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역학>
싸움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요인은 크게 두 가지, 정신적인 면과 물리적인 면이 있다.
상식적으로는 힘이 센 사람과 약한 사람이 싸우면 전자가 후자를 압도하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학교에서 아이들끼리의 다툼에서 이런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물리적인 힘의 세기와 무관하게 강단(깡다구)이 센 아이가 싸움도 잘 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 간의 싸움에서는 몰라도 국가 간의 싸움, 즉 전쟁에서 이러한 주관적 측면이 위력을 발휘할 여지는 거의 없다. 국가 간의 전쟁에서는 객관적인 전쟁수행 역량이 승패를 결정짓는 절대적인 요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특정 국가의 주관적 속성(국민성, 전쟁수행 의지 등)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결정적인 요인인 양 떠벌이곤 한다.
우리 어릴 적에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이스라엘과 중동 국가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에서 유학 중인 두 나라 학생이 가방을 싸는데, 이스라엘 학생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그러고 중동 학생은 소집영장이 날아올까봐 도망가기 위해 그런다는 것이다.
이 신화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애국심이 각별한 점에서 일정한 사실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인들의 국민성과 전쟁 승리는 별 관계가 없다. 1967년 아랍국가(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연합국)와 이스라엘 사이에 벌어진 3차 중동전쟁은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쟁에서 공중전의 예를 들면, 이스라엘 전투기가 1대 격추될 때 시리아 전투기는 76대가 격추되었다. 이 현격한 차이는 전투 기술의 문제도 아니고 국민성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그 차이는 무기 성능의 차이였다. 시리아 전투기는 소련제 구식 미그기였고 이스라엘 전투기는 미제 F16이었다.
국가 간의 전쟁에서 주관적인 측면은 별로 중요하지 않음에도 그것을 신비화하는 이상한 풍조는 다름 아닌 남북한의 전쟁능력 비교와 관련하여 우리 국민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뉴스나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북한 군인들의 호전성에 관한 세뇌교육을 많이 받아왔다. 우리에게 각인된 북한 사람들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전쟁광의 그것이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조금만 생각해보면 한미 연합군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마음이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안다. 개가 으르릉거리는 심리의 기저에는 공격성이 아닌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 눈에 비친 북한군의 호전성의 실체도 그런 심리가 전부라 봐야 한다.
그 이유는 객관적인 전력을 들여다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는 남북한 군사력을 비교할 때 전쟁무기(전투기, 장갑차, 잠수함 등) 숫자로 비교해 남한이 북한보다 근소한 열세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동전쟁에서 보듯 무기의 성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1967년의 전쟁에서도 이러한데 해마다 최첨단 신무기가 생산되는 현대전에서는 더욱 그러하다고 봐야 한다. 알다시피 북한의 무기들은 대부분 유통기한이 지난 구형일 뿐이다.
개인이 일대일 맞짱 떠는 싸움이 아닌 국가 간의 전쟁은 깡다구로 하는 게 아니다. 현대전에서 전쟁 승패의 관건은 한마디로 경제력이라 말할 수 있다. 남북한의 GDP나 GNI를 비교하면 약 45배에서 79배 차이가 난다. 경제력에 기초한 국방비 지출도 남한이 월등히 높다. 최소 4배에서 최대 33배까지 국방비를 더 지출한다. 이렇듯 압도적인 전력차에도 불구하고 우리 군관계자들은 늘 한국이 북한에 열세라고 떠드는 이유는 긴장 상태를 조성해야 자기네들 존재감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안보이데올로기로 거짓 군사전문가들이 긴장 상태를 조성할 때 가장 큰 이득을 취해온 집단은 미국 군수자본가들과 극우정치인들이다. 날강도 같은 미국이 우리나라에 방위 분담금을 대폭 증액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액수가 무려 70조란다. 이에 진보는 물론 보수적인 한국인들조차 차라리 그 돈으로 자주국방 태세를 갖추자고, 주한미군 필요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니까 돈을 많이 내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누구로부터 지켜준다는 말인가? 우리의 ‘주적’ 북한은 전쟁 수행능력은 물론 의지도 없다. 북한은 우리보다 평화를 더 원한다. 착해서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이다. 핵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보유하고 있다고? 핵미사일은 약한 북한이 세계최강 미군을 상대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다. 즉, 주한미군이 없으면 핵미사일도 없다. 그러므로, 주한미군은 우리를 지켜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위험에 빠뜨리는 재앙적 요소다.
미국 경제의 성격은 군산복합체로 규정된다. 무기를 팔아서 먹고 사는 미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세계 평화다. 전 세계 곳곳에서 군사적 긴장이 유지되어야 웃을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 미국의 군대가 한국에 주둔하는 것은 우리를 지켜주기 위함이 아니다. 일 예로, 칠곡에 배치된 싸드는 북한보다는 중국을 겨냥하기 위한 것이고, 한국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위한 군사시설이다. 혹 미국과 중국 사이에 군사갈등이 일어날 때 중국 입장에서 맨 먼저 이곳을 타격할 것은 자명하다.
주먹으로 먹고 사는 조폭이 몸을 만들기 위해 가끔씩 헬쓰장을 찾을 것이다. 그런데 헬쓰장 쓰는 비용을 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보호비 명목으로 삥 뜯는다면 그건 양자 간에 정상적인 거래라 할 수 없다. 미국 입장에서 한반도는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이곳에서 전쟁 연습을 벌이며 몸을 만들어 가는데 연습실 사용비도 안 내고 오히려 매년 70조원의 연습비용을 보태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이 나라 어르신들은 반정부 데모할 때 성조기를 들고 나온다.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사진) 키리졸브 한미연합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의 핵추진항공모함이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이 무시무시한 전략무기가 우리에겐 든든해 보일지 모르지만 북한과 중국의 입장에선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미군사훈련은 방어가 아닌 공격을 위한 훈련이다. 역사상 미국이 평화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움직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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