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2일
베낭하나를 당랑메고 09시 비행기로 김포에서 동경 하네다 공항으로 간다. 11시 정도에 하네다 공항은 그리 번잡스럽지 않다. 전철에서 표를 사서 신쥬쿠로 가기위해 그리 낮설지 않은 전철에 오른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빈자리 가 나고 그 틈을 삐집고 앉아 스처 지나가는 동경시내를 훔처 보노라니 어느새 1시간 가량 달린 전철은 신쥬큐임을 알린다. 이곳에서 다시 전철을 갈아 타야 하는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신쥬쿠역은 올때마다 늘상 들리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분주히 오고가는 곳이다. 시간을 보낼겸 역과 연결되어 있는 전자 전문 백화점으로 들어셨다.
내가 20여년전에 일본을 오고갈 때 이러한 전자상가는 새로운 신 문물을 알려 주는곳었고,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을 할 수 없는 제품들이 시선을 끌던 곳이었다. 사고 싶어도 가난한 출장객에게는 그림의 떡, 그자체 였던 곳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러한 전자 상가는 우리들 눈에 비치는 모습은 서울의 어느 낡은 뒷골목의 중고 시장 같다는 느낌이 든다. 지난날 진열된 상품의 가격을 알리는 현란한 가격표시는 시선을 고정시키기게 충분했었는데 똑 같은 이 모습에서 유치함이 느껴지는 것은 왠일일까?
일본에서 뭔가를 선물로 사다 주면 무척이나 좋아 했던 우리였는데 살것이 없어 고민을 해야 하고 상품의 조잡함에 쓴 미소를 짓게 하는 것은 또 왠일일까?
우리가 닥아가기엔 너무나 크고 먼 일본이 었는데...
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모두 검은색 톤의 옷이 대부분이고 왠지 모를 그들의 얼굴에서 어둠을 느낀다.
건성으로 1층부터 7층까지를 둘러 보고는 다시금 신쥬쿠 역내로 들어와 점심으로 도시락을 파는 식당으로 들어 왔다. 삼각김밥과 몇가지의 색체를 띤 도시락을 주문해서 5,900엔을 지불하고는 원탁에 다른 사람들 틈세로 빈자리에 앉아 점심식사를 했다.
아직은 약속시간까지는 많이 시간이 남아 있지만 초행길이라 미리 갈 요랑으로 케이오선 전철을 탓다.
준급행 열차를 타고 약 40분정도 가니 “세이세키사쿠라가오카역”에서 내려 퍼시픽컨설턴트를 찾으니 역과 연결되어 있는 인근에 바로 위치하고 있었다.
오후 4시에 약속이 되어 있는데 아직은 시간이 오후 2시다. 다시금 역인근을 둘러 보니 반대편쪽에 백화점이 있어 둘러 보다가 6층 스카이 라운지에서 오랜지 쥬스 한잔을 사서 마시며 노트북으로 잠시 일을 정리 해 본다.
자리를 옴겨 1층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 커피한잔을 들고는 노천에 있는 테이블에서 하던 작업을 마무리 하노라니 오후 4시가 되어 온다.
걸어서 힌색타일로 되어 있는 본사 건물로 들어서니 안내 데스크에 2명의 여자분이 자리를 하고 있다. 와따나베씨를 만나로 왔다고 하니까 곧바로 한국에서 온 김상이냐고 반문한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고는 방문증을 교부 받고 있으려니 곧바로 김현아 박사가 데스크로 달려 온다.
지난 3월에 고성에서 빗물 국제포럼에서 처음 만나고는 이곳에서 다시 만나니 무척이나 반갑다.
자기는 아직 업무가 끝나지 않았다며 회의실로 안내를 하고는 곧바로 근무지로 가고난 뒤 57세의 와다나베 이사가 들어왔다.
작년 8월에 신쥬쿠에서 만나고 이번이 두 번째다.
가지고온 선물을 전해주고는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 갔다.
와다나베이사는 수자원분야가 전문으로 영어가 유창하다. 나의 어설픈 영어와 같이 고성 프로젝트에 물순환 해석에 대해 하나식 이야기를 했다.
업무의 범위, 기간, 입력자료, 견적금액 등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다. 5시가 지나자 김현아 박사가 업무가 끝났다며 회의실로 들어오고 그 동안 이야기를 나눈것을 다시금 정리 했다.
와다나베 이사는 앞으로 비즈니스를 할때 가능하면 자기회사 이름도 같이 넣어서 영업을 하면 서로 도움이 되지않겠냐고 같이 많은 일을 하자고 한다.
퍼시픽컨설턴트는 직원이 약 1,400여명이상되는 일본에서는 두세번째가는 큰 토목설계회사로 세계 여러나라에서 일을 하는 규모가 매우 큰 회사다. 물론 한국의 여러 회사들과 상호 경쟁해야 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난 이들이 개발해 놓은 도시 물 순환 해석 프로그램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고성 프로젝트에 적용해 보려고 한다. 물론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할 것이다. 그 첫 번째 선결 조건은 엮시 금액이 아닐까한다. 아무리 좋은것이라도 서로 금액이 맞지 않으면 하기가 어려운 것일테니까?
