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여행·Travel

20100427-네들란드

지오마린 GeoMarine 2010. 5. 2. 18:14

 2010년 04월 27일 서울-인천-동경-암스텔담-Zwelle

Zwelle역

 

Wavin 본사

 

 

Pillis Hotel

 


2010년 04월 27일

 

아침 일찍 간밤에 싸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셨다.

집을 나서려니 도농동에서 5시 20분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리무진이 있다기에 택시를 타고 갔더니 1,2분차이로 버스는 가고 없었다. 다음 버스는 50분에 출발 한단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간 안배가 되질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계속 기다려 50분 버스가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기에 올라타고는 버스 기사에게 도착 예정시간을 물어 보니 1시간 40분정도 소요 된다고 한다.

8시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시간이 도저히 되질 않아 다시 내려서는 택시를 타고 외곽순환도로로 공항으로 내 달렸다.

공항이 가까워지는데 간간히 내리던 빗방울은 거세계 몰아친다.

6시 50분정도에 공항에 도착하니 같이 출발해야할 일행은 이미 모두 와있었다.

입국수속을 하고 동경으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동경을 경유하여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schiphol국제공항에 무사히 내렸다. 현지 시간은 오후 4시 30분(우리시간 밤 11시 30분)이다.

한 교수는 헤이그에서 회의가 있어 공항에서 헤어지고 우린 Zwelle로 가기 위해 기차를 옮겨 탔다.

Zwelle까지는 1시간 30분정도 소요되었다.

차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그림 엽서에서나 자주 봐 왔던 아름다운 들판은 도착할 때까지 계속 이어 졌다.

푸른 들판에 낙타, 말, 젖소, 양등의 목장들이 펼쳐졌고, 산이라고 찾아 볼 수 없는 네덜란드답게 들판사이사이 연결된 수로는 새로운 풍경으로 내 시선을 자극해 왔다.

1시간 정도 기타를 가고 있으려니 Wavin의 Ander한테서 전화가 온다.

30분 후에 호텔 로비에서 만나자고 이야길 했다.

처음 와보는 Zwelle역 광장에서 호텔로 가기위해 택시를 타려고 기사한테 물어 보니 걸어가라고 한다.

역 광장 좌측에 와빈의 본사가 바로 시야에 들어 왔고 맞은편에 조그마한 Pillows Hotel이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Andre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방에 가방을 가져다 놓고는 호텔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같이 가서 스테이크로 저녁식사를 하고 웃으며 맥주와 꼬냑을 번갈아 썩어 먹어 가며 낮선곳에서의 새로운 희열을 만끽 해 본다.

2010년 04월 28일

아침 8시에 와빈의 직원이 호텔로 왔다.

아름다운 들판을 따라 자동차로 약 30분 정도 가니 큰 공장이 나온다.

아침 햇살과 함께 나타나는 이국적이 풍경은 너무나 조용하고 아름답다.

인구 약 10면정도의 소도시라서 그런지 도로는 한적하고 준변의 풍경은 너무 아름답다.

짙은 녹음과 아름다운 집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키는 푸른 들판은 나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도로 폭은 우리 보다 다소 좁은듯하고, 교차로는 모두 로타리형으로 되어 있다.

건물과 집들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주변의 자연 환경과 매우 잘 어울리는 듯하다.

회색 도시에서 살아온 나에게 닥아 오는 아름다움 풍광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환희를 만끽하게 했다.

공장도 푸른 들판에 주변의 경관과 적절하게 조화를 시킨 듯이 보였고, 생산과 기술지원, 영업 등이 따로 건물이 나누어져 있었다.가장 먼저 우릴 안내 한곳은 빗물이용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과 회사 제품에 대한 설계 방식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곳으로 3층의 전망이 좋았다.

약2시간의 토론이 끝나고 바로 옆에 있는 공장의 생산 시설을 둘러 봤다.

다양한 제품이 같이 생산되고 있는 곳으로 맥주 상자와 빗물 저장조의 cell이 같은 라인에서 자동화된 시설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날씨는 온화했고, 주변의 경관과 잘어우려진 공장을 벗어나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하고는 자동차로 약 20여분정도를 달려 기술부와 같이 좀 더 세부적인 협의를 했다.제품의 재질과 설계방식, 설계방향등에 대해서 많은 논의를 했다.

시간은 오후 4시가 지나고 있었고 2차선 도로건너편에 있는 Andre사무실에 잠시 들러서 자료를 전달받고는 기차역까지 태워다 준다.1일 동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1등석 자유기차표를 사준다.

금액이 자그마치 147유로다 우리 돈으로 약 225,000원정도 하는 금액이다.

이를 가지고 사용하려니 시간이 얼마남지않아 내일 이 기차표를 사용할 요랑 으로 새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로 가는 기차표를 발급 받아 1시간 30분정도를 달려 도착한 후 리무진을 이용하여 호텔로 와서 체크인을 하고는 저녁식사와 맥주 한 잔을 하고는 피곤한 몸을 쉬어 본다 

2010년 04월 29일 암스텔담-로틀담-헤이그-암스텔담

 

 

헤이그역

 

 

 

 

2010년 04월 29일

호텔리무진을 타고 8시에 출발하여 스키폴 국제공항에서 로틀 담으로 급행 기차를 탔다.

