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은 최고의 청정수/서울대학교 한무영 교수
요새같이 물에 대한 불신이 많을 때 동화 속의 여왕은 거울에 대고 이렇게 물을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은 어디에 있니? 그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왕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물을 갖다 주면 될까. 값비싼 외국의 생수? 수돗물? 깊은 산의 계곡물? 아니면 선전에 나오는 수도꼭지에 붙인 정수기에서 나온 물일까. 일반 서민들도 그런 물을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깨끗함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물속에 녹아 있는 이물질의 양을 근거로 조금 과학적으로 정의해보자. 이것을 나타내는 지표로 총용존고형물(TDS)이라는 것이 있다.
이 수치는 여과한 물 1ℓ를 증발시켰을 때 남는 이물질의 양을 ㎎으로 나타낸 값이다. 만약 증류수 1ℓ에 설탕 0.5g을 넣어 만든 설탕물을 증발시키면 남는 설탕의 양이 0.5g이며, 이때의 TDS는 500mg/L(ppm)이다.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물의 TDS와 그 건강에 대한 안전성을 살펴보자. 우선 우리나라의 음용수 수질기준에는 500mg/L(ppm) 이하로 돼 있으며, WHO(세계보건기구)의 음용수 수질기준에는 그 수치를 규정해 놓고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의 지하수를 주전자에 넣고 끓여보면 석회석 같은 것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그 지역 주민의 건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들은 그런 물을 수백 년 동안 마셔왔기 때문에 오히려 TDS가 작은 물을 마시면 탈이 난다. 그 지역에서는 당연히 TDS가 높은 생수가 더 잘 팔린다. 시판되는 생수에는 대부분 라벨에 TDS 수치가 표시돼 있다.
알프스의 산에서 만든 유명한 생수의 TDS는 300ppm 이상이다. 우리나라의 어떤 생수의 TDS는 30ppm 정도이다. 그런데 특정 지역에서 빚은 술의 맛이 TDS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보면 TDS의 수치와 건강은 그리 큰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수돗물의 TDS는 얼마일까. 그 수치는 취수를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대개 50~250ppm이다. 수돗물의 수치는 취수하는 수원의 수치보다는 약간 높다. 그 이유는 정수과정에서 화학약품이 약간 녹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면 강의 상류와 하류를 비교해보면 어떨까. 당연히 하류의 수치가 상류보다 높을 것이다. 그 이유는 하류로 내려갈수록 여러 가지 인위적·자연적 물질이 녹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더 상류에 있는 깊은 계곡의 물은 어떠할까. 빗물이 산을 흘러 내려오면서 여러 물질들을 만나지만 자연으로부터 녹아 들어갈 시간이 많지 않아서 이 수치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러면 가장 깨끗한 TDS가 낮은 물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땅에 떨어지기 직전의 빗물일 것이다. 그런데 빗물에도 황이나 질소 산화물과 같은 대기오염물질이 녹아들어 있다. 황사나 대기오염에 의해 생긴 분진 같은 입자상 물질도 있지만 이들은 쉽게 걸러진다. 오염된 빗물이라도 녹아 있는 물질의 양은 매우 낮아서 TDS는 10~20ppm이다.
그보다 더 낮은 물이 있다. 그것은 한차례 비가 와서 대기 중의 오염물질이 씻겨 나간 후의 빗물이다. 만약 종일 비가 온다면 처음 10~20분 동안에는 약간 지저분하지만, 다 씻겨 내린 다음에 내린 비는 용존물이 매우 적어 증류수와 다름이 없다.
일단 땅에 떨어지면 땅에서 녹아들어가는 물질이나 접촉하는 시간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 일반인들은 바로 이 땅에 떨어진 후에 흘러 내려가는 빗물을 보고 더럽다고 하지만, 땅에 떨어지기 직전의 빗물은 매우 깨끗하다.
그러면 수도꼭지에 붙여서 사용하는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은 어떨까. 그 수치는 원료인 수돗물과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정수기에 따라 TDS를 제거하는 제품도 있고, 제거하지 않는 제품도 있다. 그러나 그 값은 모두 수돗물보다는 약간 작고, 빗물보다는 훨씬 크다. 오히려 완벽하게 빗물의 TDS처럼 제거하려면 많은 돈과 기술이 필요하다.
이렇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은 내리기 시작한 지 몇 분 지난 빗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땅에 떨어진 뒤 다른 것과 섞이면 더러워지므로, 집수면을 깨끗하게 하고 빨리 받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흙탕물이라도 잘 침전시켜서 분리한다면 그 속에 녹아 있는 부유물은 거의 없어진다.
침전은 자연의 힘인 중력을 이용해 분리하는 것이므로 처리하는 데 전혀 돈이 들지 않는다. 저장 시에는 햇빛을 차단하고 약간의 주의를 기울이면 5~6개월 정도 저장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섬 지방에서 빗물을 수천 년간 받아서 사용한 사람들은 모두 다 안다.
만약 동화 속의 의심 많은 여왕에게 누군가가 아주 근사한 잔에 맑고 투명한 물을 줬을 때 여왕은 안심하고 물을 마실 수 있을까. 아무리 맑고 투명하다고 해도 그 물이 어디서 어떤 경로를 거쳐 왔는지 알 수 없고, 그 사이 어떤 물질이 녹아 들어갔는지 모르기 때문에 안심하고 마실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깨끗하게 받은 빗물에는 다른 물질이 없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물은 하늘에서 내린 물이고 어디를 거쳐 내려왔는지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나라의 수돗물에서 문제시되는 미생물·원생동물·발암물질·환경호르몬 등이 없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다.
만약 빗물에서 문제시되는 물질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계곡·강·호수 물 모두가 공통적인 문제점이 될 것이다. 실제로 외국의 어느 항공사에서는 일등석 승객들에게만 빗물로 만든 생수로 대접한다고 한다.
동화 속의 요술거울은 여왕에게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여왕님, 여왕님.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물은 바로 빗물입니다. 깨끗한 빗물이 일단 땅에 떨어지면 여러 가지 물질들이 녹아 들어가서 점점 더러워지고 있기 때문에 땅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야 합니다. 이 빗물이 깨끗한 것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깨끗한 것과 같습니다.”
여왕에게나 일반 시민에게나, 남녀노소, 빈부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가장 깨끗한 빗물을 하늘에서 내려주시니 하늘은 참 공평한 것 같다. 다만 빗물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잘 모르는 인간들을 보면 하늘이 보기에 얼마나 안타까울까. 그래도 하늘은 마다하지 않고 여전히 선물을 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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