다음에 메일로 견적을 달라고 하고는 업무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 한후 이런 저런 사담을 나누었다.
나의 사업 방향과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는 앞으로의 비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니까 상당한 관심을 가져다 준다. 저녁 6시 40분이 지나서야 회의실을 벗어나 3명이서 같이 전철역으로 걸어와 같은 전철을 탓다.
몇정거장을 지나서 와다나베 이사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내리고 나와 김박사는 신쥬쿠에서 내려 다시 우에노역으로 왔다.
역 근처에 예약해 놓은 5,200엔 짜리 저렴한 호텔에 짐을 놓고는 인근에서 초밥으로 김박사와 이런저런 이야기로 저녁 식사를 같이 했다.
내가 보는 일본 이야기를 하며 김박사의 인생이야기도 들어주며 낮선곳에서 유쾌한 이야길 많이 했다.
36살의 김박사는 내가본 사람중에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그 동안 주고 받은 메일내용에서나, 같이 이야길 나누어 보면 끝까지 일을 챙겨 주고 확인 하는 모습에서 같이 일을 할수 있으면 하는 욕심이 나는 사람이다.
서울산업대, 성균관대학원을 거처 동경대학교에서 환경공학으로 박사를 하고 퍼스픽 건설턴트에서 3년째근무를 한다고 하는데, 김박사가 일을 하는 퍼시픽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혼을 해서 아이들 둘을 두고 있고 남편은 같은 학교에서 유학중에 만난 건축학박사며 건축사로 지난 고성에서 만나보니 너무 착하고 성실한 분으로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두 부부가 열심히 살아 가는 모습에서 왠지모를 행복감이 느껴진다.
밤 10시 30분이 지나서야 헤어져 호텔로 돌아와 잠을 청한다.
4월23일
새벽녘에 빗소리에 잠을 깨다 자다하다 늦은 9시경에 자리에서 일어나 워낙에 싼 호텔이라 샤워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사워를 하고는 지하의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며 나를 찾는다
김박사다. 남편이 밤늦에 지진이 난 지역에 건축구조안정성 검토 때문에 출장을 갔다가 지난밤 늦게 돌아 왔다며 인사차 연락이 왔다. 이렇게 잊지않고 배려를 해주어서 무척이나 고맙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마친다음 9시30분경에 호텔을 나셨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등산 자켓을 입고온지라 베낭과 함께 빗속을 걸어 우에노역앞을 지나 우에노 공원으로 향했다.
벚꽃이 만발한 동경에서는 봄을 가장 먼저 알린다는 우에노 공원은 이미 벚꽃은 간곳없고 벚나무엔 한 여름인것 처럼 파란 나뭇잎이 울창하게 자라있다.
간간히 우산을 써고 다니는 몇사람을 제외하면 공원은 조용하다. 10여년전에 이 공원에 3개로 분리되어 있는 호수에 수질이 좋지않아 수중폭기를 설치 했었는데 이 시설은 온데간데 없고 그 때 설치한 안내 표시판만 호수 가장자리에 위치한 벽면에 붙여 있다.
새삼 반갑다.
세월의 흔적을 보는것 같다.
15년전에 설치 했던 수중폭기 시설 안내 표지 판
사진 몇컷을 찍고는 혼자 공원을 기웃거리다 다시 우에노역에서 동경역으로 가기위해 전철을 탓다.
역사의 흔적을 보고 싶었고, 수많은 사연이 그대로 녹아 있을듯한 동경역은 10여년전에 와 보고는 다시보고 싶어서 가보려고 한다.
우에노역에서 동경역은 불과 10여분 만에 도착 했다. 밖을 나오니 여전히 비가 내린다.
그런데 동경역이 사라지고 없다.
동경역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동경역
전체가 가림막으로 가린체 리모델링 공사 중이다. 공사현장 가설 펜스에는 역사의흐름을 알려주려는듯 건설 초기부터의 현재 까지 사전을 전시하고 있었고, 연신 덤프트럭이 오고가고 있다.
펜스에 붙은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서양의 노부부에 말을 건내본다.
네들란드에서 여행을 왔다고 한다. 건축 아티스트라고 하며, 다정스럽게 노부부는 연신 서로에게 설명을하고 느린걸음으로 자리를 옴긴다.
같이 네들란드에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길 나누고 동경역에 대한 사진을 보며 서로의 견해를 나누며 같이 느린 걸음으로 같이 걸었다.
동경역은 1903년에 설계를 시작해서 1908년에 공사를 착공하고 1912년에 공사를 완공한 것으로 빨강색의 전형적인 서구식 건축물로 매우 아름다운 역이다.
숫한 역사를 안고 있는 이 역은 또다른 역사를 묻기위한 공사를 하는 모양이다.
