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여행·Travel

20100202-인도 뭄바이 출장

지오마린 GeoMarine 2010. 2. 8. 15:29

2010년 02월 03일

여느 때와 같이 아침 5시 30분 알람소리와 함께 자리에 일어나 샤워를 한다.

그러나 오늘 저녁에는 출장을 가야 하기에 침대에서 곤히 잠든 마누라를 흘처보며 여행용 가방을 싸고는 커놓은 텔레비전에서 영화 12도라는 뉴스를 마지막으로 방과 거실, 텔레비전을 모두 끄고는 문을 나선다.

밖은 매우 차갑다.

얼어버린 자동차에 온기를 불어 넣으며 조용히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강북로로 들어서서 다른 자동차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도를 내어 본다.

주변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이다.

성수대교를 건너 동작동 국립묘지 앞을 지나 이수교차로를 통과해서 까치 고갯길을 넘어 사무실로 오니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밤새 지키고 있던 벽시계는 오전 7시를 가르친다.

커피 한잔을 타서 책상위에 올려놓고는 노트북을 커고 지난 밤 사이에 온 메일을 확인 해 나간다.

인도 뭄바이에서 내일 오전에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확인 메일이 와 있고, 중국의 쿤밍에서는 하천수질개선에 대한 제안서를 빨리 마무리 해달라고 하는 독촉 메일과 오후에 발표하게 될 프레젠테이션 확인 메일 등 20여개의 메일을 확인 하고 답장과 삭제를 하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정리 해 본다.

8시 30분이 넘어서야 직원들이 하나둘씩 출근을 하고 사무실은 활기가 넘친다.

간단한 업무보고와 업무 지시를 하고나니 오늘 약속된 최 회장과 이박사가 사무실로 들어온다. 앞으로 업무 협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는 구내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나니 벌써 오후 2시 30분이 지나간다.

부랴부랴 이박사와 함께 여행가방과 서류가방을 들고는 과천정부종합청사의 국토해양부 대회의실로 가 그린포트(Green Port)세미나의 첫 발표자로 “빗물을 이용한 Green Port만드는 비결”이라는 주제로 30분간의 발표와 30분간의 토론을 마치고나니 벌서 5시가 넘어 간다. 곧바로 고속버스터미널 앞까지 이박사의 자동차로 와서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으로 공항에 오니 시간은 7시가 넘어서고 있다.

대한항공 인디아 뭄바이행 발권을 하고 출국 수속을 하니 시간이 1시간 가량 여유가 있다.

저녁 8시 40분에 비행기는 정확하게 이륙을 했고, 옆자리에 중년의 아주머니는 인도에서 마사지를 한국으로 전수해와 재미를 보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와 이번 출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기내식이 나오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간다.

 

2010년 02월 04일(목요일)

뭄바이 현지 시간으로 3시30분(한국시간 오전 6시)에 10시간가량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하니 공항 입구에 호텔에서 나온 사람이 나의 이름을 들고 서 있다.

뭄바이의 호텔이 워낙에 비싼 터라 이번에는 한국분이 운영하는 공항 인근의 게스트 하우스에 묶기로 했다. 물론 이곳에서 사업을 하기위해서는 이곳 사정을 나보다 많이 아는 분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기도 하고 여러가지로 편리 할 것 같아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뭄바이는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州)의 주도. 아라비아해에 면한 천연의 양항으로, 동부의 캘커타와 나란히 서부의 문호를 이루는 인도 최대의 상공업도시이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인이 개항하였고, 17세기에는 영국이 지배하였다.
1864년 데칸고원의 푸나와

아마다바드 를 잇는 철도가 건설되면서 배후지인 데칸 고원의 물자집산지로서 발전하였다.
특히 수에즈운하의 개통에 따라 유럽으로의 면화공급이 크게 늘어, 오늘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인도 최대의 공업생산량을 자랑하며, 섬유공업을 중심으로 기계·자동차·식품·화학공업 등이 활발하다.
1911년 영국 국왕의 인도방문을 기념한 인도의 문 (門)이 유명하다. 1995년 11월에 봄베이(Bombay)를 뭄바이로 개칭하였다.
과거 봄베이(Bombay)의 힌두식 이름이다.
힌두 민족주의를 표방한 BJP당이 집권하면서 과거 영국 식민지 시절의 지명을 힌두어로 고쳤다고 한다.

