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여행·Travel

녹조로 죽어가는 쿤밍의 아름다운 젖줄

지오마린 GeoMarine 2009. 11. 10. 08:57

 

  
깎아지는 듯한 뤄한산의 절벽을 뚫어 조성한 룽먼석굴.
 

 

  
룽먼석굴은 도교사원이다. 다톈거의 신선상 앞에서 절을 드리는 한 젊은 여성.
 

 

윈난(雲南)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소설 <삼국지>에서 시작됐다. 촉나라의 승상 제갈량은 유비가 죽은 뒤 북벌을 착실히 준비하고 있었다. 이 때 남쪽 지방 남만(南蠻)의 추장인 맹획이 반란을 일으켰다.

 

북벌에 나서기 전 배후를 안정시키고자 제갈량은 친히 남정(南征)에 나섰다. 대군을 이끌고 노도처럼 남쪽으로 밀고 들어간 제갈량은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남만군을 무찌르고 맹획을 생포했다.

 

맹획은 억울한 심정으로 만약 자신을 놓아 주고 다시 붙잡히면 그 때 항복하겠다고 제의했다. 수하들이 모두 반대했지만, 제갈량은 이를 받아들여 맹획을 풀어줬다. 맹획은 또 다시 전투에서 지고 생포됐으나 불복했다.

 

그렇게 잡고 풀어주기를 일곱 번. 마침내 제갈량의 지략과 너그러움에 감동한 맹획은 진심으로 복종했다. 제갈량의 신비스런 능력을 보여주는 '칠종칠금'(七縱七擒) 고사다.

 

'칠종칠금'은 역사적으로 근거는 없다. 오직 제갈량의 영웅 만들기 과정에서 꾸며낸 일화일 뿐이다. 제갈량을 신격화하기 위해서 맹획은 실제와는 달리 희화화된 인물로 격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은 '칠종칠금'을 사실로 포장하고 있다. 옛날 한족에 의해 남만의 땅이라 불린 윈난에서 제갈량과 관련된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인이 즐겨 마시는 푸얼(普洱)차만 하더라도 제갈량이 남만의 생활 개선을 위해 전해줬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를 기리어 푸얼차 산지인 푸얼시에는 거대한 제갈량 동상이 도시 중앙에 서 있다.

 

실제 윈난이 중국의 통치 아래 완전히 들어간 것은 13세기부터다. 1253년 몽골제국의 쿠빌라이가 바이(白)족의 왕국 다리(大理)국을 멸망시키고 윈난행중서성(雲南行中書省)을 둔 것이 계기였다. 그전까지 윈난은 한족이 진한시대는 '서남이'(西南夷), 위진남북조시대는 '남중'(南中)이라 천대하던 소수민족의 땅이었다.

 

  
뎬츠는 오랜 세월동안 쿤밍인을 먹여 살찌운 젖줄이었다.

 

  
싼칭거 문 옆에는 재신상. 여행객은 재신상 아래 호랑이 입에 손을 넣어 재운을 뽑아낸다. 시산산림공원

 

윈난의 옛 이름은 '뎬'(滇)이다. 오래 전 쿤밍(昆明) 일대에서 번성하던 소수민족 국가 뎬국(滇國)에서 비롯됐다. 윈난 최초의 왕국이었던 뎬국은 기원전 339년 세워져 200여년간 독립을 유지했다.

 

사마천이 쓴 <사기>에 따르면, '비옥한 평지가 수천 리나 펼쳐져 있다'고 적혀져 있을 정도로 부강한 나라였다. 뎬국은 한나라에 복속되어 기원후 점차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아직도 남아 있다.

 

윈난을 대표하는 호수 뎬츠(滇池)가 대표적이다. 뎬츠는 쿤밍시에서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1886m의 고원 위에 남북으로 40㎞, 동서로 12.8㎞, 깊이는 7.5m에 달한다. 전체 면적 340㎢로, 중국에서 여섯번째로 큰 담수호다. 오늘날에는 뎬츠라는 이름보다 쿤밍호로 더 알려져 있다.