세계 제2차대전의 한가운데에서 제국의 힘을 보여 주기위해 건축한 동경역은 황거(皇居)에서 불과 1km도 체 안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숫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제국의 힘을 과시하기위해 한반도로 태평양의 군도로 떠났고,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 마지막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낮선 여행지에서 서로 인사와 헤어짐을 반복하며 나는 동경역 앞에 자리 잡고 있는 황거로 걸음을 제촉했다.
비는 더욱 세차게 몰아 친다.
황거에 다달랏을때는 세차게 몰아 치는 비 때문에 황거를 감싸고 있는 해자에 카메라를 겨눌수가 없다. 한참을 비를 피해 서 있다가 몇장의 사진을 찍으며 둘러 보았다. 황거를 벗어나 바로 앞이 있는 물과 연결된 조형물이 시선을 잡는다. 이게 직업병이던가 물을 가지고 연출한 조경공간이 나오면 빠짐없이 둘러 보고 싶은건 어쩔수 없는 병력인것 같다.
요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게 잔잔한 물길을 서로가 연결되고 높낮이의 지형을 그대로 연결되도록 만든 작은 정원이다.
내가 상상했던 그림이다.
앞으로 설계하는데 참고가 될것 같다.
정원 옆에는 그림같은 카페가 있다.
자동판매기에서 캔커피를 뽐아들고는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밖을 바라다 보며 세차게 몰아 치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빗속을 훌쳐 보며 이곳일본에서 있었던 일들을 정리 해 본다.
일본은 과연 우리에게 무었일까?
가깝고도 먼나라, 이렇게 표현을 한다.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든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잰가부터 우리는 일본의 의존성을 키워왔고, 이젠 일본으로부터 탈피해 서로 경쟁하고 우위에 서기위해 경주 하고 있다.
20여년전만해도 우린 일본을 넘볼수도 넘볼려고도 상상하지 않았던 일본, 지금은 과연 그런 대상일까?
동경 한가운데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와 일본은 무었이 다르고 무었이 같을까?
먼저 일본을 생각해 본다.
만나면 “하이”, “스리마샌”, “아리가도 고자이 마스“을 연신 외치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우린 예절바른 일본인이라고들 많이 이야길 한다. 그럼 왜 이들은 이렇게 예절이 바른 것일까? 하는 의문은 가져 본다.
내 생각으로는 사무라이 정신이 이것일 것이다. 사무라이 정신도 여러 각도로 조명을 하고 이야길 하고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곧 죽음과 복종이 아닐까한다.
죽지않기 위해서는 복종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굴복을 해야하는 필연적이고 피할수 없는 숙명 같은것은 아닐까?
“하이”라고 하는 말에서 이미 굴종이 포함된것은 아닐까? 또 술을 마시거나 이야길 할때 이들은 무릅을 꿀는다. 우리는 무릅을 굴는것은 굴종을의미 하는데 이들은 예절을 의미 한다고 한다.
왜 이리 서로 다른 해석이 따르는것 일까?
굴종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관습이 된것은 아닐까?
일본의 역사는 호족으로 구성되어 졌고 이들은 생존을 위해서 근친상관에 의한 결혼을 했으며, 조직화 체계화 시켜 나갔을 것이다. 이를 이탈하는것은 곧 죽음이고 섬나라의 특성상 도망을 가도, 갈곳도 없었으니 배신은 곧 죽음이었을것이다.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살기위해서 굴종적이고 조직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은 재품을 만드는데서도 나타난다. 일본인들은 끝없는 실험과 반복을 거치면서 완벽한 제품을 출시하려고한다. 완벽하지 않는 제품의 출시는 절대자에 의해서 곧 죽음으로 귀결되지않았을까?
이러한 환경적인 요인은 세계최고의 상품을 만들었고, 절대권력의 통치앞에 세계를 지배하려고 내 몰린것은 아닌까?
역사상 유래가 없었던 지진이 일본 열도를 덥쳤다.
지진이 발생되고 이 영향으로 쓰나미가 음습해왔다 여기 까지는 자연재해다. 자연의 힘이다. 어쩔수 없었을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더 삶을 행복하게 추구하기위해 만든 산업사회의 유산인 원자력 발전소의 파괴다. 아러한 상황속에서도 이들은 너무나 질서 정연하고 이들의 행동은 인간의 감정이라고는 할 수없는 차분하게 대체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전세계 언론들은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이것이 찬사를 받을 일인가?
모든 동물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감정대로 행동하고 생활한다. 감정의 동물이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을 절제하고 자재한다는것은 참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이는 노예와 같은 것으로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오직 절대자의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죽음으로 내모는 절대군주의 통치하에서 보여지는 모습은 아닌가?
모든 매뉴얼 사회, 이것이 일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매뉴얼의 한계가 넘어 서면 어떻게 대처할지 모르는 사회 이것이 일본이다.
이를 보면서 우릴 되돌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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