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여행·Travel

20091220-중국 윈난성 쿤밍

지오마린 GeoMarine 2009. 12. 31. 19:18

2009년 12월 20일

항상일어 나듯이 새벽잠에서 깨어나니 우리시간으로 6시, 현지 시간으로 5시다. 순간적으로 6시로 착각을 하여  KTH사장을 깨웠다. 이곳은 내가 묶는 호텔 4층 높이면 한라산 정상 높이와 비슷한 해발1,990m의 높이로 기압차이로 인한 피곤함때문에 잠을 많이 잔다고한다.

8시 30분 비행기로 상하이로 가는 KTH 사장이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타는 것을 바래다 주고 다시 호텔방으로 돌아와 인터넷을 검색하고 사워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1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는 방으로 돌아와 있으려니 오늘 통역을 도와줄 여행사 여직원이 전화가 온다.

카메라만 준비한체 1층 로비로 내려가니 조석족인 22살이라고 소개하는 아가씨가 기다리고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우리가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들을 썩어가며 이야길 나누었다.

내가 이곳에 입국할 때 공항에서 잠시 만나 인사를 나누었던 여행사 사장의 동생이라고 한다.

연변에서 전문대학에서 가이드학과를 나왔고 언니가 하는 여행사에서 한국사람을 상대로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한국을 가본적은 없다고 한다.

이렇게 로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려니 지난 8월에 이곳에 왔을때 만났던 이곳 환경연구원에 근무하는 장선생이 오셨다. 같이 오늘 방문할 곳을 지도와 관련 자료를 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질상태와 유량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길을 나누었고,  뎬츠호에서 유일하게 하류로 물이 빠져 나가는 곳으로 수질상태가 매우 나쁘다고 했다.

10시 30분정도가 넘어서야 SB가 자동차를 가지고 호텔입구로 들어 왔고 같이 자동차로 호수가로 나있는 고속도로를 달려 海口라는 IC로 빠져 나와 도로노면이 좋지 않는 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작은 면소재지정도의 동네가 나왔고 폭이 불가 10m 정도 밖에 되지않을듯한 하천이 접해 있었다.

물은 갈색 빛을 띠고 있었고, 도시의 모든 물이 여기로 집수되는듯 했다. 유량은 제법 많아 보였으나 뎬츠호의 수위에 따라 유량이 달라진다고 설명을 해 준다.

동네는 마차가 사람을 가득싣고 다니고 있어 내가 신기해서 물었더니 이웃 동네로 가기위한 아주 저렴한 교통 수단이고 한다. 도로는 자동자와 마차, 사람, 자전거, 오토바이등으로 뒤셖여 매우 혼잡스럽다. 간밤에 비가 온 탓에 노면은 흙탕물이 투성이고 도로는 매우 지저분하다.

 하천을 따라 하류로 계속 이어지는 도로는 비포장길이 대부분 이었고, 바로 옆에 새롭게 도로를 내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공사 현장과 주변의 공장지대에서 쏫아져 나오는 자동차와 대형트럭들은 연신 오가고 있고, 흙탕물은 연신 서로싸움이라도 하듯이 쏘아 대는탓에 자동차는 흙탕물 투성이가 되었다.

서툰 운전솜씨로 혼잡한 도로를 조심스럽게 SB는 침착하게 운전을 했다.

몇번식내려서 하천 물을 확인하며 하류로 1시간 이상 내려가니 安宇라는 지역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은 온천지대로 아주 유명한 휴양지 라고 한다.

건축양식이나 주변 정리가 아주 잘되어 있다. 장선생은 온천지대 한 곳을 가르치며, SB의 별장도 이곳에 있다고 한다. 내가 왜 당신 별장에 초대를 한번 해주지 않느냐고 하니 다음에 꼭 초대를 하겠단다.

온천 단지내로 흐르는 하천은 뎬츠호 인근보다 더 않좋은 상태 였는데 물은 아예 젯빗을 띠고 있었고, 매우 혼탁해 보였다. 

 온천지대 입구

 장선생은 이곳의 수질개선이 오히려 뎬츠호의 수질보다 더 급하다고 한다. 고급 휴양지 인데다가 관광지이고 고위공무원들의 회의가 빈번하게 개최되는 것으로 수질개선은 매우 시급한 문제라고 한다.

시험 시공을 한번 해보자고 하니 시험 시공보다 먼저 제안서를 작성해서 정부에 보고를 하고 승인을 받는것이 더 급하다고 한다.

시간은 이미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어, 이곳의 한 식당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생각하는 하천수질개선 문제방향이나 내가 추진하고자 하는 방향등에 대해서 이야길 했고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이야기와 중국내의 수질문제등에 대해서 이야길 나누니 SB는 제차 장선생에게 내이야기가 맞는지를 확인 한다.