 

뎬츠는 쿤밍 일대의 광대한 평야를 살찌우는 젖줄일 뿐더러 주변 풍광이 아름다워 고원강남(高原江南)으로 불렸다. 뎬츠의 높은 명성 때문에 베이징의 이허위안(頤和園)에 있는 호수를 쿤밍호라고 지을 정도다.

 

뎬츠 서쪽 기슭에는 시산(西山)산림공원이 있다. 시산공원은 화팅산(華亭山), 타이화산(太華山), 뤄한산(羅漢山) 등 크고 작은 산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평균 해발은 2350m에 달한다. 산세가 미인이 잠자고 있는 듯해서 '잠자는 미인산'(睡美人)이라고도 부른다.

 

시산공원은 뎬츠 변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간다. 리프트에서 내려 2㎞ 가량 걸어가면 도교사원 싼칭거(三淸閣)가 있다. 싼칭거 문 옆에는 재신상이 있는데, 호랑이를 딛고 있는 형상이다. 이곳을 찾은 여행객은 호랑이 입에 손을 넣어 재운(財運)을 뽑아낸다.

 

싼칭거부터 뤄한산의 절벽을 뚫어 1333개의 돌계단을 만들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안쪽에 굴을 뚫어 길이가 3㎞가 넘는 길을 만든 것이다. 이 길 옆에는 불교사찰인 화팅쓰(華亭寺), 타이화쓰(太華寺) 등 오랜 역사를 지닌 고찰이 자리 잡고 있다. 그 중간에 있는 룽먼(龍門)석굴은 백미로 꼽힌다.

 

  
절벽 길과 룽먼석굴은 73년에 걸쳐 조성된 대역사였다.

 

  
다톈거 위에 작은 굴을 파서 구름에 앉아있는 신선상을 만들었다.

 

중국에는 룽먼석굴이 두 곳에 있다. 하나는 허난(河南)성 뤄양(洛陽)에 있다. 둔황(敦煌)의 막고굴, 다퉁(大同)의 윈강(雲崗)석굴, 톈쉐이(天水)의 마이지산(麥積山)석굴 등과 더불어 중국 4대 석굴로 꼽힌다. 또 하나는 시산산림공원에 있는데, 규모는 뤄양보다 작고 아담하다.

 

시산공원의 룽먼석굴은 1781년 청나라 건륭제 때 한 가난한 도사인 오래청(吳來淸)에 의해 조성되기 시작했다. 오래청은 전문적인 석공이 아니었다. 그는 오직 망치와 정 하나로 절벽을 뚫어 길을 만들고 석굴을 조성했다. 하지만 절벽 끝 난공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오래청의 사업을 승계한 것은 뎬츠 주변에 살던 양여란(楊汝蘭), 양제태(楊際泰) 부자였다. 1840년 양씨 부자는 오래청이 뚫은 절벽 길을 디딛고 13년 끝에 룽먼석굴의 정화인 다톈거(達天閣)를 완성했다. 처음에는 양씨 부자만 작업했지만, 뒤늦게 70여 명의 주민이 동참하여 석굴 조성을 마칠 수 있었다.

 

룽먼석굴은 오래청이 시작해 양씨 부자가 끝낸 73년의 대역사였다. 석굴양식은 도교사원으로, 다톈거 내부에는 도교 신 문창군과 관성군이 조각되어 있다. 다톈거 위로 4m 지점에는 작은 굴을 파서 구름에 앉아 있는 신선상을 만들었다. 다톈거의 석각은 모두 화려하게 채색되어 입체미를 더해준다.

 

다톈거에서 내려보면 바로 앞은 뎬츠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멀리 쿤밍 시가지가 보인다. 천길 깎아지른 절벽에 붕 떠 있는 느낌에 신선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석굴의 조성에는 슬픈 전설도 숨어 있다. 다톈거 조성에 참여했던 한 석공은 정혼녀에게 석굴을 완성시켜 자손만대에 복을 빌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만드는 신선상 왼손에 들려있어야 할 연필 끝이 계속 부러졌다.

