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천대유는 누구의 것입니까?
장마가 끝나고 대기는 미세먼지 하나 없이 청명한 하늘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더운 하루를 예고라도 하듯 햇살은 맹렬히 창가를 내리쬐고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우고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수없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많은 날을 분주하게 보내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기사를 쓰고 이런저런 인맥을 쌓으며 만든 사업이었는데 결국 노심초사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경제적 풍요 속에서 멋지게 살아갈 미래를 그리던 꿈에 한껏 부풀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모르겠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었을까?’
자조 섞인 생각들에 휩싸인 채 천천히 사무실로 들어섰다.
직원들은 출근하여 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업무에 몰두하고 있는 듯했지만 실은 뉴스 검색에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이가 없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뚫고 들어선 집무실에는 남욱과 정영학 그리고 유동규가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2021년 10월 08월 31일(날짜 확인) 아침 (주)화천대유자산관리의 대표이사 김만배의 사무실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울리던 스마트폰은 모두 꺼 놓은 상태였다.
동업자인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이렇게 네 명의 사내는 여전히 소파에 깊숙이 몸을 파묻은 채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고 무거운 침묵의 공간을 가르는 차디찬 에어컨 바람만이 네 사람의 피부를 날카롭게 찌르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혼란스러운 아침이었다.
테이블에는 ˂경기경제신문˃이 놓여 있었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냉커피 얼음은 벌써 다 녹아버렸고 긴 유리잔에 맺힌 물방울이 눈물처럼 애처롭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신문에는 “(주)화천대유자산관리는 누구 것입니까?” 라는 커다란 제목과 함께 대장동 일대의 사진이 메인 뉴스로 장식되어 있었다. 침묵의 시간이 한참 지난 후 이윽고 법조기자 출신인 김만배 대표가 남욱 변호사를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어떻게 될 것 같아?”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수사를 받을 만큼 받았고, 특별히 문제가 된 것은 없지 않습니까? 한번 지켜보시죠.”
처음부터 대장동 개발에 깊숙이 관여했던 남욱 변호사가 한숨을 몰아쉬며 나지막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만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이런저런 루머가 많이 나올 것이고,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될 만한 것이 있는지 다시 한 번 잘 살펴보시죠.”
이번에는 정영학 회계사가 한 마디 거들었다.
“앞으로 기자들도 많이 찾아오고,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생길 것 같으니, 언론인 출신인 김 사장님께서 잘 대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발주처인 성남시를 대변해서 강단 있는 업무 추진력을 보여줬던 유동규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제법 카리스마 있던 기세는 어디로 갔는지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입술이 작게 떨리고 있었고 턱을 괸 채 상기된 얼굴로 테이블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화천대유의 사무실에 흐르는 고요함이 열 여섯 명 직원들의 숨소리마저 삼켜버린 듯했다.
˂경기경제신문˃의 박종명 대표기자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자료를 받았다며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에 대한 내용을 보도했다. 며칠 전 박 기자가 사무실에 찾아와서 이런저런 내용을 세세하게 묻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뉴스로 보도되고 나니 이제 상황이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도 어렵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다시금 신문을 펼쳐 들고 박 기자가 쓴“이재명 후보님! 화천대유는 누구 것입니까?” 라는 제하의 기사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에서‘임금이 난다’는 전설이 있었다. 성남 대장동 개발(일명‘성남의 뜰’)에 참여하기 위해 김 모 씨는‘화천대유’(火天大有-하늘에서 대지를 비추는 밝은 태양)라는 부동산개발 자산관리회사와‘천화동인’(天火同人卦-잘못된 세상을 타파하고자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대동 세상을 이룬다)이라는 자회사를 2015년 2월과 6월 짧은 시간에 무려 7개사를 설립했다.
당시 설립된 지주회사인 (주)화천대유자산관리와 자회사인 (주)천화동인 1호에서 7호에 이르는 7개사는‘성남의 뜰’개발사업 공모에 참여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들로 개발사업 실적이 전무한 회사들이다.
그리고 이 회사들은 성남시에서 지난 2018년 수의계약을 통해 대규모의 대장동 택지를 계약하고 이 토지들을 대우건설 및 포스코 건설에 매각해 3,000억 원대의 수익을 냈던 회사였다.
또한 일반 시민들에게 분양을 하여 3,000억 원대의 수익을 올려 모두 무려 6,0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수익을 만들었던 회사였다. 최근에는 다른 토지를 하나투자신탁에 위탁해 시행을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수익도 천문학적 금액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실정이다.
개발사업 시행관리 실적이 전무한 신생 업체가 대규모의 개발사업의 토지를 수의계약으로 불하받았다는 사실 만으로도 각종 특혜의혹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으므로 이와 관련해 익명의 제보자는 “본지에‘성남의 뜰’이라는 회사가 대장동 사업으로 진행하는 개발사업에 ㈜화천대유자산관리가 참여하게 된 배경을 두고 그 이면에 더불어민주당 대권 후보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시 성남시장)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의혹이 입소문으로 떠돌고 있다”며 투고해 왔다.
