시아의 찬란한 문화와 예술을 배경으로 멋을 아는 나라였다.
그들은 또한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을 차지하고 장사 수완을 유감없이 휘두르던 타고난 사업가들이 였다.
게다가 그들은 땅밑에 세계에서 네번째 큰 석유와 두 번째 큰 천연개스 저장탱크를 가지고 있는 부자 나라다.
그러나 지난 이십 여년 동안 이라크와의 장기간의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서구의 경제동결 등으로 입은 경제적 빈곤으로, 30여년전 우리의 선배들이 그들로부터 돈을 벌기위해 찾아 갔던 이란은 지금은 우리나라와는 상당한 경제적인 격차를 가지고 새로운 경제도약을 꿈 꾸고 있다. 오늘날 이란에는 삶의 변화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국민들의 요구에 따라 이란은 다각적인 면에서 점차적인 변화를 선택 하게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이란은 저력이 있고 잠재력이 있는 나라로 이란 사람들은 심성이 착하고 외국인에게 지극히 친절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 출장길은 너무 갑작스런 출장이라 여러가지 걱정도 많았지만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고 사막에 인공 오아시스를 만드는 원대한 꿈을 키웠고 이제 그 꿈을 실현 시키리라 생각 한다.
테헤란 시청에 테헤란시를 녹색 도시로 만드는 제안서를 작성해서 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농림부에서는 농작물에 빗물을 효과적으로 관리 할 수 있는 방안을 제안해 달란다.
그리고 이란에서 만난 고급공무원들과 순박한 사람들을 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보았고 이제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것이다.
이란은 현재 GNP 7,000불정도 이나 지하 자원이 풍부하고 순박한 사람들이 있어 아마도 새로운 사업의 신대륙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세계 누구도 구상 하지 않았던 빗물을 저장하여 사막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도록 또 다른 미지를 꿈 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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