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년 16일
간밤에 12시가 넘어 집에 들어와 싸놓은 여행용 가방과 서류가방을 가지고 6시에 아파트를 나셨다.
아파트 앞 도로에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를 타고 잠실 롯데 호텔 옆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으로 바꿔 탔다.
하늘은 높고 공기는 상쾌한 맑고 깨끗한 전형적인 가을날이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
거리의 가로수도 신나게 달리는 리무진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한강변의 살랑대는 물결 또한 가슴한곳을 시원하게 만들어 준다.
공항은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북적인다.
숫한 이야기 꺼리를 만들고 미지의 세계에서 또 다른 세상 밖으로 나가기위해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을 사람들의 모습을 떠 울리며 미국의 달라서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발권 받았다.
남미의 커피의 나라 과테말라에 우리나라 외교통상부 산하의 국제 협력단(KOICA)에서 무상으로 저개발국가에 지원 사업인 상하수도 시설 원조, 사전 타당성조사를 위해 상수도 분야 전문가로 가게 되었다.
모든 경비 지원을 국제협력단으로 부터 받아 지금까지 내 출장길에 한 번도 누리지 못한 비즈니스 석으로 자리를 배정받았다.
나와는 다른 프로젝트인 과테말라의 병원 신축공사의 기술 자문역인 고려대 건축학과 OOO교수님, 국제 협력단의 담당직원 서OO와 함께 했다.
예정된 오전 11시에 비행기는 힘차게 이륙을 했고, 대한항공 기내 승무원들의 친절한 미소와 함께 태평양 상공을 가로 지르며 미국으로 향했다.
이륙 후 비몽사몽 잠결에 들은 안내 방송은 기내에 이상한 전기적인 냄세가 발생되어 전원을 차단하고 점검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의자의 등받이, 모니터, 화장실 등 비상등을 제외하고는 모든 전원이 차단되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된다.
이미 비행기는 인천을 떠나 7시정도 지난 후 이고 아직은 태평양 상공일 것이다.
두려움 같은 게 밀려온다. 이윽고 안전점검을 위하여 인근공항인 시에틀공항에 긴급 착륙을 한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인천을 떠난 지 9시간이 지난 새벽4시(한국시간 저녁 8시)에 시애틀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을 했다. 창밖에는 긴급소방 차량이 불빛을 번쩍이며 수십 대가 대기상태로 있다가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을 하자 모두 비행기를 따라 달려온다. 영화에서 많이 보든 장면이다.
승무원들의 지시에 따라 모든 승객은 짐을 챙겨 공항으로 들어오니 특별히 대기실이 없는 모양이다.
입국허가도 받지 못해 대기상태로 1시간 정도 입국장에서 많은 승객들은 서서 기다렸다.
겨우 탑승구 쪽의 대기실로 자리를 옮겨 간단한 음료와 빵을 나누어 준다.
퍼스트 클라스에 탑승객으로는 언론에서 많이 봤던 낮익은 대기업 총수도 이런 비상 상황에서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지내기를 3시간정도 지난 오전 7시에 모든 정비를 마치고 다시 비행기는 달러스로 이륙했다. 아직도 3시간 10분을 더 가야 한다고 한다. 서북부에 있는 씨에틀과 남부에 위치한 달러스와는 시차가 1시간이 더해져서 우리는 12시 30분경에 무사히 도착 했다.
다행이도 우리가 가야할 과테말라 행 아메리카 에어라인은 아직 4시간 정도 후에 과테말라 행 비행기를 타야 하기에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대기실에서 차와 음료수를 마시며 화창한 날씨와 함께 나래짓하는 달라스 국제공항의 비행기 이착륙을 내려다보노라니 잠이 밀려온다. 서울은 지금 새벽녘을 향에 깊은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16시 40분 예정된 시간에 달러스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과테말라로 향했다. 멕시코 만을 지나고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장관이다.
너무 아름다운 노을이 서쪽을 향에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동이 트는 아침을 맞이할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은 맑고 아름다운 가을 녘의 정취를 만끽하는 10월의 화창한 하루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과테말라에는 19시경에 도착했다.
공항은 트러스 구조물인데 다소 어둡다.