내가 숫자를 들어 가면서 중국의 호수가 지난 50년사이에 1,000개정도가 없어지고 있고 내몽고쪽은 점진적으로 사막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이야길 하며 수질문제나 물의 문제는 중국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가져야 할 문제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작은 지식을 인류가 가장 소중하게 보전해야하는 물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도 그렇게 일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이야기로 풀어 갔다.

장선생이 내 이야기에 동의를 하면서 오히려 자기는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호수가 사라지고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이야기 하니 SB는 내가 대단한 전문가인양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길 한다.

점심식사는 이곳의 토종닭을 쌂아서 한 5 litter 정도 되보이는 크기의 단지째로 식탁 가운데에다 놓았는데 이곳의 특산물이라고 한다. 내가 야채를 좋아 한다는 것 때문에 야채도 많이 주문을 해놓았는데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식사가 끝나고 다시 온천지가 있는 곳을 벗어나 고소도로를 타고 쿤밍 시내로 들와서 장선생은 먼저 내리고 SB뭐가 하고 싶은지, 가고 싶은곳이 있는지를 묻는다.

나는 그냥 호텔로 가서 차를 한잔 하자고 했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가 지나고 있었다.

호텔 1층의 찻집으로 들어가 내가 노트북을 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등으로 처음으로 많은 이야길 나누게 되었다.

우리와는 정서가 사뭇다른것 같고, 일을 접근하는 방법도 우리가 생각 하는 것과는 다른것 같다. 그러나 우리 정서와 다른것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가슴속에 있는 진정성도 이야길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한 6시가 되어서야 나를 뭔가 자꾸 해주고 싶은지 翠湖(취호)공원으로 가자고 했다.

 翠湖공원

 취호공원은 갈매기가 아침이면 모여 있다가 오후에 모두 뎬츠호로 날아 간다고 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 갈매가는 많지가 않았다. 쿤밍의 중심가에 있는 공원으로 간간히 음악과 춤을 추시는 분이 보였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다.

이곳도 여전히 수질 상태는 좋지가 않았다. 공원 주변은 고급음식점이 즐비 했다.

SB가 근무하는 건물에 주차를 한뒤 공원내부를 한 바뀌둘러 보았다. 호수 중앙에 섬있고, 몇개의 섬이 연결되어 물과 섬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도심지 내에 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호수공원이다.

인근의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사부사부식당 2충 창가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육수는 개별로 나왔고 내가 좋아한다는 야채를 많이 시켰다. 그런데 도무지 육수가 입에 맞지가 않는다.

그냥 배추, 당근, 무우등을 생식으로 저녁을 대충 때웠다. 이제 쿤밍 방문도 3번째이고 SB와 같이 한 시간도 날수로 치면 약 2주 정도가 된다. 이젠 남과 같지 않고 호감이 간다. 서로 문화가 다르고 살아 가는 방법도 다르지만 열정적이고 강렬한 인상은 지울 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가정에 대해서 이야길하니 SB는 남편과 일하시는 분이 살림을 하고 자기는 별로 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여자들이 점점 사회진출이 많아 지면서 집에 가면 와이프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데 집의 최고의 권력의 상징인 TV리모콘은 난 아직 빼앗기지 않고 장악하고있다고 이야길 하니 자긴 리모콘이 필요 없단다.

그냥 몇번틀어 하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목소리에 힘이들어가고 모션을 취하는 모습에 난 한동안 웃음을 참지 못하고 호탕한 웃음을 웃었다.

내가 당신과 내가 결혼 했으면 서로 아무것도 안하게 되어 굶어 죽겠다고 하니 안굶어 죽는단다 내가 밥을 하게 될거란다. 무척 자신감이 묻어 난다. 아마도 이러한 자신감과 열정이 오늘날 고위직까지 오르게 된듯 하다.

처음에 공항에서 봤을때는 소녀 같이 보였는데, 같이 만나면서 열정과 강렬함이 넘처 흐르는것을 봤다고 이야길 하니 SB도 그렇다고 한다. 한때는 인근 도시의 인구가 40만명정도인 현에 총책임자를 했다고 하고 지금도 쿤밍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식사를 하고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고 나보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야 될것 같다고 한다.

내일은 자기가 바빠서 오후에 공항에만 바래다 주어야 할 것 같다고한다.  내가 미안하니 안와도 된다고 하니 쉽게 올수있는 곳도 아닌데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2009년 12월 21일

오늘 밤에는 서울로 돌아가야 하고 특별한 일정이 없는 관계로 아침에 일어나 인터넷으로 몇가지 업무 처리를 한다음 10시 30분경에 짐을 챙겨서 내려와 호텔 Desk에서 Check Out을 하니 이미 계산은 다 되어 있다. 저녁에 짐을 찾기로 하고 짐을 맞긴다음 택시로 뎬츠호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西山으로 가기로 했다.

