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여행·Travel

20100225-일본 동경

지오마린 GeoMarine 2010. 3. 3. 19:30

2010년 02월 25일(목요일)

아침 8시 비행기로 일본동경 출장을 가려니 집에서 인천공항 가는길이 마땅치가 않다. 밤11시경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선잠을 깨어 보니 12시 30분 밖에 되지 않았다.

거실로 나와 TV를 켜 놓고 동계 올림픽중계를 보는둥 마는둥 쇼파에 누어 시간을 때무다 4시가 되어 샤워를 하고 조용히 집밖을 나선다. 엘리베이트가 어두운 계단실에 불빛이 올려다 놓고는 나를 1층으로 내려 놓는다.

 

 버스 타는 곳에서 첫차를 기다리다 만약을 몰라 어두운 거리에 마냥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를 타고 잠실 롯데호텔앞으로 오니 공항리무진이 손님들을 태우고 있다.

인천공항으로가는 5시 첫차다.

첫차 치곤 제법 많은 손님이 탓다.

저마다 이야기 꺼리를 가지고 이 새벽녘에 어디론가 가기위해 분주히 나왔겠지 하는 생각으로 버스 뒤쪽에 자리를 잡고 달리는 자동차에 의지한채 잠을 청해 본다.

한두방울 떨어지던 비는강한 빗방울로 변해 차장을 때린다.

막힘없이 달리던 버스는 6시가 되기도 전에 인천공항에 도착을 했고, 발권을 받아 입국장으로 들어가려니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았단다.

6시 30분 부터 입국장으로 들어갈수 가 있단다.

아무도 없는 입국장에 들어서서 7시가 되어서야 문을 여는 면세점에서 일본에서 만날 손님께드릴 김을 몇통사고는 있으려니 탑승을 하란다.

비행기안은 빈자리 하나 없이 8시에 이륙을 했다.

약 2시간의 비행 끝에 나리타 공항에 도착을 했다.

전철을 타기위해 표를 사려니 금액이 만만치가 않다. 3,700엔으로 약40,000원정도의 돈을 지불하고는 천철을 3번정도 갈아 타고는 전철역에 내리니 12시15분정도다.

역앞의 한 식당(정종을 데워서먹는 장치)

 

역 앞에 있는 식당에서 800엔짜리 우동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브츠린 회사로 걸어서 찾아 가니 카지부장은 외근중으로 회사로 돌아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하고 마사히로 과장이 반겨 준다.

같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빗물 저장시설 및 관련 제품과 우리가 하고있는 일들에 대해서 약 2시간정도 이야길 하고 가지고 간 자료와 선물을 전해 주고는 브츠린에서 취급하는 자료도 받고, 농담을 같이하며 태평양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아주 전망이 좋은 8층 사무실에서 앞으로 상호 협력관계를 잘 가지고 갈수있도록 하자고 했다.

브츠린은 종합상사로서 직원이 약 80명정도라고 하고 그룹사 전체는 약 2,400명정도되는 매우 큰회다. 지난 12월 초에 카지이부장이 한국시장 조사차 서울에 왔을때 일본 히타치시에서 유학을 와서 약 8년간 생활한, 다산의 송이사와 잘알고 있던 일본 우수저류침튜협회 옥구이 부장과 같이 오면서 송이사가 통역을 맡으면서, 나에게 연락을 해와 내가 하루동안 안내를 한것이 오늘 이곳을 방문하여 같이 업무를 협의하게 된것이다.

세상일이란 우연이 필연으로 이어지고 이 필연은 또다른 일들을 만들어 낸다는 아주평범한 일상들로 이어지게 되는것 같다.

3시가 넘어서야 카자이 부장이 들어왔다.

브츠린 회사 건물 앞의 빗물저류시설

 

몇가지 더 이야기를 나눈뒤 회사 뒤편에 있는 호텔에서 체크인을 한후 전철로 이동해서 일본 우수저류침투기술협회로 갔다. 이곳에서 지난번 서울에서 뵈었던 옥구이 부장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임베 상무등과 간단한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이미 예약이 되어 있는 식당으로 같이 가서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길 많이 나누었다. 일본에서는 빗물 관련해서는 최고의 실력자들이다.