비행기에서 내려 통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입국 수속 장으로 오니 한적하다 못해 썰렁하다. 어떤 차단 시설도 없고 통제 하는 사람도 없다. 입국 수속을 하려는데 직원은 영어를 전혀 모르는 모양이다. 아마도 읽지도 못하는지 옆 카운터에 물어 보고는 그냥 여권의 입국 사증에 도장을 찍어 준다.
쉽게 입국 수속이 끝나고 짐을 찾으려고 서있는데 한국국제 협력단 부소장님께서 우릴 맞이한다. 곧 바로 짐을 챙겨서 다시 입국 수속 장으로 들어가더니 다른 통로로 우릴 안내한다. 이해 못할 상황이 일어나고 있지만 그냥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세관을 거치지 않고 다른 통로로 우린 밖으로 나와 승용차로 10여분을 달려 "Barcelo 컨벤션 센터"라고 쓰여 있는 호텔로 왔다.
호텔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남미의 생음악이 흘러나온다. 아름다운 의상을 걸친 사람들이 파티를 하는지 웃음소리와 함께 그들의 부를 과시하며 주말 저녁을 즐기는 듯하다.
숙소에 짐을 갖다 놓고 인근 “고려정”이라는 한국 식당에 저녁 8시가 조금 넘어서 들어가니 한국국제협력단(이하 “코이카” 라고 한다) 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김치찌개와 삼겹살, 내가 준비해간 소주로 저녁식사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로 이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서울과는 9시간의 시차를 가지는 이곳은 10월 17일 토요일 밤이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서 이곳에 도착하기 까지 무려 26시간정도 지났다.
참 멀다.
이 먼 곳에 우리 교민들이 약 1만 명 정도가 계시는데 대부분은 봉제업 쪽에서 일을 한다. 생각 했던 것 보다 많은 교민 수에 놀라고 한국식당에서의 김치찌개와 삼겹살 맛은 서울과 다르지 않음에 놀랐다. 물론 소주도 서울에서 공수해와 팔고 있었다.
공항에서 부터 시야에 들어오는 우리나라의 광고와 거리에서 만나는 자동차는 왠지 모를 정겨움으로 닥아 온다.
내일은 지방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현지에서 상하수도 설치에 대한 조사를 잘 해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을 만들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이 멀고먼 나라에 와서 무상 원조를 하려고 한다.
난 그 조사일원으로 참여 한다는 사실은 신비롭지 않은가?
진짜 이 나라 국민이 원하고, 우리나라의 자부심을 줄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곳 코이카 직원 분들은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얼굴이 너무나 해맑다.
이분들의 얼굴에서 행복을 느낀다.
진정으로 국가 브랜드 높이고자 오지를 마다하지 않는 이분들은 진정한 행복의 전도사일 것이다.
2010년 10월 18일(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호텔을 둘러보니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야외에는 수영장이 있는 비교적 시설이 좋은 고급호텔이란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09시 30분경에 짐을 챙겨서 체크아웃을 하니 USD 85.00이 계산된다. 시설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것 같다. 코이카 소장님과 같이 근무를 하는 토목공학을 전공했다는 31살의 현지인 아카디아라는 여자 분이 도착했고 두 대의 차에 나누어 타고, 다시 현장으로 출발을 했다.
소장님과 허 교수님과 내가 같은 자동차를 탔다. 소장님은 가는 길에 가능하면 자동차 창문을 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자동차에 진한 썬 팅을 한 것도 치안이 불안해서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외부로 우리가 노출되지 않는 것이 안전할 것이라 한다.
도로는 4차선도로 비교적 잘 개통이 되어 있었으나 지난여름에 내린 비로 인하여 2개 차선은 산사태로 사용을 하지 못하는 구간이 대부분이고 길은 산악 지형을 따라 굴곡이 심하다. 아마도 도로 사면을 제대로 하지 못한데다가 많은 비가 내려서 대체적으로 풍화토의 지형을 가진 사면이 붕괴된듯하다.
그러나 국가의 재정이 열악하다 보니 복구에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전 구간의 도로 사면이 붕괴되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가야하는 목적지 까지 약 350km정도의 거리 인데 약 6시간 정도를 계획하고 있었다.
약 2시간을 달려 간곳은 세상에서 "물의 장소"라는 뜻을 가진 Atitlan호수가의 “La Riveera de Atitlan" 호텔에서 호숫가를 바라보며 샌드위치로 점심식사를 했다.
