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과학적으로 이용한 예는 또 입습니다. 세종대왕 이전에는 빗물을 측정할 때 땅을 파보고 빗물의 양을 측정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오늘밤 비가 내려 땅 속에 스며들기를 1촌(3.0303cm) 가략이었다.'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흙이 마르고 젖은 정도가 모두 다르고, 흙의 상태에 따라 흙이 젖는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하지 못합니다. 그저 비가 많이 왔는지, 가뭄이 들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만 알 수 있을 뿐이었어요.
그래서 1441년, 세종대왕이 측우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측우기는 높이 31.5cm, 지름 15.3cm의 원통으로, 표면에 대나무처럼 도드라진 마디가 3개 있습니다. 측우기 안에 고인 물의 깊이는 주척이라는 자로 측정하였습니다. 관상감(조선 시대의 천문, 지리, 기후 관측 등을 맡아 보던 기관.)의 관원이 척, 촌, 분 (조선 시대에는 지금과는 다른 단위를 썼어요. 척은엄지 끝부터 가운뎃손가락 끝까지를 뜻하는데, 센티미터로는 약 30.3cm예요. 촌은 척의 10분의 1인고, 분은 촌의 10분의 1이에요.) 단위까지 물의 깊이를 정밀하게 측정했어요.
각 지방에서 강우량을 측정한 수치는 중앙에 정기적으로 보고하여 전국적인 강우량의 통계를 냈습니다.
세종대왕 때 만들어진 이 측우기는 세계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163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측우기로 강우량을 측정하였고, 그 후 1658년 프랑스, 1677년 영구에서 측우기를 만들어 사용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측우기가 만들어진 이듬해인 1442년부터 측우기로 강우량을 측정했으니, 이탈리아보다도 약 200년이나 앞서서 비의 양을 측정했던 거예요. 그 후 측우기는 여러 차례 다시 만들어져 현재는 1837년 헌종 때 만든 것이 남아 있으며, 보물 제562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측우기 원조?
※ 현재 기상청에 보관된 측우기와 그 받침대인 측우대는 세상에 남아 있는 측우기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측우기는 조선 헌종 때, 측우대는 1770년에 만들어진 것이에요.
※ 최초의 측우기는 1441년에 만들어져 1442년부터 이용이 되었습니다. 측우기의 원조가 우리나라라는 사실은 1910년 일본의 한 기상학자에 의해 서양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중국학자들은 조선의 측우기가 명나라 초기인 1424년 중국에서 전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측우대에 쓰여진 '건륭경인오월조(乾隆庚寅五月造)'라는 글자 때문이에요. 건륭은 고종의 연호 (새로운 왕좌에 올랐을 때 그 다음해를 기준으로 새롭게 계산하여 년수)이며, 경인년이면 1770년을 의미해요. 측우대에 중국식 연호가 쓰여 있으니 중국에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던 거예요.
※ 당시 조선은 중국식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곤 했어요. 그것을 잘 알지 못했던 중국학자들이 오해를 했던 것이지요. 중국식 연호가 적혀 있긴 하지만 측우기와 측우대는 우리나라의 독자적 기술로 우리나라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측우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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