한국의 사정에 대해서도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맥주와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는 서로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것 같다. 특히 나의 사업방향에 대해서 기술자 출신인 옥구이 부장은 매우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내가 자기네 기술을 가지고 가서 모두 빼앗길것 같은 모양이다. 몇 번이고 이를 강조해서 일본어와 영어로 반복해서 이야길 한다. AID출신으로 유창한 영어와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전통적인 기술자인 그와 사업을 하는 나와는 같은 기술자이면서도 그 접근법은 전혀 다른것 같다.

식사후 카자이 부장과 임베 상무는 먼저 돌아가고 옥구이 부장과 자리를 옴겨 소면 한 그릇을 한 후 택시로 신주쿠에 있는 오쿠이부 장이 신입시설부터 30년 단골이라는 빠로 갔다.

20,000엔을 내면 어떤 술이던지 얼마를 먹던지 상관하지 않는다고한다. 보기에는 3평남짓되는 아주 작은 곳으로 바를 기준으로 의자가 10개정도 있는 조그마한 공간으로 써빙하는 여자가 2명이 있었다.

이야길 나눌 수있는 공간으로는 제격인곳으로 생각이 된다.

신주쿠의 밤거리

 

밤12시정도에 거리로 나오니 거리엔 많은 사람과 자동차 화려한 불빗이 가득하다. 택시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니 택시비가 자그마치 7,500엔이 나온다 대략 80,000원이 넘는돈이다  엄청나다.

 

2010년 02월 27일(금요일)

9시정도에 호텔 체크아웃을 하니 이미 브츠린에서 호텔비를 결재를 했다. 전시장역에서 전철을 타고 우에노역으로 와서 히타치역으로 가는 기차표를 샀다. 4,700엔으로 우리돈으로 약 5만원정도로 매우 비싸다.

신간센이라 비싼것은 다소 이해가 되지만 거리는 불가 130km남짓정도되는 거리인데 시간은 1시간 30분정도가 소요된듯하다. 이름만 신간센이지 달리는것은 완행이다.

10시30분에 우에노역을 출발한기차가 12시경에 히타치역에 도착해서 밖으로 나오니 임물산발명연구소에 임사장님께서 친히 마중을 나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인근의 단층건물의 아담한 식당으로들어가니 일본풍의 인테리어가 음식점의 정겨움을 주는듯하다.

소바우동을 시켜 먹고는, 기차를 타고 오던중에 만난 빗방울은 다소 많은 비를 뿌리는 거리를 달려 5층짜리 건물입구에 서니 조그만한 문페가 林物産으로 써여 있다.

 

5층 집무실로 올라가니 사무실은 온통 발명가 답게 크고작은 부품들과 제품들이 너저분하게 늘려져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우연히 내가 동남아시아에 새우 양식장에 대한 비즈니스를 하려고 한다고 하니 순간 체구가 100kg이 넘을 듯한 노신사의 눈에서 광택을 발한다.

자기도 오래전부터 양식장을 하려고 했는데 하지 못했다고 하면서 자기는 땅속에다 하면 물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 할 수있고, 먹이는 음식물을 이용하여 돈을 전혀들이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기술이 있다고 하며 같이 한번 해보자고 한다.

나는 가지고 있는 특별한 제품이나 기술적인 지식은 없지만 이러한 전문전인 기술을 가지신분들과 같이 기술을 잘 조합하여 새로운 페러다밈의 비즈니스를 하고 싶다고 했다.

이런 이야길 하니 자기도 숫하게 많은 한국사람과 해외에 여행을 다녔지만 당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사람을 보지 못했다고 진정한 기술자는 기술을 잘 조합하는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길 하며 자기 인생에 당신과 같은 사람을 이런 인연으로 만나게 된것이 아마도 신의 뜻인가 보다며 무척 인상깊게 받아 들인다.

앞으로 서로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 같이 잘 조화를 이루어 할 수있기를 진정으로 바란다고 한다.