아티틀란 호수는 길이 19km,넓이 9.6km, 수심 320m으로 면적이 127.7sq.km인 과테말라에서는 두번째로 큰 호수다.
영국의 소설가인 "올더스 헉슬리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호수라고] 했단다.
때마침 빗줄기가 호수를 적시고 있었고 협곡으로 둘러싸인 호수는 너무 아름답다.
화산을 둘러 싸고 있는 아티트란 호수는 물안개가 자욱하고 높은 산자락에 둘러싸인 호숫가엔 그림과 같은 폭포와 별장들이 있고, 협곡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는 별천지와 같은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 듯하다.
호수를 벗어나 다시금 자동차는 하염없이 달렸다. 때로는 물안개가 자욱한 산자락을 지나기도 하고, 빗가 내리는 조그마한 시골을 지나기도 했다.
산지의 초목의 형태를 보니 대략 강우량은 1,500 ~ 2,000mm의 연간 강우량을 가지는 것으로 추정이 된다.
오후 5시 30분경에서야 우리의 목적지인 Huehuetenango에 도착 했다.
호텔이름은 “Hotel of California"로 그럴싸한데 우리의 여인숙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방은 조그마하고 구색을 갖춘다고 욕조도 붙어 있긴 하다. 하루숙박료로 100케찰, 우리 돈으로 약 13,000원 정도 한다. 그러나 무선 인터넷은 무지 잘된다. 내 방은 4층인데 계단으로 되어 있어 가방을 가지고 올라가는데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각 층마다 공사를 하는 곳이 있고 정리 정돈은 찾아 볼 수 없다. 시멘트 냄새가 가득하다.
이곳에서 오늘부터 4박을 해야 한다.
1시간 정도 여행 가방을 정리하고는 6시30분경에 저녁 식사를 하려 모두들 모였다. 이곳은 특별한 전통 음식이 없다고 한다. 맥도날드에 가서 햄버그로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운전기사 2명이 무척 좋아 한다. 이분들의 1달 임금이 약 우리 돈으로 35만 원 정도인데 햄버그의 Set Menu가 약 8,000원정도 하기 때문에 사먹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런 시골에 맥도날드가 있는 것도 신기한데 손님은 비교적 많이 있다. 과테말라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밖에 없다고 들려준다. 한 예로 거지들은 미국 거지를 부러워 하지만 부자들은 미국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할 만큼 부를 누라고 있다고 한다.
중산층이 아예 존재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만큼 정부가 부정부패가 심하다는 반증일것이다.
2010년 10월 18일(월요일)
아침 6시에 1층 카운터로 내려오니 이미 Huehuetenango시장님께서 벌써 와 계신다. 같이 호텔 내에 있는 초라한 식당에서 토스트 한 조각을 먹고 7시 30분경에 출발을 했다.
이곳이 해발 약 2,000m증도인데 해발 약 2,500m에 위치한 인구 1만 명이 안 되는 조그마한 도시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 했다. 약 100km정도라고 하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산을 굽이굽이 돌고 돌아 넘어 왔는가 싶으면 더 큰 산이 앞을 가로 막고 끝없이 펼쳐지는 산길은 좋지 않는 도로 노면과 함께 롤러코스트를 타는듯하다. 고산지대로 들어가는 길은 고소증세와 몸부림치는 차량의 요동을 견디다 못해 속이 매스껍고 머리가 멍하다. 이렇게 3시간을 달려 도착한 시청은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우리 만치 초라하다.
시장님 실은 동네 사랑방 처럼 누가 공무원이고 누가 동네 주민인지 모를 정도로 몇몇 분이 인사를 건네 왔고, 집무실은 책상 하나 창 쪽으로 놓여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창밖의 조그마한 광장은 우리가 온다고 해서 인지 요란스럽게 폭죽이 한 동안 터진다.
광장 건너편엔 시장이 들어서 있다. 주로 과일과 옷, 신발 등을 파는 곳으로 골목 안쪽으로 길게 늘어 있다.
인디오 원주민들은 비교적 체구가 작다.
우리보다는 일반적으로 몸집이 작고 아담하며 얼굴은 검은 빛을 띠고 있다.
