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여행·Travel

20210316 - 해외여행 자가격리

지오마린 GeoMarine 2021. 4. 5. 11:50

2021년 03월 16일(화요일)

자가 격리 4일째

아침일찍 일어나 아무도 없는 집앞 뚝방길을 걸었다.

많이 걷고 싶었지만 자가격리의 기본에 충실하려고 혹여나 누군가 마주칠세라 얼른 들어왔다.

동네가 너무 고요하다.

집 담장 넘어로 하루종일 서너사람 지나는 걸 볼 수 가없다.

사라져 가는 농촌 마을의 한 단면을 체험하는것 같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면사무소 앞길은 도로를 넓힌다고 철거 주택 보상을 다해 줬다고 하고, 우리면에 인구수가 1,000여명밖에 안되는데 상하수시설을 다 했다.

내성천 물이 상수원수이고, 처리된 하수도물이 내성천으로 흘러들어간다.

학교가 하나도 없고, 우체국은 민간이, 파출소는 상주하는 분이없고 출퇴근 한단다.

수도권은 사람으로 넘처나고, 시골은 이렇게 소멸되어 가나부다.

 

2021년 03월 17일(수요일)

고향 동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주변에 집들이 하나둘 사려졌다.)
격리기간 동안 나의 공간

자가 격리 5일째

이제 시차적응도, 여독도 사라져 간듯하다.

날씨가 약간 쌀쌀하지만 너무 좋다.

밀린 숙제들을 하나식 정리해 본다.

이곳 저곳 전화도 하고 메일도 보내고, 카톡으로 일도 체크해 본다.

이곳으로 내려올때 마누라가 싸준 반찬이며, 보건소에서 가져단 준 부식을 혼자 먹고 있노라니 줄지가 않는다.

이곳에서 멀지않는 곳에 사는 누이가 반찬을 또 해가지고 왔다.

마누라는 전북 고창출신이라 음식을 잘한다. 그러나 결혼한지가 30년이 지나도 전라도 음식은 나에겐 늘 못마땅하다. 누이가 만들어온 음식은 전형적인 이곳음식이다.

무청씨레기에 콩가루를 묻혀 찐것과 아주까리 나물 묻힘, 깻잎묻힘, 무우말랭이, 파김치를 만들어 왔다.

마누라가 해준 김치와 무우말랭이, 나박김치, 고추장조림을 뒤로 밀처놓고 내 입에 맞는 반찬부터 손이 간다.

무청씨레기찜은 밥없이 한그릇으로 한끼가 충분하다.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뿌듯한 맛이다.

객지를 돌아다니고, 전라도 마누라와 오랜날들을 살아도 입맛은 변하질 않는다.

전라도 음식은 맛으로 먹고, 경상도 음식은 한끼 땜방 음식으로 생존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흔희들 말하는 그 맛없는 음식이 늘 그립다.

혼자서 끼니를 챙겨먹고 가지고온 일감을 뒤척이며 시간을 채워간다.

2021년 03월 18일(목요일)

자가 격리 6일째

집 앞에 들판에는 벌써 쑥이며, 냉이들이 손짓을 한다.

약간은 쌀쌀한 바람이 춥게느껴지지만 어김없이 봄의 기운이 썩여있음이 감지 된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후 자가진단 어풀에 체크를 하고 전송한다.

조금은 익숙해진 모양세다.

그러고는 여느날과 마찬가지로 노트북을 펼쳐서 메일에 답변을 하고, 오늘 할일들을 정리해 본다.

출장 보고서를 마무리해서 보내고, 제안서 쓰던것을 다시금 뒤척여 본다.

이내 점심때가 되고 햇반을 전자랜지에 데워서 있는 반찬에 한끼를 때웠다.

그리고 커피한잔.

재미없는 시간이지만 별반차이가 없는 하루다.

간간히 걸려오는 전화 통화, 카톡...

저녁이 찾아오고 컵라면 하나로 저녁식사를 대신 했다.

TV와 인터넷이 안되서 핫스팟으로 지낼려니 데이타가 많이 사라진다.

계속 보충중이다.

이 문제만 빼면 시골의 시간도 그럭저럭 괜찮다.

저녁에 다시 자가 진단 어풀에 체크했고, 보건소 담장자가 전화가 온다.

이렇게 하루는 간다.

 

2021년 03월 19일(금요일)

자가 격리 7일째

해외를 다녀온 윈죄때문에 집안에서 하는 일이라는게 고작 보고서 쓰고, 전화 주고 받고, 카톡하고, 배가 출출하면 챙겨 먹는게 고작이다.

오늘 누이가 음식을 가져다 마루에다 내려 놓고는 얼굴도 안처다보고 후다닥 간다.

냉이에 콩가루 묻혀서 쪄낸 찜과 쑥에 찹살을 묻혀 찐 쑥떡이며, 무우생채 무침과 과일, 군것질 할것들이다.