 

다른 사람은 작업을 마쳤지만, 혼자만 일을 끝내지 못하자 비관하여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이에 슬퍼한 정혼녀는 산 위에 올라 슬퍼하다가 그대로 봉우리가 됐다.

 

  
오랜 부영양화로 호수 물빛이 녹색으로 변해버린 뎬츠.

 

  
뎬츠는 중국 내 호수 가운데서도 녹조 현상이 가장 심각하다. 호숫물이 손을 담그기 힘들 정도다.

 

리프트를 타고 시산산림공원으로 올라올 때는 의식하지 못한 점을 다톈거에서 발견했다. 바로 뎬츠의 물 색깔이다.

 

리프트터미널에서 시산공원으로 통하는 도로를 기점으로 뎬츠의 물빛은 극명하게 나뉜다. 쿤밍시 쪽의 왼쪽은 푸른빛이지만 오른쪽은 짙은 녹색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심각한 녹조 현상으로 물 색깔이 변한 것이다.

 

사실 뎬츠는 10여 년 전부터 부영양화가 진행되어 녹조가 생겨났다. 급속한 경제개발 속에 인근에 공장지대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화학물질이 축적됐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생활하수와 농경지의 폐수는 뎬츠를 더욱 죽음의 호수로 만들었다.

 

오랫동안 쿤밍 시민의 젖줄 역할을 했던 뎬츠는 이제 마시는 것은 고사하고 수영조차 하기 힘들다. 뎬츠는 물고기조차 살기 힘들 정도로 오염이 심각하다. 호숫물에 몸을 장시간 담글 경우 피부병을 얻을 수 있을 정도다.

 

오늘날 중국의 하천과 호수는 환경오염으로 쓸모 없는 물이 되어가고 있다. 2007년 중국 환경보호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중국 7대 하천 중 27.9%는 수질이 5급 미만으로 판정 받았다. 중국 내 27개 호수 가운데 10개도 5급 미만이었다. 수질 5급 이하는 공업용수로도 사용 못하는 썩은 물이다.

 

그 중 뎬츠, 타이후(太湖), 차오후(巢湖) 등 3개 호수는 중국정부가 특별 관리하는 환경보호 중점치수지역이다. 부영양화가 워낙 지독하기 때문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윈난성 정부도 1999년 세계원예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수질 개선에 3억 위안(한화 약 510억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수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에도 추가로 50억 위안(약 8500억 원)을 들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윈난성은 앞으로 100억 위안(약 1조7000억 원)을 들이면 녹조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환경 전문가들은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 한번 파괴된 자연이 얼마나 복구하기 힘든지 뎬츠가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쿤밍에서 궈차오미셴으로 유명한 전문식당인 차오샹위안.
ⓒ 모종혁
궈차오미셴

 

  
차오샹위안에서 맛볼 수 있는 15위안 짜리 궈차오미셴. 여러 부위의 닭고기 외에 7가지의 식재료가 포함되어 있다.
ⓒ 모종혁
궈차오미셴

 

한때 아름다움을 자랑했던 뎬츠의 현실을 가슴에 담으며 도심으로 돌아왔다. 밤이 깊어지기 전 쿤밍에서는 꼭 맛보아야 할 음식이 있다. 바로 쿤밍의 별미인 궈차오미셴(過橋米線)이다.

 

궈차오미셴은 '다리를 건넌 쌀국수'란 뜻이다. 궈차오미셴은 이미 100여 년의 역사를 지녔다. 한낱 쌀국수가 이런 재미있는 이름을 얻은 것은 윈난성 남쪽 멍쯔(蒙自)에서 유래된 한 이야기 때문이다.