얼굴에는 순박한 그 자체이고 아무런 걱정이 없이 살아 가는듯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영양이 결핍하여 질환에 노출되어 있고 사는 것이 궁색하다고 한다. 대부분 산지를 개간하여 옥수수와 커피가 주 생산물이고 과일 등을 재배하는 척박한 땅이다. 산은 신생대의 구조를 가지는 80%이상의 경사도를 가지는 고산지대다. 옥수수와 커피를 수확하기위해서는 경사지에 밧줄을 잡고 작업을 한다고 한다.
좋고 비옥한 땅은 백인들이 장악하여 부를 축적하고, 원주민인 인디오들은 이런 오지로 들어와 생활을 연명하고 있다.
이곳엔 주민이 약 1만 명 정도가 경사지에 살아가고 있으나 식수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이곳 시장님이 여러 차례 고이카를 방문하여 식수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 하여 이 오지 마을에 오게 된 것이다.
현재는 약 700㎥/day를 해발 700m아래쪽에서 펌핑해 와서 고체 소독약을 투입하여 사용하는데 저장조는 콘크리이트 구조물로 마을 상류에 300㎥정도 규모로 설치되어 있었다.
물이 모자라 일일 오전 오후 2시간 식 제한 급수를 하고 있는데 약 800㎥/day의 용수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시장님 실에서 담당 실무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좁은 골목을 거꾸로 올라가 있는 물 저장 탱크를 둘러보고, 취수원지가 있다는 곳으로 경사지가 매우 가파른 비포장 길을 따라 약 1시간 이상을 계곡으로 내려가니 이곳엔 엄청난 유속으로 강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무척 맑고 유량도 풍부한 좁은 강에는 조그마한 교량을 건설하는 현장에 인디오 인들 약 20여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 거푸집을 설치하기 위해 터파기를 해 놓은 상태이고 모든 것을 인력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을 보더니 반갑게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한다. 정겨운 표정들이다.
바지는 검정색으로 발목 있는 곳이 좁게 만들어져 있는데 모두들 같은 바지를 입고 삽으로 터파기를 하고는 거푸집을 짜는 모습은 내가 20여 년 전 처음 건설 현장에서 만났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흐르는 물길은 수정처럼 맑은 자태를 뽐내며 빠른 속도로 흘러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 더 자동차로 올라가서 시장님의 안내에 따라 옥수수 밭으로 들어가니 수원지가 나타난다.
좋은 물을 얻기 위해 용출되는 지점을 찾아 수원지로 정하고 이를 펌핑하여 사용하여 온 것 같다.
100mm정도의 강관 파이프 가 연결되어 있었다.
이곳을 수원지로 해서 700m 산으로 펌핑하여 위치에너지를 이용하여 배수지로 연결하고 이곳에서 정수처리를 한 후 시민들에게 공급하겠다고 언제 준비를 했는지 설계 도서까지 보여준다.
우리가 온다고 해서 3일 전에 모든 설계를 했다고 한다. 이들에겐 몇 년을 준비해서 기다린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나의 책임도 막중하게 느껴진다.
이 순박한 얼굴모습에서 간절함이 묻어나는 절박함을 넘어 가슴 시린 애달 품이 눈시울 뜨겁게 한다.
이미 오후 2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에 낡은 비닐봉지를 풀어 헤쳐 놓고 점심을 먹자고 한다.
도시락을 준비 해 온 것이다.
옥수수 가루로 동그랗게 우리들의 전 처럼 붙인 이들의 주식인 아틀리에와 계란 프라이, 콩을 엇게어 만든 소스가 든 일회용 쟁반을 하나씩 건네준다.
내입에는 맞지 않다.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다.
억지로 몇 개를 팥 소스에 발라먹고는 콜라로 입가심을 하고는 다시금 시청으로 돌아와 기술 담당자에게 설계도면 몇 가지를 보완해 달라고 하고는 기다리는데 그동안 밀린 시장님의 결재 서류를 가지고 직원들이 연신 결재를 받는다.
노련한 솜씨로 서명을 한 후 스템플을 찍는 것으로 결재가 끝난다.
동네 사랑방처럼 천진난만한 미소와 어떤 장식도 없는 벽면과 대비 되는 시장님의 모습은 내 고향의 한 추억의 장면을 되내이는듯하다.
잠시 후 장년의 인디오 할머니(실제론 나이가 많지않다)와 소녀 둘이 큰 통에 토종닭과 감자를 넣어 삶은 것을 한 그릇씩 퍼 준다. 배는 고프지도 않는데 뭔가 해주고 싶은 이들의 마음을 가득 담아 정성을 다해 만들어 준 마음 때문에 입에 맞지는 않았지만 감자와 닭고기를 모두 건져 먹었다.