제보자는“지난해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화천대유자산관리에 배당된 금액만 998억이며 성남의 뜰에서 얻은 지난 2년간의 배당 받은 금액은 642억 원에 달합니다. 이 중에 김 모 씨로 추정되는 최대주주에게 473억 원이 대여됐습니다. 과연 이 많은 돈을 김 모 씨는 어디에 사용했을까요?”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제보자는 “시민들은 이재명 후보가 몸통이 아니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이재명 후보가 내세우는 공정과 정의 그리고 성과의 깃발에 국민들은 환호합니다. 하지만 거짓을 진실로 현혹시켜 판단을 마비시킨다면 이것에 대한 폐해는 온전히 국민에게 돌아갑니다.
민주당이 더 망가지지 않도록 대선 후보로서 정직한 답변을 기대합니다. 민주당이 다시 집권하기 위해서는 대통령 후보의 용기도 필요합니다.”는 점을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제보자는“이명박 후보에게 BBK는 누구 것입니까? 라고 물었던 상황과 이재명 후보의“(주)화천대유자산관리는 누구 것입니까?” 라는 질문이 겹치지 않기를 바랍니다.”고 했다.
대규모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거져왔던 특혜와 부조리 문제에 비추어 볼 때,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서도 그러한 문제가 존재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으므로 당시 성남시장으로 있었던 이재명 후보를 직접적으로 겨냥하여 의혹의 시선을 끌어모으려는 것이었다. 그래서“2015년 2월에 설립한 화천대유가 대장동 개발사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는 과정 중에 특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내용의 이 기사는 결국 이재명 후보를 대장동 특혜 및 비리와 관련된 의혹의 중심에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박 기자의 기사가 나온 그날 오후 제1야당인 국민의힘이 발빠르게 성명을 발표했다. 국내 최고의 성공적인 개발사업 모델이라고 자랑해왔던 이재명 후보를 저격하는 성명이 발표되고 이를 받아 적은 언론의 기사들이 홍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 보도한 ˂경기경제신문˃ 박종명 기자는 뉴라이트에 속하는 극우 인사로서 자유총연맹 수원지부 영통2동 지도위원장을 지낸 적이 있고 2004년 수원시 의원 선거에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하여 낙선한 적이 있었다. 이때 열린우리당 수원시 영통구 국회의원이 김진표 국회의원이었는데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사이로 박 기자는 김진표 의원에 대한 우호적인 기사를 많이 썼던 인물이었다. 또한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이며 안산시 국회의원의 최측근인 송하준 경기도 의원과도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지난 경기도지사 더불어민주당 후보 당내 경선에서 현 정부의 실세로 알려져 있는 전해철 의원이 이재명 후보에게 패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전해철 의원은 공식 석상에서 송하준 의원의 입을 통해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이낙연 전 대표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전해철 의원과 김진표 의원은 서로 정치적 협력관계에 있으며 이들로부터 대장동 사업에 대한 자료를 제공 받은 박 기자가 기사화한 것을 극우 보수신문 조선일보가 받아 쓴 것으로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시에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이재명과 이낙연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진보진영인 민주당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없었다.
김진표 의원은 두 번이나 출마하여 낙선했고 진보진영의 거물인 유시민조차 낙선을 피할 수 없었던 곳이다. 민주당에게는 결코 쉽게 넘을 수 없는 지역이었다.
이토록 쉽지 않은 정치적 상징성이 매우 강한 지역에서 한 번도 국회의원을 해 본 경험이 없고 변방의 수장 격인 성남시장만 두 번 역임한 이재명 후보에게 현 정부의 실세인 전해철 의원이 경기도지사 후보 자리를 놓고 패배의 쓴 맛을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대통령 후보 자리를 놓고 민주당의 예비 후보로서 굳건한 지지세를 형성하고 있던 이낙연 후보가 이재명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뒤지고 있어 소위 반이재명파에게는 그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이재명에게 패한 경험이 있는 이들에게 대선 후보 경선에서도 패배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을 것이므로 자신들의 불리해진 상황을 역전시킬 필승의 카드가 필요했을 것은 자명하다.
이낙연은 서울대학교 법대를 졸업하여 일본 동경 특파원을 거친 동아일보 기자 출신이며 전남 영광군에서 4선 국회의원을 한 중진 정치인으로서 전라남도지사, 국무총리, 당대표 등을 역임한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사법고시 합격 후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로 성장했지만 정치의 중심부인 국회와 중앙정부 경험이 전혀 없던 가난한 소년공 출신의 이재명 후보에게 밀리는 것이 인텔리주의적 자존심에 비추어 보면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이 들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낙연 후보 입장에서는 당내 경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기만 하면 대통령 자리는 따논 당상이라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성남시장 시절 이루었던 최고의 치적 사업이라고 자랑하던 이재명 후보의 대장동 도시개발 사업이야말로 전세 역전을 위한 네가티브 전술로 활용하기 좋은 최고의 정치 이슈가 될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부동산 개발사업은 본래 엄청난 이권이 발생하는 사업이므로 이것을 파보면 무엇이든 문제가 드러날 것으로 보였으리라.