민족촌입구에서 뎬츠호 위를 지나는 케이블카를 타고 서산으로 향 했다. 왕복 35위안(약6,800원정도)이다. 서상중턱까지 올라온 케이블카는 다시 내려서 정상으로 향하는 곤돌라를 다시 타야 했다. 편도 요금이 25위안(4,500원정도)이다. 서산 정상에 서니 이젠 西山龍門입구가 나온다 여기도 요금을 내란다. 30위안(약 5,400원정도)다 약 17,000원도가 이곳 까지오는 데 들어 간것 같다.

용문은 가파는 산을 깍아서 계단을 만들고 동굴을 만든 곳으로 뎬츠호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중간에 용문이 있는데 물고기가 뛰어 올라 이곳을 지나면 용인된다는 전설이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을 이룬다고 하기에 이곳에서 제일 큰 향이 3개가 묶인것이 있는데 100위안(18,000원정도)을 달라고 한다. 불을 붙이고 뎬츠호를 바라보며 3번 절을 하고 좌우에 모두 3번식 절을 한다음 다시 불상이 있는 곳에서 3번 절을 하고 향을 향로에 꼿았다

 뎬츠호에서 수초를 제거

 2세대에 걸처 만들었다는 동굴를 지나 케이블 카를 타고 내려와서 인근 식당에서 이곳의 명물인 국수로 점심식사를 한 후 뎬츠호를 가까이서 보기위해 걷기로 했다

갈매기가 호숫가의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려고 호수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평일인데도 붐비고 있었고 결혼식을 하는지 드레스를 입고 사진을 찍는 꺼풀이 유난히 많이 보인다. 호수 갓길 끝단에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습지가 나왔는데 잘 조성이되어 있다 작은 자루를 쌓아 만든 인공섬이 여럿 있고 다양한 수생식물을 식재한 아주 멋진 공간이 나왔다

수질관리를 위해 모형지로 만든듯하다 현황판이 크게 설치가 되어 있다. 수질은 비교적 좋아 보인다.

호숫가는 아주 고급스러운 주택이 즐비하다.

시간은 이제 오후 5시를 지나고 있어 뚜렸이 갈곳도 적당하지 않아 택시를 타고 SB가 졸업을 했다는 취호공원옆에 있는 윈난대학으로 갔다.

학교는 오래된 흔적이 묻어 나는 고풍스러운 빨강색 조적과 대리석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건물이 학교 정문에서 곧바로 이어지는 계단 위에 웅장하게 서있었다. 1923년에 개교를 했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뒷쪽으로 돌아가니 중국의 전통 양식 건물과 현대 건축물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울창한 나무가 가득한 캠퍼스는 운치가 있다. 파란잔디와 어우러진 벤치에는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에서 그들의 아름다운 열정이 보이는덧 같다.

이곳 저곳을 걸어다니다 카페가있어 들어 커피한잔을 마시며 테이블옆에 가지런이 놓여 있는 책들을 뒤적이며 있으려니 SB가 전화가 온다

바쁘니 먼저 식사를 하란다. 학교를 빠져나와 취호공원 옆에 있는 이태리 식당으로 가서 피자를 먹을 요랑으로 주문을 했더니 국적불명의 빵에 파인애플 통조림을 놓고 치즈를 가득 뿌린 이상한 피자가 나왔다. 한조각을 먹고는 연신 콜라만 마시고 있으려니 다시 SB전화가 온다. 위치를 설명을 해주니 잘 모르는 모양이다. 윈난대학 정문에서 거리가 불가 50m정도 밖게 되지않아 그 곳에서 만나기로 하고 서둘러서 나와 학교앞으로 걸어가니 그의 같은 시간에 도착했다

SB의 자동차로 호텔에서 짐을 찾아 싣고, 공항으로 오니 시간이 9시가 되지가 않았다. 같이 오늘 있었던 이야길 서로 나누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이야길 했다고하며, 나에게 "우리가 이렇게  만난것은 보통 인연은 아니다"라며 이제 친구가 되었으니 서로 마음으로 잘 지내자고 한다.

남녀가 서로 국적도 다르고, 살아온 여정도, 언어도 달라, 내가 표현하기 어려운 애뜻한 감정을 서로 말로 하지는 않지만 마음으로 느끼며 헤어져야하는 아쉬움이 가슴한 구석에 잔영으로 남는다.

요즘 계속 나 때문에 집에 늦게 들어가는것 같아 빨리 들어가라고 하니 내가 가는것을 보고 가겠다고 하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발권장들어 가기위해, 악수를 나누고 내년에 보자는 이야길 마지막으로 들어 왔다. 들어와서 뒤를 돌아다 보니 아직 그자리에 서 있었다. 다시한번 손을 흔들어 주고는 들어가라는 시늉을 하니 그제서야 발걸음을 옮긴다.

뭔지 모르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그러나 앞으로 추진하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잘되어야 한다. 그런다음에 서로 좋은 감정으로 서로 좋은친구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더 많은 일들을 중국에서 할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니 한국 여행객들이 점점 많아지고 몇분들과 이런 저런이야길 나눈다음 비행기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