우리가 먹다 남은 국물은 다시 큰 통에 붓는다.
아마도 남은 음식은 나눠 먹을려고 하는 것 같다.
설계 도면과 자료를 받아들고 다시 숙소가 있는 시로 출발을 했다. 거리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시간은 무려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저녁 7시가 넘어 도착하여, 우리보다 하루 늦게 도착한 대구가톨릭대 부총장님이신 박정한 박사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로 안심스테이크를 시켜 나누어 먹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새로 지은 호텔이 있어 박 교수님께서 투숙을 한지라 여 교수님도 짐을 싸서 호텔을 옮겼다.
우린 밤도 늦었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내일 호텔을 이곳으로 옮기기로 하고는 낡고 먼지가 가득한 호텔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던졌으나 아직 시차 때문에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2010년 10월 19일(화요일)
일찍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는 호텔을 체크아웃을 하고 개장한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았다는 호텔에 다시 체크인을 했다. 하루 숙박료가 50불이다. 이틀간 묵었던 방값이 하루에 10불정도 얻는데 5배가 비싼 방이다.
아직 새로 만든 페인트 냄새가 나고 준비가 미숙한 상태 이었지만 넓은 방과 침대, 욕실은 마음에 든다.
아침으로 토스트를 먹고는 국립모자병원으로 갔다. 나의 일과는 상관이 없지만 의사이신 박 부총장님과 건축 디자이너 이신 여 교수님께서는 이 병원을 둘러보고 고처야할 점과 지원해야할 사항에 대해서 협의를 했다.
병원 관계자들과 오전 내내 협의를 하고는 점심 식사를 인근의 KFC에서 하고는 오후에 다시 더 협의를 한 후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노인 요양원 신축 현장으로 가서 시공을 하시는 사장님과 시공에 따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둘러보았다.
조적식 건물인데 제법 잘 짓고 있는 듯 했다. 건축을 한 사장님께서는 만연의 미소를 머금고 일일이 설명을 해주신다.
호텔로 돌아와 레스토랑에서의 많은 이야기꽃으로 낮선 이곳에서의 깊어가는 밤으로 밀어넣었다.
2010년 10월 20일(수요일)
나와 코이카의 O소장, 아카디아와 같이 새로운 사업지인 인근의 마을로 약 2시간 동안 자동차로 이동했다.
마을 사람들 약 200여명이 교실이라고는 2칸 밖에 없는 학교 앞 작은 의자에 모여 앉았다.
동네 대표로 되시는 분이 우리를 소개하고 조 소장도 이곳에 찾아 온 목적을 설명했다.
지난 4년 동안 식수를 끌어 들이기 위해 노력 했지만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로 마을 대표 되시는 분은 허탈해 했다. 우리들에게 기대를 무척이나 많이 하는 듯 했다.
길거리에서 자동차 기름을 팔고 있는 아이들
인근 도시의 시장님
커피나무
힘들게 해발 약 2,500m를 아이와 무거운 짐을 이고 오르는 아주머니
인디오 학생들과 잠시
취수원으로 가보자고 하여 픽업트럭 뒤에 가득 마을 주민을 태우고는 달려가는 자동차를 따라 비포장 길을 하염없이 올라가니 출렁다리가 놓여 있는 계곡에 많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이곳 계곡의 가장자리에 용출되는 곳을 가리키며 취수원으로 하려고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 취수하여 중력에 의한 위치 에너지만으로 마을에 식수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마을로 내려가는 송수관은 5개 정도이다.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다른 마을 것이라고 한다.
같이 이 송수관을 사용하면 안 되는 것이냐고 하니 마을별로 언어도 다르고 생각이 서로 달라 협조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상한 동네다 우리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들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하고 비포장 길을 따라 밀림 속을 벗어나 또 다른 도시로 이동을 했다.
길거리엔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기름통을 갖다 놓고 자동차 기름을 팔기 위해 호객 행위를 하는 모습이 끈이지 않고 이어 진다.
어느 이름 모를 길가의 페스트 푸드 점에서 햄버그로 점심을 때우고 도시라고 해봐야 별것이 없는 시청 청사로 들어가니 검은 얼굴의 뒷골목 노숙자 같이 생긴 시장이 우릴 반긴다.
