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에 대한 제사는 세계 보편적인 현상이다. 고대 로마에서 10월 13일에 열린 폰티날리아 축제는 샘과 우물의 신에게 경배하는 감사제였다. 바빌로니아 신화에 등장하는 이슈타르 신, 켈트족이 섬긴 디아나 여신 등 세계 곳곳에서는 우물의 신을 풍요의 신으로 섬기기도 했다. 더불어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기우제를 우물가에서 지내기도 했다.
우물 속에서 발견된 각종 유물들
경주박물관 미술관 부지에서 2000년에 발굴을 시작한 9세기 통일신라 우물에서는 8〜9세로 추정되는 아이의 유골과 소, 개, 고양이를 비롯해 멧돼지, 오리, 뱀, 개구리, 상어 등 각종 동물 뼈 2,200여 점, 유골 주변에 가지런히 놓인 나무 두레박과 토기 70여 점, 기와, 목제품, 비녀, 허리띠를 포함한 금속제품 등의 유물이 발견된 바 있다. 발견된 아이 유골의 경우 아이가 단순히 우물에 빠진 것이 아니라, 왕실 차원에서 이곳에서 우물 제사를 지내며 사람을 공양품으로 바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 경당지구 206호에서 발견된 우물의 경우에도 우물 바닥에 200점이 넘는 토기류를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이곳 역시 우물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이런 우물들은 식수를 얻기 위한 곳이 아니라, 제사를 위해 쓰인 곳이다. 제사를 지낸 흔적이 남아있는 우물은 이외에도 논산 마전리 우물 등 여러 곳이 있다.
우물물이 변하지 않기를 바란 사람들
우물 제사는 개인과 마을에서도 이루어졌다. 집 안에 있는 우물은 집안 지킴이로서 성주신(成主神- 가내의 평안을 주관하는 신), 조왕신(竈王神- 부엌을 맡고 있는 신), 문신(門神), 측간신(厠間神) 등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 반드시 우물의 신에게도 제사를 지냈다. 마을 공동의 우물의 경우 대동굿을 할 때에 반드시 우물고사도 함께 올린다. 우물고사를 지내기 전에는 우물 주변의 잡스런 오물을 제거하고, 지붕을 씌우거나 금줄을 치기도 한다. 우물고사는 매년 정해진 날에 하거나, 여름철 홍수로 더렵혀진 우물을 청소한 후 소나 돼지를 잡아서 성대하게 우물고사를 지내기도 한다. 사람들은 우물이 변하지 않고, 늘 맑고 깨끗할 것을 기원했다.
고사에 따르면 신라 김유신 장군은 전장으로 떠나 있다가 오랜만에 집에 와서는 우물물의 맛이 변하지 않은 것을 보고 집안이 무탈하다고 여겨 다시 출정 했다고 한다. 백제가 망할 때 우물물이 핏빛으로 변했다거나, 이차돈이 순교할 때 우물이 말랐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은 우물에 이상이 생기면 곧 큰 일이 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사라져가는 우물
우물은 생명, 정화(淨化), 부활(復活), 농경(農耕), 왕권(王權) 등의 상징성을 가진 곳으로, 마을의 중심공간이며, 함부로 오염시켜서는 안 되는 성스러운 곳이기도 했다. 우물은 사람들이 만나 물자를 교환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마을 생활의 중심공간이었다. 공동우물의 물을 함께 마시는 사람들끼리는 두레패를 결성하여 공동노동을 하며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우물은 20세기 이후 상수도의 보급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게다가 각종 오염물질의 증가로 더럽혀져, 식수로도 사용할 수 없는 우물이 많아지고 있다. 옛날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국가의 위기로 볼만한 일이 생긴 것이다. 오늘날에는 각 가정마다 수도가 있어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을 함께 만나는 일도 차츰 옛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경주박물관, [우물에 빠진 통일신라 동물들], 2011;권오영, [성스러운 우물의 제사- 풍납토성 경당지구 206호 유구의 성격을 중심으로], [지방사와 지방문화] 11권 2호, 2008;김광언, [한중일 세나라의 민속 연구- 샘과 우물], [민속학연구] 18호, 2001;김사봉, [고산동의 고구려우물], [조선고고연구] 1986년 1호, 사화과학원고고학연구소, 1986;김창억, 김대덕, 도영아, [우물유구에 대한 분석과 조사방법], [야외고고학] 5집, 2008; 알레브 라이틀 크루티어 지음, [물의 역사], 예문, 1997; 이성원, [고대 중국의 ‘市井’과 그 공간], [한국중국학회] 58집, 2008; 이신효, [백제 우물 연구], [호남고고학보] 20집, 2004; 이필영, [마을 신앙의 사회사], 웅진출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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