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여행·Travel

20180304-루마니아 부쿠레스티(2)

지오마린 GeoMarine 2018. 3. 5. 16:05

2018년 03월 04일(일요일)


눈이 내린다.

눈으로 온 도시가 덮혀 있는데 오늘 아침 눈이내린다.

날씨는 춥다.
일요일이라 느지막히 카메라 하나만을 메고 거리로 거리로 나서본다.

다 비숫한 건물, 비숫한 풍경이 이어지고 방향감을 잘 모르겠다.

무작정 걷다보니 흰눈으로 가득한 공원에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고있는 가족들이 보인다. 추운 날씨인데도 아이들이 즐겁게 보인다. 한참을 벤치에 앉아 흰눈속에서 먹이를 쪼아 먹는 비들기들과 놀이터에서 놀고있는 가족들에서 이 곳에 먼 나라의 작은공원이란 걸 잊었다.

한 겨울에 우리들의 모습을 본 것처럼 정겹다.

한참을 떠나질 못했던 공원에서 목적지 없이 무작정 걷는다.












담보비타(Dambovita) 강


무작정 걷다 보니 저 멀리에서 커다란 [인민궁전Parliament Palace]이 보인다.

걸어들어 갔다. 시간대 별로 언어별로 가이드가 설명을 하는데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입장료는 35Lai인데 카메라 촬영을 하게 되면하는 촬영비를 25Lai를 별도로 받는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여건을 맞긴다음 출입카드를 발급 받아 영어로 가이드하는 팀에 합류했다.

입구 부터 심상치가 않다.

대리석 궁전이다.

바닥에는 붉은 카페트가 깔려 있고, 벽에는 명화와 인형상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천정에는 화려한 상제리에가 조화를 이룬다. 궁전이라는 이름에 맞게 화려함의 극치를 잘 보여 주는듯 싶다. 원형극장, 회의실, 세미나실 등에도 사진으로는 다 담아 낼 수 없는 화려함이 시선을 멈추게 한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쿠가 부쿠레슈티에 짓도록 명했던 엄청난 대건축물인 의회 궁전보다 더 큰 발자취를 남긴 건물은 미국의 국방성뿐이다. 이 거대한 건물을 짓느라 부쿠레슈티의 역사적인 중심 지역 20퍼센트가 파괴되었고, 1984년에서 1989년에 걸친 루마니아 국민총생산의 30퍼센트가 여기에 소비되었다. 의회 궁전(이전에는 '인민의 집'이라 불렸다)이 지어지게 된 발단은 1977년 지진이 일어나 심각한 피해를 초래하면서부터였다.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인 아르세날 언덕에는 큰 피해가 없었지만, 차우셰스쿠는 그곳에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설계 공모전을 열었다.

5년 후, 젊은 무명의 건축가인 안카 페트레스쿠가 선정되었다. 작업은 1984년에 시작되었다. 그 후로 5년간, 노동자들은 교대를 해 가며 하루 24시간 내내 애썼다. 건축 현장에는 항상 2만 명 이상의 일꾼이 상주했다. 비용이 아낌없이 사용됐고, 루마니아에서 생산된 자재만이 사용되었다. 그러는 동안, 루마니아 국민들은 사실상 굶어 죽어가고 있었다. 86m 높이이며 270m, 240m이다. 14층의 이 건물에는 3,200개의 방이 있으며,

3,500 여 톤의 수정으로 480개의 샹들리에, 1,409개의 천정용 전구와 거울을 만들었다. 70톤 이상의 철과 청동을 만들었으며 90만 cbm을 썼다. 이 중 95% 이상의 목재는 자국에서 충당하였다. 20만 m2의 양모 카펫와 문직으로 짠 커튼과 금은으로 장식한 벨벳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차우셰스쿠가 1989년 처형당할 무렵, 건물은 80퍼센트가 완공되어 있었다. 그의 사후 10년간 이 건물을 대체 어떻게 할까 하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오늘날, 이 건물은 콘퍼런스 센터이자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장소가 되었다. 2005년, 페트레스쿠는 건물의 심장부에 의회실을 완성하여, 마침내 21년간의 말썽 많고 논란이 분분했던 건설 과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차우셰스쿠가 남긴 것은 괴물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인상적인 대건축물이다." 대니얼 맥그로리, 『더 타임즈』 (2000년 5월 31일)[네이버 지식백과] 의회 궁전 [Parliament Palace]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2009. 1. 20., 마로니에북스)

인민궁전
















의회궁에서 내려다 보는 시가지


앞쪽으로 국세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