몇 년 전부터 상수도를 설치하려고 설계 도면을 완성했다면서 보여 주고는 취수지로 예정된 현장으로 안내 한다.
시청 청사 앞은 시장으로 제법 많은 사람들과 시장 노점상들이 움집해 있다.
시장과 국제 평화기금 직원들이 탄 자동차를 따라 가려니 곧 장 비포장 산길로 접어든다.
말이 산길이지 해발 약 2,000m에서 출발하는 길은 경사도가 상상을 초월 한다. 노면은 비포장이라는 말로 표현이 되기가 어렵다. 아름드리 돌과 움푹 페인 웅덩이며, 길가에 간간이 나타나는 말을 모는 아이들과 무표정한 얼굴로 짐을 머리띠로 연결된 등짐, 옆구리엔 어깨띠로 아이를 감싸고, 머리엔 짐을 이고는 갖파른 오르막길을 오르는 이들의 모습에서 어떤 생각도 전달할 수 없다. 고달픈 삶의 한단면을 모두 안고 있는 것 같다.
산은 끊임없이 가파르게 연결되고 이 사이를 굽이굽이 돌아 상 중턱에 우릴 내려놓는다.
커피 밭을 뚫고 계곡으로 내려가니 시원한 계곡의 물이 신명나게 흐르고 있다. 이곳에서 이미 다른 마을에서 식수원으로 취수하고 있는 콘크리이트 박스에서 연결되는 파이프가 보인다.
이곳에서 이들은 다시 취수를 해서 물을 공급 받고자 한다.
이곳 역시 여러 마을이 같이 합심하여 맑고 풍부한 물을 일정 지점 까지 끌어다가 정수과정을 거처 공급체계를 갖춘다면 편할 것인데 이들의 상식엔 이 단순한 진리가 어려운 모양이다.
오직 다른 곳과 마찬 가지로 자기네 마을에 사용되는 용수는 자기들이 별도의 송수관을 설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모두들 이렇게 사용한다.
체계적인 공급체계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의 행정력도 전혀 미치지 않고 오직 자급자족하다 보니 이러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되고 발전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이 된다. 산길은 험준하다.
산기슭에는 커피 밭과 간간히 나타나는 고산지대의 작은 집과 이곳에 살아가는 원주민들, 옥수수 밭이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지고 스쳐 지나가는 이들의 눈에서 낮선 외국인이 신기하기만 한 듯 모두들 우릴 향해 지켜본다.
어쩌면 이들은 외국인을 처음 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기하기도 할 것이다.
산기슭을 따라 올라갔던 길을 다시 어렵게 10여 km를 내려와 다시금 시청사 앞으로 오니 힘겹게 올라온 버스는 부피가 제법 큰 짐과 사람들을 토해 내 놓는다.
우리의 팥빙수와 같이 생긴 얼음을 갈아 제리같은걸 넣어 주는 노점상 주위로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맛있게 사먹는 모습에 신기한 듯 바라 보다 같이 사진 한 컷을 찍어 본다.
점점 우리들 행동을 지켜보는 이들이 많아진다.
이 산골에 낮선 동양인의 출현은 아무래도 사건 인가보다.
시장님의 간절한 기대를 뒤로 하고 시내 호텔로 돌아 오는 길은 멀게 만 느껴진다.
2010년 10월 21일 (목요일)
이제 이 도시를 떠나야 한다. 다시 언제 이곳에 올지는 알 수없지만 4일 밤 낮 동안 새롭게 맞이한 미지의 세계엔 또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작은 키에 검은 얼굴, 뭔가 부족하고, 삶이 지치게 만들지만 뭔가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이들의 모습에서 연민의 정을 느낀다.
8시경에 호텔을 벗어나 과테말라시로 돌아오는 길은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상쾌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한 시간쯤 달렸을까 도로 중앙 차선에 소나무를 잘라 군데군데 놓아두고 경찰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는데 순간 도로가 한 컨에 죽은 사람의 모습이 보이고 몇몇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교통사고 인가 보다.