냉이찜과 쑥떡은 다른 지방에선 보기 어려운 음식이다.

이곳은 내륙 깊은 곳이고 빈촌이라 생선과 고기류는 잔치나 제사상외에는 만날수 없었다.

그래서 아마도 영양 습취를 위해, 무우청 씨레기나, 냉이에 콩가루를 묻혀서 쪄먹었던게 아닌가 쉽다.

이는 빈곤한 농가에 양식을 늘려주고, 영양을 보충시켜 주는데 그 맛은 구수하고, 굳이 밥이 필요없는 한 그릇으로 한끼를 충족할 수 있는 든든한 음식이다.

봄이면 들녘에서 쑥을 뜯어다 찹쌀가루를 묻혀서 쪄낸 쑥떡은 떡방아간에서 만든 가레떡이나 절편과는 또 다른 구수함과 봄 내음을 가득 품은 맛의 풍미를 전해 준다.

가난한 시절 한끼 땜방하는 음식들이 그 동안 객지에서 먹어본 숫한 음식에서 찌던 몸을 정화해주는 것 같다.

COVID-19가 가져다준 또 다른 자연속으로 회기가 아닐까?

2021년 03월 20일(토요일)

자격리 8일째

비가 내린다.

봄비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날씨 탓인지, 종일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전화도, 메일도, 톡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시간이 많으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것 같은데 오히려 많이 주어진 시간은 사람을 무기력 하게 만든다.

집안 이곳 저곳을 둘려보면서 지나간 시간들 속을 들여다 본다.

저 앞산으로 지게지고 나무하러 다녔던 일,

여름에 비닐포대를 들고 소 풀하러 다녔던 일,

방학이면 동네 느티나무 아래에 하나 둘식 모여 소를 몰고, 저 앞산 넘어로 1열로 길게 늘어서 소먹이를 가던 기억들이 텅빈 길에 오버랩 된다.

육성회비를 못내서 학교 복도에 서있었고,

수학여행을 못가서 다 떠나버린 텅빈 동네, 집 뒷산 소나무와 놀았던 기억들과 장소는 그대로인데 모두들 어디로 떠난걸까?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는 문 닫은지 오래고, 화려했던 골목길 느티나무는 이젠 고목이 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한적하다 못해 썰렁한 내 고향의 메말라버린 항수가 서글프다.

세상 이곳저곳을 다니며 늘 그리웠던 고향이, 늘 오고 싶고, 언젠가는 이곳에 와서 살거라는 되뇌임이 퇴색되고 있슴을 감지한다.

고향은 고향일뿐...

 

2021년 03월 21일(일요일)

자가 격리 9일째

어제 비가 온 탓인지 바람이 세차다.

지금 이 집은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고 20여년째 빈집으로 비바람을 홀로 견디며 지내왔다.

가끔 우리 형제들이 향수를 달래는 곳이 되었고, 매년 5월에 제사를 모시며 우리 형제들이 지난 이야기를 담아내는 곳이다.

허름하지만 이 집이 있어 이곳이 고향이라 말할 수 있고, 가끔은 객지생활의 위안과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이다.

이젠 내륙고속도로가 생겨 2시간 남짓이면 올 수 있는 곳이지만, 내륙의 오지 였다.

김포공항에서 가장 가까운 예천공항에 항공기가 30여년전부터 다녔던 곳이지만, 이젠 전투기 소리만 요란하다.

90년 12월 내 결혼식날 눈이 내려 버스가

이화령고개(문경세재)를 넘어가질 못해, 이곳 일가 친척들이 아무도 못 왔었던 오지였는데, 기차가 지나가고, 공항이 있던 묘한지역이다.

[가을동화]드라마가 내성천의 회룡포를 세상에 알렸고, 내가 PPT하는 첫 페이지는 늘 회룡포 사진이다.

이제 며칠 안남은 나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머물게된 고향에서의 시간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2021년 03월 22일(월요일)

자가 격리 10일째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춥다.

겨울을 세차게 밀 어내고 있는 모양이다.

맑고 공기가 너무 깨끗하다.

아침에 일어나 띰박질을 30분 정도하고, 보일러가 없는 탓에 물 데워서 씻었다.

어풀에 자가진단 체크를 하고 전송했다.

아침 저녁으로 하루에 두번씩 해야한다.

아침식사는 바나나와 쑥떡, 커피로 했다.

월요일이라 8시에 화상회의 톡이 날아온다.

이윽고 전화 메일 톡이 하루가 시작되었슴을 느끼게 한다.

하나식 처리하다보니 배가 출출해 진다.

햇반 하나를 데워서 있는 반찬에 식사를 했다.

별반 다르지 않는 시간이 흘러간다.

저녘이 되고 늘 보아왔던 노을이 가까이 왔다.

황홀하다.

26일(금) 정오에 자가 격리가 끝난다고, 25일날 마지막 PCR검사를 받으라고 문자가 왔다.