오후 4시가넘어서 까지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다 보니 5층 옆 옥상에 식생된공간이 있어 물어 보니 35년전에 손수 이 건물을 지으면서 옥상녹화를 했는데 이 공간이 세계 최초로 옥상녹화를 한곳이라며 이 옥상 녹화가 세계로 뻣어나가 오늘날 전세계에서 하고 있는것이고 설명한다.

확인할 수 는 없지만 35년의 시간은 결코 짮은 시간이 아닌많큼 그 시절에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사실은 존경을 해야 할것 같다.

태평양을 바라다 보는 히타치시는 매우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로 소도시라는 생각이든다. 거리엔 비가 주절주절 내리고, 임사장께서 이바라키대학교 까지 자동차를 태워다 주어 이곳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갔다.

이바라키대학교 공학부 캠퍼스 정문

 

히타치시는 이바라키 현[茨城縣]에 있는 도시로 1591년 구리 광산이 발견되면서 산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시대[明治時代 : 1868~1912]에 대규모 구리 제련시설이 도입되었고, 1920년 이후 히타치사[日立社]는 전기기구·기계류 생산으로 업종을 다각화했다. 1907~38년에 무려 인구가 10배로 늘어났다. 특히 관동대지진(1923) 이후 발전했는데, 게이힌[京浜] 공업지대가 지진으로 파괴되면서 비롯된 제조업상의 공백을 메웠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의 폭격을 받아 큰 피해를 보았지만 빠른 속도로 복구했다. 히타치의 광산에서 생산되는 구리는 전선이나 동판 롤을 만드는 데 쓰인다. 1960년에 완성된 히타치 항은 현(縣)에서 가장 큰 상업항구이다. 인구 202,380(1992).

 

저녁에 혼자 호텔에 있으려니 다소 무료해서 인근에 있는 양판점에서 저녁 식사나 할 요량으로 들어갔다. 사람은 거의없고 한산하다 못해 적막하기만 하다.

이곳 저곳을 둘러 보다 식당에서 우동정식 800엔을 주고 저녁을 때우고는 호텔에서 일과를 마무리 했다.

 

2010년 02월 27일(토)

느지막히 일어나 밖을 보니 제법 많은 비가 내린다. 오늘 오후 6시 40분 비행기를 타야 하는 관계로 시간이 충분하여 비를 맞으며 호텔을 벗어나 해안가 쪽으로 걸어서 내려갔다. 파도가 심하게 요동을 친다.

해안선을 따라 방파제 공사 현장은 거푸집만 치다만체 있고 비가오는 탓인지 인부들은 아무도 없다.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는 꽤나 춥다.

히타치역 인근의 해변가

 

다시 호델로 돌아와 이번 여행에 대한 정리를 하고는 출발준비를 해본다. TV에는 온통 이번 동계올림픽 중 피겨스케이팅의 아사다마오와 김연아 이야기 뿐이다.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 연결하며 시민들의 표정을 전해주고 서로간에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일색이다.

11시가되어서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는 12시 버스를 타고 동경의 나리타 공항으로출발을 했다.

히타치역 광장

 

히타치역에서 버스는 출발 했는데 버스 요금이 3,500엔이다. 버스는 이곳 저곳을 들리면서 아주 느린 속도로 동경을 향해 가는데 나리타 공항에 도착을 하니 오후 3시 30분이 넘어선다.

멀지 않은거리를 무척이나 오래동안 버스를 탓다. 곧장 발권을 하고는 입국 수속을 발고 보세구역으로 들어와 선물용 과자 몇 봉지를 사고는 탑승을 했다.

공항에 많은 비행기가 내고 이륙을 하는터라 비행기가 좀처럼 이륙하질 못하다가 무려 7시 20분경에서야 이륙을 한다.

다행히 자리가 없어서인지 우리 자리는 비즈니스석으로 배정이되어 편안한 잠을 청했다. 최신형 비행기라 의자는 완전히 눕혀져 무척 안락 했다.

인천공항에 도착을 하니 밤 9시20분, 짐을 찾고 밖을 나와 잠실로 가는 10시 30분 버스를 타고 잠실을 경유하여 집에 오니 12시가 다된다.

무척이나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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