오전 10시에 방문하기로 하여 09시 30분정도에 나서니 뭄바이의 교통상황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터라 가다보니 12시가 다되어야 할 것 같았다.

자동차 안에서 10시에 사무실이 교통상활 때문에 많이 늦어 질것 같다고 전화를 하고 나니 정말로 12시정도에나 되어서야 도착을 했다.

다시 전화를 하여 오후 1시에 점심 식사 후에 방문 하겠다고 하고는 타지마할 호텔근처로 갔다.

 

2008년 11월 26일 날 테러가 난 이후 아직 건물 외부에는 안전망이 처 있는 것으로 바서는 아직 공사 중인 것 같았고, 호텔 입구는 자동차 마다 자동차 내부를 세세히 검색을 하고, 호텔입구에는 검색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호텔에 들어가는 것이 마치 중요한 곳이라도 들어가는 것 같이 삼엄하다.

호텔을 배경으로 사진 몇 컷을 찍고, 캐나다에서 여행을 왔다는 아주머니께 사진을 부탁하고는 인디아게이트를 둘러 본 뒤 타지마할 호텔 뒤쪽으로 가서 인도 식당에서 닭고기와 볶음밥을 곁들인 점심식사를 하고는 택시로 사무실로 가니 “아난타”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두 번째 만남이라 서로 편하게 이야길 나눌 수 있었다.

“아난타”는 매우 진중한 사람이다. 나이는 아직 40세 이전이지만 절제된 언어와 명확한 표현, 아주 진중한 사람이다. 키는 180cm가 넘을 것 같고 아주 예리한 눈매와 명석함이 느껴지는 얼굴이다.

이미 메일로 많은 이야길 나누었기 때문에 쟁점이 되는 문제로 많은 이야기에 시간을 소비를 했다.

두어 시간을 사무실에서 이야길 나눈 후 그룹사의 사무실로 이동하여 지난 방문 때 인사를 나누었던 부회장과 면담을 하고는 내가 준비해간 자료를 가지고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회의실은 매우 깨끗하고 한 50“가 넘을 듯 한 삼성의 LCD TV가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고, 모두 7명이서 아주 오랜 시간 회의를 했다.

많은 이야길 나누었다.

Join Venture Company설립문제와 향후 협력 문제 등에 대해서 쟁점사항은 향후 서면으로 협의하기로 하고 일단은 마무리를 하고 나오니 저녁 6시가 지나 간다.

세발의 오토바이처럼 생긴 릭샤 택시를 타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지루 했다.

 

심한 소음과 매연, 수많은 자동차들과 엉키고, 사람과 오토바이, 자전거 등이 뒤섞인 도로는 언재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조그마한 택시 안은 덥고, 매캐한 매연과 끊임없이 울려오는 크락숀 소리와 소음, 머리가 몽롱하다 못해 아프다. 점잖게 차려입은 양복이 거추장스럽다 못해 짜증이 난다.

무더운 날씨, 지칠 줄 모르는 소음, 밤안개와 매연의 향연, 도무지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신이 아니면 이해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신의 나라 인디아.

신이 아니면 이해 할 수 없는 나라 인디아,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상식이라는 것은 이곳 인디아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무려 3시간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을 하고 나니 머리는 아프고, 심신은 무척이나 고달프다.

저녁식사를 하고는 잠자리에 들자니 몸은 몹시도 피곤한데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2010년 02월 05일

느지막이 일어나 중국 연변에서 왔다는 30대 아주머니가 차려준 아침 식사를 하고 서울에서 온 메일과 업무를 처리하고는 무거운 머리를 식히고 시내 구경이라도 할 겸 나오니 거리는 온통 공사판이고 먼지투성이다.

