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지구만들기/물과 우리

지오마린 GeoMarine 2011. 8. 4. 15:25

 

물

장마 전선이 오락가락 하면서 전국에 비를 뿌려댄다. 없어도 문제가 되지만 넘치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물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화학물질의 하나일 것이다. 물이 없으면, 물의 성질이 현재와 같지 않다면 하는 가정을 해보면 끔찍한 일들이 상상이 된다. 우리 몸무게의 70% 정도가 물이니 그것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물은 왜 그렇게 독특한 성질을 띠며, 그 독특한 성질을 우리는 어떻게 경험하는 지 알아보자.

  

극성 용매인 물

물은 여러 가지 물질을 녹일 수 있는 용매(solvent)이다. 한 개의 물 분자는 수소원자 2개, 산소원자 1개로 이루어져 있지만, 액체 상태의 물은 수 많은 물 분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물 분자 한 개를 놓고 보면 수소원자들은 부분적으로 양 전하를 띠며, 산소원자는 부분적으로 음 전하를 띤다. 왜냐하면 산소 원자는 전자를 잘 끌어 당기는 특성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산소원자 주위에 전자가 더 많이 쏠려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한 개의 분자 안에 부분적으로 양 전하, 음전하를 가진 물 분자는 극성을 띤 분자라고 말한다. 극성을 띤 물 분자들은 서로 이웃하고 있는 분자들끼리 서로 잘 끌어당기고 있다.

물 분자 수소결합의 3D 모델. <출처: (cc) Qwerter at Czech Wikipedia 등>

액체 상태의 물. 물은 지구상에서 가장 중요한 화학물질의 하나다.

 

부분적으로 음 전하를 지닌 산소원자 주위에 부분적으로 양 전하를 띤 다른 물 분자의 수소원자가 공간적으로 배치된다면 두 분자는 잘 끌릴 것이다. 그러므로 3차원 공간상에 이러한 끌림으로 인해서 물 분자끼리 여러 개가 뭉쳐지고, 결국에는 응집이 되면 액체가 되는 것이다. 물이 극성을 띠고 있으므로 극성을 띠고 있는 이온이나 분자들은 물에 잘 녹는다. 그러나 극성이 매우 약하거나 없는 분자들은 물에 녹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기름 분자들은 극성이 없어서 극성 용매인 물에는 잘 녹지 않는다. 대신 기름 분자들은 극성이 약하거나 없는 유기 용매에는 잘 녹는다.

 

물 분자의 수소결합과 표면장력

물 분자는 수소결합이라는 독특한 결합 방식을 통해서 다른 극성의 분자들 보다 더 잘 뭉친다. 다른 원자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전자를 잘 끌어 당기는 특성을 가진 산소(O), 질소(N), 불소(F) 원자들이 수소(H) 원자와 결합하여 형성된 분자들의 집합체에는 수소 결합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서 한 개의 물 분자에 포함된 산소원자는 분자 자체내의 수소 원자로부터 전자를 끌어 당기기도 하지만, 이웃에 있는 다른 물 분자의 수소 원자까지도 끌어당겨 약한 결합을 하고 있다. 이런 약한 결합을 수소결합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물 분자끼리 모여 있으면 자연스럽게 수소결합이 형성된다.

 

수소 결합으로 인해서 물은 독특한 성질을 가진다. 한 예로 물의 끓는 점은 분자량이 같은 다른 액체에 비해서 월등이 높다. 일반적으로 액체의 끓는 점은 분자량이 비슷한 액체끼리는 거의 같지만 물은 수소결합을 하고 있어서 다른 액체에 비해서도 끓는 점이 상당히 높은 것이다. 많은 액체는 고체가 되면 부피가 줄어 든다. 그러나 물은 액체에서 고체가 될 때 오히려 부피가 늘어난다. 외부에 노출된 수도관의 물이 얼게 되면 수도관마저 찢겨 버리는 것을 보면 분자가 주위를 밀치는 힘이 무지무지 한 것을 볼 수 있다. 수소 결합을 하고 있는 물은 표면장력이 다른 액체에 비해서 유난히 크다. 물보다 밀도가 큰 물체들도 물의 표면장력이 크기에 떠 있을 수 있다. 컵에 물을 가득 채우고 조심스럽게 페이퍼 클립을 올려 놓으면 페이퍼 클립이 가라 앉지 않고 물위에 둥둥 떠 있는 재미난 실험을 할 수 있다. 연못에서 소금쟁이가 물 위를 걸어 다닐 수 있는 것도 물이 표면장력이 큰 액체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동전을 물 위에 띄울 수 있는 것도, 소금쟁이가 물 위에서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것도 물의 표면장력 때문이다. <출처: (cc) Roger McLassus(좌) Markus Gayda(우)>

 

수소결합의 영향: 물의 열용량, 비열, 증발열

물보다 열용량이 큰 물질을 찾기 힘들 정도로 물의 열용량(heat capacity)은 매우 크다. 열용량은 물질의 온도를 1oC 올리는 데 필요한 열로 물질의 양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열용량의 차이가 있는 두 종류 물질 일정한 양에 동일한 열을 가하면 열용량이 큰 물질의 온도 변화는 작지만, 열용량이 작은 물질의 온도 변화는 크다. 예를 들어 여름철에 햇볕을 받은 모래나 자갈은 뜨거워서 발을 디디기가 어렵다. 그러나 물은 온도가 그렇게 많이 올라가지는 않는다.