불과 30분 만에 정차하는 곳 없이 우릴 로틀 담에 내려놓는다.

노틀담 중앙역에서 간선기차로 옮겨 타고 부두 있는 곳으로 약 40분정도를 가니 바닷가에는 풍력발전기 도열한가운데 항구가 나타난다.

평일이라서 그런지 해변은 너무 조용 했고, 간간히 벤치에 노부부들이 다소곳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것 이외에는 한적하기만 하다.

화창하고 맑고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을 마냥 걷다가 간선 기차 종착역에서 다시 로틀 담 중앙역으로 돌아와서 헤이그로 향했다.

그동안 우리가 늘 들어오던 이준열사에 대한 이야 기속에 같이 했던 헤이그는 너무나 익숙한 지명이고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노트르담에서 불과 20여분정도 오니 헤이그 역이 보인다.

그런데 헤이그 역이 한곳이 아니고 3곳이나 있어 2정거장을 지나쳤다가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와 무작정 역 앞의 골목으로 걸어들었다.

잠시 후 나무그늘 밑에 빼곳이 놓여 있는 노천 광장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 다니는 곳으로 화창한 날씨와 함께 상큼함을 더 했다.

생선셀러드로 점심을 하고는 이준 기념관을 물어 찾아 갔다.

차이나타운 외곽 조그마한 3층 건물에 태극기가 걸려 있었고 벨을 누르니 문을 열어 주신다.

약 110년 전에 드종호텔 이었던 것을 지금 기념관 관장님께서 1995년에 20만 불을 주고 사들여 지금까지 부부가 관리 운영해 오신다고 하며 친절하게 안내를 해 주셨다.

설명을 듣고 관장님 부부가 저술하신 이준관련 서적 두 권을 사서 밖으로 나와 인근의 노천에서 차 한 잔을 마시고는 헤이그 역까지 걸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110년 전에 나와 같은 나이였던 이준 열사는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에서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와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이곳까지 왔다고한다.

모스크바에서 이 범준 공사와 러시아에 협조 요청을 했지만 거절을 당하고 이범진공사의 아들인 이상설이 불어와 영어가 능통하여 이와 합류 하여 이들은 3명은 서울을 출발한지 2달 만에 이곳 헤이그 역에 도착하여 조그마한 호텔에 국가를 대표해서 왔지만 그 누구도 국가의 대표로 인정하지 않았고 만국회의장에 입장도 하지 못했다.

이렇게 울분을 토로하고 기자들에 부당함을 호소하고 만국회의장 밖에서 나름대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알리지만 일본의 외교에 메아리 없는 공연 불에 불과 했다.

장시간의 여행, 낮선 타향, 메아리 없는 울 분등이 엄습하면서 투숙했던 허름한 호텔에서 이준은 병사한다. 난 그곳에 110년 뒤에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이된 국가에서 엔지니어로서 당당하게 와서 비즈니스를 하고 여행을 즐긴다.

그 누구도 우리가 저개발국가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세계 속에 당당하게 활동하지 않는가?

헤이그를 떠나 암스테르담 중앙역 내렸다.

서울역을 모티브로 삼았다는 중앙역은 화려하다. 전차가 역 앞으로 많은 사람들과 혼재 된 체 움직여 나가고 바로 그 앞에는 운하가 연결이 된다.

운하를 통행하는 크루저를 타고 약 90분간 시티 투어를 했다.

도시는 약 2-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듯 고풍스러운 모습그되로 남아 있었고, 그 옛날 영화를 말하듯 운하 주변으로 잘 정돈된 도시는 맑은 날씨와 함께 너무 아름답다.

간간히 나타나는 사진이 들어 있는 표지판은 세월의 흐름을 그대로 이야기하려는 듯 건축물의 축조년도등이 표시 되어있다.

교통수단이라고는 운하와 말이 전부 엿을 그 옛날의 고풍스러운 도시에도 도시 팽창과 함께 잘 발달된 운하의 물은 매우 지저분하다 못해 더럽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조류의 번식과 악취가 심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어쩌면 우리들에게 세계 최고의 조선기술과 운하와 간척 기술을 알려 주었다면 이젠 우리가 물을 깨끗하게 관리 하는 방법을 알려 주어야 할 것 같다.

난 또 다른 거대한 시장을 본 것 같다.

내 손으로 잘 발달된 운하의 물길을 깨끗하게 만드는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해 본다.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전차와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의 옛 모습이 그대로 살아 있는 거리를 약 1시간정도 걸어 봤다. 100여전으로 들어온 것 같다. 역사가 느껴진다.

내일이 여왕탄신일로 국경일 아라 오후가 들면서 점점 도심지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다.