 

세발 오토바이 같이 생긴 지붕이 검은색으로 덥혀있고 창이 없는 릭샤 택시를 타고는 공항의 비행시간과 내일 새벽에 서울로 돌아가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하는 바램에서 공항으로 오니 비행기 탑승티켓이 없으면 아예 공항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통에 점심으로 음료수 하나와 케밥을 식혀 먹고는 있으려니 “아난타”에게서 전화가 온다.

약속을 내일 오전 11시로 하자고 한다.

다시금 릭샤 택시를 타고 돌아오려고 기사와 택시요금에 대해서 이야길 하니 300루피를 달라고 해서 200루피로 하자고 하고 택시를 타니 공안경찰이 다가와서는 너무 비싸다고 내가 흥정을 해놓은 택시를 보내버린다. 택시 기사는 못내 아쉬운 듯 뭐라고 한참을 하더니 가버리고 경찰은 다음 택시를 잡아 주고는 150루피로 흥정을 해준다.

택시기사가 길을 잘 몰라 물어 물어서 겨우 태워다 준다.

 

2010년 02월 06일(토)

맑은 날씨다.

8시가 조금 넘어서 게스트 하우스를 나와 릭샤 택시가 길거리에 서 있어서 Nariman Pint의 Trident hotel을 아느냐고 했더니 먼저 물어 본 택시 기사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잘 모른다고 한다. 옆에 있던 중년의 흰색 인도 복장을 한 친구가 무조건하라고 한다, 금액을 물으니 미터 요금으로 가자고 한다, 웬 떡인가 싶어 올라타고 가는데 왠지 방향이 공항 쪽을 향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한참을 달려가니 일반 택시로 옮겨 타란다. 그리고는 150루피를 달란다. 도무지 무가 뭔지 모르고 미니버스와 같이 된 택시를 타고 가려니 다리를 가로 질러 가야 하는데 통행료가 50루피를 달란다. 그리고 한참을 달려 아는 길이 보인다. 다소 안심이 된다.

거리에서 자동차 안으로 향료를 풍기며 구걸하는 아이들

 

한푼 구걸을 을 위해 기꺼이 포즈를 취해주는 아이들 얼굴 표정은 순수함.

 

09시 40분정도에 호텔에 도착하니 300루피를 달라고 한다.

아니 어제 밤에는 무려 3시간 30분을 타고도 이곳에서 300루피를 주었는데 오늘은 도합 500루피를 주고서야 이곳에 도착을 하게 된 셈이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릭샤택시는 남부지역에는 못가도록 되어 있어서 눈치 빠른 릭샤 택시의 술수에 내가 말려든 셈이다.

트리엔트 호텔에서 걸어서 “아난타”사무실로 갔다.

생산된 제품과 샘플, 앞으로 협력할 일에 대해서 그저께 못 다한 이야길 나누고 2주후에 있을 Assam지역의 입찰 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주 참여 업체로 입찰에 응하고, 하청업체로 시공사와 “아난타”회사는 자재를 공급하는 것으로 협의를 진행했다.

일단은 원칙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는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일을 매우 바쁘게 추진하자고 했다.

이러다 보니 Assam에 있는 지역의 업체와도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전화를 하고 여러 업무 추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길 나누었다.

내일 아삼지역에 있는 업체가 뭄바이로 온다고 하니 내일 오후 2시 30분에 같이 만나 협의하기로 하고 인근의 전통 인도식당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했다.

닭고기와 난, 오렌지 주스 등으로 점심을 했다.

아주 고급식당이라고 한다.

아주 오래된 건물과 인디아 음식이 매우 적절하게 잘 어울리는 듯하다.

서빙을 하시는 분들은 붉은 색의 정장차림으로 나이는 모두 60세가 넘은 듯 보였으며 인도인의 특유의 콧수염이 식당 분위기와 함께 운치를 더 했다.

아주 낭만적인 점심이다.

식당에서 서로 헤어져 나는 시내를 걸어 보기로 했다.

식당에서 조금 걷다보니 아주 영국풍의 고풍스럽고 웅장한 대법원 건물이 나왔고 그 앞에는 아주 넓은 운동장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

이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다가 인도 뭄바이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에게 사진을 찍어 줄 것을 부탁했고, 그의 친구와도 같이 사진을 찍고는 뭄바이 대학 옆으로 해서 약 10분정도 걸으니 많은 사람들이 움집한 거리가 나온다.