차가 조금이라도 막히는 곳에는 어디서 긴급하게 달려 왔는지 노점상이 갖가지의 상품을 들고 나와 호객행위를 하고 있고, 목적지가 어딘지 모르는 길을 따라 머리띠와 연결된 장작 나무를 팔려고 가는 것인지 몇몇이서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한 5시간 정도 달려서 도착 한곳은 코이카에서 금년 2월에 준공한 모자병원이다.
새로 지어서 깨끗하게는 보이지만 조 소장님은 연신 건축업자가 맘에 들게 공사를 해주지 않아 마음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늦은 점심으로 인근의 페스트 푸드 점에서 식사를 하고 과테말라의 옛 수도인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안티구아를 둘러 봤다.
화산폭발과 지진 등으로 현재의 수도로 이전했다고 하는데 너무 아름다운 유럽풍의 고대 도시다.
안티구아는 과테말라의 수도인 과테말라 시티에서 북서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 있고, 해발 1,500m의 지진지대로서 르네상스식 건축물이 산재해 있다.
안티구아는 1773년 지진으로 파괴될 때까지 200년간 과테말라의 수도였으며, 전성기에는 인구 7만명의 도시로서 vpfn 리마와 멕시코시티와 함께 중남미 지역 3대 도시를 형성했다고 한다.
안티구아는 1773년 2차례의 지진 이후 방치됐다가 1960년대 안티구아 보존법령이 제정돼 일체의 현대적인 시설물 건설이 금지되고 본격적인 복구작업이 시작됐으며 현재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담하지만 아름다운 도시이다.
전통과 엮사속에 같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이들의 풍경은 한 폭의 영상을 전해 주는 듯하다.
지붕엔 세월의 이야기를 해 주듯 잡초가 자라고 거리엔 작은 돌을 심어 고풍스런 분위기를 더해준다.
도로는 중앙을 깊게 하여 빗물이 중앙으로 모여 침투와 배수가 되도록 한 구조로, 지금의 도시 아스팔트의 구조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되어 있다.
어느 장면에 카메라 셧트를 눌러도 작품이 되고 거리의 화가들은 이 작품을 다시금 도화지에 옮겨 담는다.
왜 우리에겐 이런 거리가 없을까?
우리의 역사는 어디로 흘러갔는데 흔적을 남기지 못했을까하는 아쉬움이 연신 머릿가를 맴돈다.
모든 것이 유적이고, 모든 것이 이들의 삶인 것을 우린 왜 지키지 못했을까를 탄식하며 2-300년 된 오래된 도시를 걷고 걸어 본다.
운치가 있다.
감미로운 색체와 담장 너머로 내려다보는 잡초와 푸른 담쟁이 넝쿨들은 어디에선가 만난 듯 하다 정겨움으로 나타나곤 했다.
처음 묵은 던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짐을 정리하고 첫날 만났던 "고려정" 한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2010년 10월 23일(금요일)
이번 출장 보고서를 정리하느라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9시에 약속된 보건부 장관을 만나기 위해 공관으로 갔다.
약속시간 보다는 약 30분 늦게 나타난 장관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다.
국회의원과 관련 공무원들이 배석한 가운데 새롭게 추진할 모자병원에 대한 지원을 코이카에서 부탁을 하고 장관은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고는 한 시간 이상의 토론은 상호 지원 협력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다음 약속장소는 국제협력 기금이라는 기구로 코이카가 지원하는 식수공급 사업에 대해 상호 업무 협력서에 서명을 하고는 스테이크 하우스에서 마지막 일정을 끝내고 고급스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마지막 음식으로 맛보며 모든 일정을 마무리 했다.
코이카 사무실로 우리가 출발해야 하는 저녁8시 까지는 다소 시간이 남아 이번 식수공급 사업에 대한 자료정리로 마무리를 했다.
오후 5시가 가까워 공항으로 출발했고 입국할 때와 마찬가지로 VIP실로 안내해 준다.
그렇게 붐비지 않은 공항은 정확한 시간에 이륙했고 4시간 후에 미국의 관문 LA공항에 무사히 우릴 내려놓는다.
돌아오는길에 대한항공 LA First Class 라운지
'나의 삶 > 여행·Travel'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10422-일본(동경) (0) | 2011.04.24 |
---|---|
20110210-베트남 하노이 (0) | 2011.02.14 |
20100824-일본 동경 (0) | 2010.08.29 |
20100604-중국 상하이-창조우 (0) | 2010.06.07 |
20100427-네들란드 (0) | 2010.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