이름 모를 거리 노천에서 남미산 소고기 바비큐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와인한잔을 음미 해 본다.

밤이 깊어지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택시를 타고 암스테르담 중앙역으로 와서 스키폴국제공항으로 돌아와 호텔 리무진을 비집고 타고 오니 밤 12시가 넘어 간다.

이준 기념관(이준열사가 투숙한 당시의 호텔이며 이곳에서 숨을 거둠)

 

이준기념관 옆 노천 커피숍

 

 

이준열사 일행이 내렸다는 덴하그(헤이그 역)

 

암스텔담 중앙 역

 

 

 

 

 

 

간선골목길의 빗물 배수로가 특이하다. 양쪽도로 보다 낮게 만들어져 배수가 되도록 되어 있다

 

2010년 04월 30일 - 암스텔담-리덴-암스텔담-동경출발

 

 

2010년 04월 30일(금)

7시에 아침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8시에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9시에 레이덴트역에서 한 교수님을 만나기로 하여 부지런히 스키폴 역에서 기차를 타고 갔다.

한 교수님은 헤이그에서 IWA회의를 마치고 올라오는데 우리가 도착한지 약 20분 후에 광주과학기술원의 김 교수님과 같이 오셨다.

짐을 역 구내 락카에 모두 맡기고 큐켄호프 튤립 농원으로 버스로 이동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다양한 국가에서들 오셨는지 피부색이 다른 여러 인종들이 서로 섞여 있다.

튤립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았고 공원 주변은 광활한 대지위에 아름다운 튤립 제배농장이 눈길이 모자랄 정도로 펼쳐 있다.

자연과 잘 어울리게 꾸며 놓았다.

아름드리나무와 호수가 조화롭게 한 폭의 그립엽서를 보듯 아름답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짓은 색은 튤립과 어울리는 정원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의 경지에 접어들게 했다.

튤립의 꽃향기는 색깔만큼이나 진하다.

네덜란드를 상징하는듯하다.

튤립, 풍차, 운하, 항만의 나라 어릴 적 그림엽서에 간간히 봐왔던 그 나라에 내가 와 있다.

다시 레이덴트역 광장으로 나와 강가 한적한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강인지 운하인지는 정확하게 구분이 잘 가지는 않지만 중장년의 남녀들이 모터보트를 타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지나가는가하면 카누의 노를 저어가는 부부로 보이는 이도 나타났다가는 사라지고 자연과 잘 어울리는 풍경은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탐닉하게에 충분했다.

점심으로 맥주한잔과 샌드위치를 먹었다.

거리에는 온통 오렌지색의 티셔츠와 모자를 쓰고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기차는 울라 타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로 붐비고 국경일과 연휴가 겹치는 관계로 모두들 거리로 나오는 듯 했다.

억지로 올라탄 기차는 스키폴국제공항으로 도착했고 이곳에서 김 교수는 저녁6시에 인천으로 가는 직항을 타기에 공항에서 헤어 졌다.

우린 다시 짐을 공항 락카에 맞기고 는 암스테르담으로 가기위해 기차를 탔으나 시내 전체가 사람들로 가득해서 기차가 진행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할 수없이 암스테르담 이스트 역에 내려 이번 출장에 많은 도움을 준 코트라 직원에게 전화를 하니 5분내로 역으로 오겠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썩여 기차역 밖으로 나와 기다리려니 조그마한 여자 분이 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여왕탄신일 국경일은 벼룩시장이 열린다.

고하여 자동차로 5분정도 가니 아주 큰 마켓 주변으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노점상과 같은 벼룩시장이 오후가 되어 파장을 맞이하고 있다.

둘러보다가 문득 눈에 띠는 그림이 있어 할머니에게 흥정을 하니 4유로를 달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약 6,000원정도 된다.

가지고 다니기가 다소 불편하긴 하지만 돈을 주고 샀다.

코트라에 계시는 손은 동생이 잠시 한국에서 방문하여 같이 조그마한 벼룩시장을 열고 있었고 그의 남자 친구는 네덜란드 사람인데 32살이라고 한다.

본래 손은 전주여자로 한국외국어 대학교에서 유고슬라비아 언어를 전공했는데 둘이는 체코 여행 중에 만나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같이 10여분을 걸어서 아직 문도 체 열지 않은 한국 식당으로 가서 오랜만에 떡볶이와 찌개, 맥주 등으로 저녁식사를 하고는 공항으로 택시로 달려오니 발권 대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리와는 다르게 밤 9시가 되어도 해는 지지 않고 밖은 환하다.

정확히 9시에 동경으로 가는 비행기는 이륙을 했다.

11시간의 비행을 시작했다. 멀다.

피곤함과 시차 등이 겹쳐서 책을 몇 줄 읽다가 잠속으로 빠져 든다.

동경에 도착을 하니 오후 3시 다 우린 아직 서울로 가기위해서 3시간의 시간을 보내야 하고 한 교수는 동경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오시겠다고 하여 이곳에서 헤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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