뭄바이 대법원 앞

거리엔 많은 노점상들이 즐비하게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다.

거리에서 머리를 깍는 이발사의 모습과 관광객을 싣고 달리는 마차, 전통악기를 들고 관광객을 유혹하는 노점상인들의  모습에서 중세의 어느 시장에 와있는듯한 묘한 기분은 시대를 꺼꾸로 돌아온 시간 여행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거리의 이발사

영국 식민지하에서 건설된 듯이 아주 오래된 유럽풍의 건물이 양쪽에 늘어서있고 오래된 역사가 묻어나는 거리에선 내가 다시 100년 전으로 되돌아 온 듯하다.

많은 사람들의 무리에 끼어 마냥 걸다보니 빅토리아역이 나온다. 연결된 지하도로를 따라 빅토리라 역으로 들어서니 시장 통이 따로 없다. 어디로 가는 기차인지 여러 갈래의 기차가 서있었고 서로들 올라타고 내리고 한다. 누구하나 표를 검사하는 사람도 없고 해서 기차에 올라 타보니 오랜 영화촬영 세트처럼 오랜 역사의 흔적이 묻어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간 바닥과 손잡이 등이 달아 윤기가 반짝인다.

바닥의 석재에서도 수많은 발길에서 지탱해온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여기가 바로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뭄바이 CST역이다. 원래는 1887년에 건립된 이후 ‘Victoria Terminus’라는 이름이었지만 1998년에 ‘Chhatrapati Shivaji Ternimus’, 줄여서 CST역으로 명칭을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빅토리라 터미너스라고 더 많이 불리어 진다고 한다.

 빅토리아 역

오랜 세월의 흔적은 멀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내부는 아주 낡고 지저분하다.

이곳을 벗어나 다시 북쪽으로 한참을 걸다보니 우리의 재래식 사장 통으로 보이는 곳이 나타난다. 사람과 자동차가 어김없이 뒤섞여 있다.

짐꾼들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오고가고 있었고 주변의 상점들은 많은 사람들로 우리네 시장과 별반 다름이 없다. 다름이 없었다.

골목마다 진열된 상품은 서로 같은 종류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맨 먼저 만난 골목은 인조 꽃을 파는 곳과 플라스틱생활 용품, 옷감, 조명, 전기기자재등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 같다.

간간히 노점에 있는 먹을거리도 빼놓을 수 없는 공간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고 가장 인기가 있는지 사람이 많이 모여 있다.

사람이 가장 많이 움집하고 있는 곳은 먹을거리 노점상과 액세서리 노점상 주변 인 것 같다.

시장 거리를 벗어나 많이 걸은 탓에 조금은 쉬고 싶어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조그마한 고원이 나온다.

거리에 넘처 나는 부랑아(남녀노소를 가질지 않음)들도 살아 가는 방법이 있는듯 하다. 부랑아들이 많은곳 주변은 음수대와 화장실이 인근에 있고 상점이 옆에 있는 곳이 대부분인것을 보니 이또한 그들이 살아 가는 생존의 법칙이 있는듯 싶다.

콧수염이 난 아주 건장한 분이 비스켓을 한 주머니 사오더니 이곳 저곳의 노숙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모습이 보여 사진 한컷에 담았다.

이또한 이 넓고 수억명의 인디안이 살아 가는 한 모습으로 보인다. 

 

들어서니 지겹도록 많은 까마귀와 울름 소리, 바닥은 까마귀 배설물로 매우 지저분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공원은 한적한데 여성 전용 공간, 어린이 전용 공간등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잠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벤치에 앉아 있다가 택시를 다시 300루피로 흥정을 하고는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려니 지리를 잘 모르는지 기사가 무척이나 헤맨다. 나이는 44세이고 아들이 둘이라고 하는데 큰아이가 고등학교를 다닌다고 한다. 영어를 잘 한다. 택시 운전이 재미가 있냐고 물으니 재미없단다. 사우디아라비아로 가고 싶다고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며 오니 2시간조금 넘게 시간이 걸렸다.