의도치 않게 머물게 된 시간이지만 새로운 체험을 했다.

고향에서의 이런 저런 생각과 나 자신에 대한 삶의 괴적을 되돌아 봤다.

그리고 이렇게 일을 할 수도, 생활 할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도 경험했다.

그래도 가족과 무미건조한 시간이 그립다.

 

2021년 03월 23일(화요일)

자가 격리 11일째

보급품이 새로 왔다.

곧 바로 담은 파 김치와 봄동나물 묻힘, 봄나물이 가득한 된장국, 쑥떡이다.

이제 3일 남았는데 내 입에 딱맞는 것들만 공급되는걸 보니 아마도 계속 여기 있으라는 메세지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고립생활을 하면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지내야 하는데, 그 동안 늘 그리워하던 봄향기 기득한 나물들로 포식을 하게 되니, 귀향 생활이 너무 사치스럽다.

이곳을 떠나 세속에 노예생활이 되면, 입에 맞지않는 음식과 격식을 차려야 하고, 틀에 박힌 생활이 육신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것이 자명하다.

그런줄 알면서도 가야하는 것이 서글푸다.

그래도 또 다른 성취욕으로 희열을 찾고, 무미건조함 속에서도 잔잔한 미소를 건질날들을 기대해 본다.

처음 고향을 떠날때 처럼 설레임과 두려움을 헤쳐나가 보자.

2021년 03월 24일(수요일)

자가격리 12일째

고향에 와 있으려니 친척들이 신경이 쓰이나 보다.

먹을것을 가져다 놓고 간다.

죄인 같다.

해외 다녀온 죄인.

반드시 가야할 출장은 다녀와야 하고, 정부의 정책은 따라야 하는 부자연스러운 환경이 빨리 정리 되면 좋겠다.

COVID-19를 격는 이시기를 먼 훈날 무용담 처럼 이야기 하는 날들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은 왔고, 그럭저럭 하루가 저문다.

내일 오전 10시에 보건소로 와서 PCR건사를 받으라고 연락이왔다.

마지막 남은 절차인것 같다.

귀향살이를 하다보니 먹을 음식이 너무 많이 남을것 같다.

곤궁한것은 음식이 아니라 인터넷이 됐다.

어쩌면 멀지 않은 날에 이곳에 멋진 집을 지어 놓고 인터넷 잘 연결해서 일에 상당수를 서울에서가 아닌 이곳에서 하면서 유희를 즐길 수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오늘도 몇몇곳에 자료와 견적을 어렵게 핫스팟으로 연결해서 보냈다.

궁하면 통한다고 그래도 일 처리는 된다.

금요일에 올라가면 밀린 약속들이 많다.

이렇게 봄은 왔고, 3월은 간다.

가장 아름다운 4,5월이 기다리고 있다.

뭔가 좋은일들이 가득 쌓여있을 것 같은 이 기분은 뭐지.

2021년 03월 25일(목요일)

자가 격리 13일째

몸 단장을 하고 14km정도 떨어져 있는 읍내 보건소에 가서 마지막 PCR검사를 받았다.

음성으로 나오면 내일 정오에 격리해제가 된다.

오랜만에 자동차를 몰아보는 세상이 신비롭다.

포근한 날씨에 들녘에 어느듯 푸르름이 움트고 있는 느낌이 닥아온다.

한시간 가량의 읍내 나들이에서 돌아와 여느때와 같은 시간을 만들어 간다.

그리고 저녁이 왔다.

붉은 했살이 수많은 이야기를 안고 사라져 갔다.

2021년 03월 26일(금요일)

자가 격리 14일째

아침 8시 19분에 문자가 왔다.

"검사결과 음성입니다."

해외 출장이 마무되는 묘한 느낌을 받는다.

물을 데워서 씻고, 아침으로 컵라면 하나를 먹었다.

풀어 헤쳐놓은 짐을 하나식 정리를 했다.

서류, 책, 옷, 부식품을 가방에 담고, 설긋이를 했다.

테이블을 접고, 청소기로 청소를 하고는, 짐을 자동차에 옴겨 실었다.

이곳 저곳에서 전화가 온다.

이러고 있는데 같이 들어온 대구에 계시는 분이 오늘 아침 양성 판정을 받고 오전 9시경에 병원으로 이송되어 음압실로 입원했다고 한다.

비행기 자리는 많이 떨어져 있었지만 격리시설로 이동할때 같은 버스를 탓었는데 걱정이 밀려온다.

오전 11시45분경에 내 담당한테서 전화가 온다 "12시부터는 격리 해제 됨니다.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COVID-19로 인한 한 단계를 벗어났다.

12시가 되어 집을 나와 인근에 사는 누이식구와 점심을 경북도청 인근에서 하고 오후 2시경에 출발했다.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서울이 가까워 질 수록 자동차가 움직이질 않는다.

6시가 다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한달만이다.

집엔 아무도 없다.

짐 정리를 하고 씻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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