 

멍쯔에는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호수가 있다. 그 호수 가운데에는 고즈넉한 외딴 섬이 있어 과거를 준비하려는 유생에게 더없이 좋은 장소였다. 청나라 때 과거를 준비하던 한 유생이 그 섬을 택해 불철주야 공부에 매달렸다. 유생의 아내는 뭍과 섬에 놓인 다리를 건너 오가며 남편을 뒷바라지했다.

 

어느 날 아내는 몸이 허한 듯한 남편을 위해 닭을 한 마리 잡았다. 닭고기를 푹 삶은 다음 뚝배기에 국물과 함께 넣어 가져갔다. 여기에 별미로 쌀국수를 따로 준비했다.

 

유생은 공부에 집중하느라 밥 먹는 것을 깜박했다. 반시간 뒤 그릇을 찾으려 간 아내는 남편이 뚝배기와 쌀국수를 건드리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다시 데워오려고 뚝배기를 드는데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닭에서 우러나온 기름이 보온 작용을 하며 열기를 유지한 것이었다. 유생은 그제야 책을 내려놓고 탕에 쌀국수를 넣어 맛있게 먹었다. 그 뒤 아내는 남편을 위해 꼭 뚝배기에다 탕을 넣어 쌀국수를 준비해 갔다.

 

그 정성 덕분인지 유생은 과거에 당당히 급제하게 됐다. 이런 미담은 입에서 입으로 퍼졌고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훗날 유생의 아내가 다리를 건너 섬에 갔다고 해서 궈차오미셴이라 이름 짓게 됐다.

 

닭을 푹 삶아서인지 궈차오미셴의 국물 맛은 우리의 백숙 탕과 비슷하다. 궈차오미셴은 진한 탕에 적게는 3~4가지에서 많게는 20가지나 되는 재료를 하나씩 넣으면서 각기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뎬츠를 보고 무거워진 마음을 단숨에 상쾌하게 하는 진미이다.

 

  
싼칭거 바로 위에 있는 전시관에는 시산과 관련된 각종 전설과 설화를 음각한 벽화가 전시되어 있다.

 

  
쿤밍을 상징하는 건축물인 중아이팡(忠愛坊)은 밤마다 조경을 받으면서 화려함을 뽐낸다.

 # 여행Tip 1

시산산림공원은 쿤밍시 서북쪽으로 10여㎞ 떨어져 있다. 윈난민속촌 부근에 있는 리프트터미널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리프트 이용료는 왕복 40위안(약 6800원)이다. 리프트는 뎬츠 위를 가로질러 해발 2300m까지 올라간다.

 

시산공원의 개방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데, 대략 8:00~18:30이다. 입장료는 여름철에 40위안, 겨울철에는 30위안(약 5100원)이다. 룽먼석굴은 따로 입장료를 받는데 30위안이다. 싼칭거 바로 위에는 전시관이 있는데 시산의 역사에 관한 각종 자료와 문헌이 전시되어 있다. 시산공원은 전체 면적이 상당히 커서 넉넉잡고 3시간의 여유를 두고 천천히 살펴보는 것이 좋다.

 

진마비지팡(金馬碧鷄坊)에서 버스로 시산공원에 가려면 먼저 5번을 타고 량자허(梁家河)에서 내린 뒤 6번으로 갈아타야 한다. 택시를 타고 갈 경우 28위안 안팎이 소요된다.

 

# 여행Tip 2

쿤밍에서 궈차오미셴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은 여러 군데다. 그 중 차오샹위안(橋香園)은 궈차오미셴만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파는 식당이다. 쿤밍 곳곳에 분점을 갖고 있는데, 진마비지팡 바로 옆에 비교적 큰 식당이 있다. 차오샹위안은 밤마다 손님을 위한 전통연희 공연도 개최하고 있다.

 

궈차오미셴은 탕에다 어떤 식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닭고기는 기본이고 윈난 특산이 버섯이 첨가되면 가격은 20위안이 넘어간다. 가장 비싼 것은 30위안까지 한다. 먹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주방에서 나오는 국물을 바로 마시지 말아야 한다. 국물이 아주 뜨거워 혀를 데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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