 

모래와 물의 양(무게 혹은 부피)이 다르므로 비열(specific heat capacity)을 사용하면 비교해 보면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비열은 물질 1 그램의 온도를 1oC 올리는 데 필요한 열(에너지)이다. 물의 비열은 4.18 joule/g oC 이며, 모래의 주성분이 되는 실리콘 산화물의 비열은 0.7-0.84 joule/g oC 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물 1 그램을 1oC 올리려면 4,18 joule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모래 1 그램을 1oC 올리려면 0.7-0.84 joule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같은 양의 열을 받았을 때 물의 온도가 왜 덜 올라가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고체 상태의 물인 얼음. 물은 액체에서 고체가 될 때 부피가 느는 드문 화합물이다. <출처: (cc) Saperaud at wikimeda.org>

물을 끓이면 기체인 수증기가 된다. 물은 증발열이 크며, 유사한 분자에 비해 끓는 점이 높다. <출처: (cc) Markus Schweiss at wikimeda.org>

반대로 물의 온도를 1oC 낮추려면 더 많은 열을 물로부터 빼앗아야 한다. 추운 겨울날 물 속이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도 주위의 물질에 비해 물의 온도가 상대적으로 덜 내려갔기 때문이다. 한편 식용 기름의 비열은 약 1.5-2.0 joule/g oC 로 물보다 작다. 그러므로 프라이팬에서 음식을 조리할 때 기름을 사용하면 물보다 신속하게 온도를 높이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물은 수소결합으로 인해서 다른 어떤 물질보다 증발열(heat of vaporization)이 크다. 액체 물이 증발하여 기체가 되려면 물 분자 간에 이루어진 수소결합이 끊어져야 하기에 수소결합을 하지 않은 비슷한 분자에 비해 열이 더 필요하다. 그러므로 물의 끓는 점 역시 100oC로 다른 물질에 비해서 상당히 높다. 수소 결합을 하지 않는 황화수소(H2S, 물 분자의 O 대신 S가 결합되어 있다.)의 끓는 점이 약 -60oC 인 것을 생각해 보면 물의 끓는 점이 얼마 높은 것인지 알 수 있다.

 

마시는 물, 음용수

마시는 물에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구리나 철, 칼슘과 같은 금속이온이 염이나 산화물 형태로 녹아 있다. 또한 공기 중에 있는 산소와 이산화탄소와 같은 기체들도 녹아 있다. 공기 중에 있는 기체들이 물에 녹고, 지각에 포함된 여러 종류의 원소들이 자연스럽게 물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중금속과 유해 유기물들은 정수 과정에서 걸러진다. 마시는 물은 고형 성분이 눈에 보이지 않아야 된다. 물을 마시려는데 무언가 떠다닌다면 왠지 꺼림칙하다. 물에 존재하는 고형 성분으로부터 일으키는 빛의 산란도를 측정하여 마시는 물의 혼탁도 기준을 정한다. 물에 빛을 비추고, 빛을 비추는 방향과 직각(90o)인 방향에서 물로부터 산란(scattering)되는 빛의 양을 측정하면 고형 성분의 양을 알아낼 수 있다. 만약에 물 안에 빛을 산란시킬 수 있는 고형성분이 없다면 빛의 산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고형 성분이 있다면 그것의 양에 비례해서 산란되는 빛도 증가할 것이다. 

물은 인간 체중의 70%를 차지하는 물질이다. 흔하지만 가장 신비로운 물질 중 하나다. <출처: GettyImage>


혼탁도를 측정하는 기기를 네펠로메터(nephelometer)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측정된 혼탁도가 0.5 NTU(nephelometric turbidity unit)이하인 물을 수돗물로 공급하도록 하고 있다. 

 

물에는 흔히 포함된 이온은 칼슘과 마그네슘이온이다. 물에 녹아 있는 칼슘과 마그네슘 이온의 농도를 측정하여 270 ppm(mg/L)을 초과하면 경수(hard water)라 하고, 60 ppm  이하가 되는 물은 연수(soft water)라 한다. 마시는 물의 기준은 약 300 ppm 이하 이다. 시판되는 생수 병에 부착된 물 분석표에는 연수 기준보다 더 작은 농도의 칼슘과 마그네슘 이온을 포함하고 있다. 유럽과 같이 석회암 지대에서 생산되는 물은 이온 농도가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물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의 성분도 중요하지만 더욱 염려되는 것은 병원균의 존재 여부일 것이다. 일부 독성이 강한 화학물질을 제외하곤 화학 물질로 오염된 물을 마시면 오랜 시간 후에 건강에 대한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박테리아를 비롯한 세균에 의해 오염된 물을 마시면 즉각적인 위협이 되고, 경우에 따라서는 치명적이다.

인간 체중의 70%가 물

인간 체중의 70%가 물이라는 사실은 신비스럽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비열이 큰 물이 주성분인 체액 및 혈액으로 인체가 채워져 있어서 한 여름의 뜨거운 햇볕에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으며, 추운 겨울의 한파에도 몸이 얼지 않고 버티어 낼 수 있다. 만약에 비열이 작은 액체가 주성분이 되는 혈액이나 체액으로 우리 몸이 채워져 있었다면 사막이나 극지방에서는 도저히 생존을 할 수 없었을 것이며, 지구의 기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전멸했을 것이다.

여인형 / 동국대 화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국대 화학과 교수이다. <퀴리 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를 썼고, <화학의 현재와 미래>를 대표 번역하였다.

이미지 gettyimages/멀티비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