내리고는 300루피를 주니 50루피를 더 달라고 간절한 얼굴을 왜면하고 그냥 지나쳐 들어오려니 영 기분이 좋지가 않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주지 못한 미안함이 가슴에 잔영으로 남는다. 50루피는 불가 우리 돈으로 1,400원정도인데 내가 너무 한 듯싶다.

방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14층 식당으로 가니 간밤에 서울에서 새로 오신 분들이 계셨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 나라에서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끼리 같은 곳에 머문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이야기 상대가 되고 여행의 피로를 잠시 접을 수 있는 것 역시 묘미인가 보다.

 

2010년 02월 07일(일요일)

약속시간이 오후라 방안에서 이번 출장에 대한 글을 정리하고 오후에 프리젠테이션할 자료를 재편집한 후 12시쯤에 택시를 타고 트리덴트 호텔 앞에 도착하니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1시간 30분 정도 걸려서 시간이 좀 여유가 있다.

인도양을 바라보는 화려한 호텔 뒷골목은 노숙자들과 먹을거리를 팔고 있는 노점상이 늘어있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해서 사진 몇 컷을 찍으며 점심식사로 10루피를 주소 샌드위치 하나와 15루피를 주고 여러 과일을 한 접시를 먹었다.

걸어서 사무실로 가니 내가 가장먼저 도착 했나 보다. 안내자가 회의실로 따라오라고 한다. 회의실엔 음료수와 과자등과 프레젠테이션을 할 준비가 모두 되어 있었다.

잠시 후 Assam에서 온 토목설계회사 “트리딥”이라는 분이 비행기로 3시간거리에서 왔고, 이곳 직원 3분과 프레젠테이션을 시작 했다. 주로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소개하고 앞으로 진행해야 할 방향에 대해서 많은 이야길 했다.

아쌈지역은 네팔 접경지역으로 북부에 위치하는 곳으로 주로 차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란다. 최근 들어 본래 강우량이 많은 지역인데 최근들어 홍수 때문에 강폭이 약20-30km 정도로 확대 대어 차 농장들이 많이 소실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자료를 가지고 와서 같이 이야길 나누며, 앞으로 추진하는 방향에 대해서 나와 서로 견해가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격정적이 토론을 했다.

이들은 분명 우리의 기술을 원하는데 그냥 밥상에 숟가락만 올려놓으려고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목소리를 높이니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자기들도 원하는 것이라고 한발 물러선다.

이렇게 장시간 회의를 하고 나자 “트리팁”이 비행기 시간 때문에 먼저 가야 한다고 서둘렀다. 

 거리의식수대

거리의 화장실

 

식수차량(물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아파트에 식수를 공급차량이 곳곳에서 보인다)

 

거리의 노점상

 

길거리의 노숙인들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길 나누고 3월에 내가 Assam을 방문하는 것으로 하고는 이번 출장에 대한 모든 이야길 마무리 했다.

일요일 이라 한적한 거리를 조금 걷다가 택시를 탔다.

어제와 마찬 가지로 300루피로 흥정을 하고 오는데 이 친구는 영어가 전혀 안 된다.

1시간정도를 달려오더니 길을 잘 모르는지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하더니 나보고 50루피를 더 내란다.

할 수없이 그렇게 하기로 하고 다시 한시간 정도를 더 달려서 도착후에 400루피를 주고 잔돈을 달라고 하니 잔돈이 20루피 밖에 없단다. 쓴 웃음이 나온다.

하는 수없이 20루피만 받아 들었다.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을 하고 있는데 처음 보는 젊은 여자 두 사람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한사람은 삼성전자 직원이고 한사람은 현대증권 직원인데 사내의 프로그램이 있어서 이곳으로 유학을 왔단다.

한국 음식이 생각 나서 저녁 먹으려 왔다고 하며 같이 이곳 뭄바이에서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방으로 돌아와 견적할 것을 정리해서 메일로 사무실로 보내고 나니 새벽 2시가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