이재명은 사실상 당 내에서는 실제적인 기반을 갖고 있지 못해 정치적 지지 기반이 매우 약했다. 게다가 그처럼 어린 시절부터 노동판에 내몰린 가난한 성장 배경을 갖고 있는 후보는 드물었으니 그야말로 매우 특이한 후보였다.
그는 1964년에 태어났다. 이재명의 본관은 경주 이 씨이며 고향은 경상북도 안동이고 현재 사는 곳은 성남시 양지마을이다.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다.
이재명의 최종학력은 대졸이지만 집안 형편으로 인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로 학력을 취득하였다. 2010년에 성남시장에 당선되었으며 재선에 성공하여 성남시장을 연임하였다. 그리고 2018년에 경기도지사에 당선하여 경기도의 수장이 되었다.
그는 5남 4녀의 형제 중 일곱째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그의 가족은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아버지가 노름에 빠져 재산을 모두 날리고 청소부 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초등학생 때 가족이 성남시로 이사를 하였는데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공장에서 일할 것을 강요한 아버지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포기하였다.
소년 노동자가 된 이재명의 어린 시절은 어두운 터널과 같았다. 10대 시절부터 염산과 황동 같은 화학 약품을 사용하여 목걸이를 만드는 열악한 공장에서 일을 하였고 붕산 땜질을 하는 공장과 고무 작업을 하는 공장 그리고 날카로운 함석을 다루는 공장 등을 다녀야 했다.
고약한 사장을 만나 월급을 떼이기도 했고 작업반장에게 구타를 당해 청각 장애를 얻기도 했다. 게다가 프레스에 왼쪽 손목이 끼어서 관절이 으깨어지는 큰 부상을 입는 일도 있었다.
이 사고로 인해 장애 6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아 군복무 면제를 받았다.
어린 마음에 고졸이 되면 작업반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시작한 것이 공부였다.
이때 락카칠 작업을 자원했는데, 밀폐된 곳에서 남몰래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벤젠 냄새를 너무 맡아서 후각을 잃게 되었다.
어머니도 고생이 많았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막걸리 장사를 했다.
어린 이재명의 월급 8만 원과 어머니가 번 돈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빠듯했다.
그러한 궁핍한 삶에 시달리던 그는 17살이 되던 해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 무렵 그의 인생 전환의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중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고등학교 검정고시에도 합격한 후, 1982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게 됨으로써 이재명은 소년 노동자에서 법대생의 신분이 되었다. 성적이 좋아 학교에서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 용돈까지 지원받으며 다닐 수 있었으니 단숨에 인생 역전이 된 것 같았다.
공부에 자신감을 얻은 이재명은 다른 가족도 공부하도록 도왔다. 셋째 형을 설득하여 공부하게 했고 중앙대에서 받은 생활비를 쪼개서 형의 학비에 보탰다. 그 결과 형도 등록금 전액과 생활보조금을 받는 장학생으로 건국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셋째 형은 공인회계사로 일을 하다 세상을 일찍 떠났는데 그 형과의 불화가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다. 잘 알려진 욕설 파문의 주인공이 바로 그 셋째 형이다.
시장 당선 후 셋째 형이 이런저런 청탁을 하였는데 이재명은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계속되는 전화 청탁에 전화를 받지 않자 돈을 안 준다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하였고 십년 가까이 인연을 끊었던 어머니를 찾아가 ‘동생에게 전화하라’고 협박을 하였다. 집과 교회에 불을 지르겠다며 난동을 부리는 통에 하는 수 없이 전화 연결을 해 주었는데 급기야 전화상으로 두 형제가 심하게 다투게 되었다. 이때 통화 내용을 녹음을 한 것을 가지고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전달한 것이 두고두고 이재명의 발목을 잡게 되었던 것이다.
형은 국정원 직원을 만나곤 했는데 동생을 간첩으로 몰며 “종북간첩 시장 퇴진”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급기야 형 부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패륜의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형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험한 말을 하며 살해 협박을 하였고 형수는 그런 형의 폭언에 대해‘철학적 표현’을 한 것일 뿐이라며 어머니와 가족들을 능멸했다. 결국 어머니는 법원에 접근금지 명령 신청을 하였고 경찰에도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어느 일요일 어머니가 예배보고 있던 교회에 불을 지른다고 위협하여 경찰 보호를 받으며 집으로 귀가했는데 경찰이 집을 비운 사이 형 부부가 어머니 집에 들이닥쳐 살림을 부수고 어머니를 폭행했다. 겁에 질린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나중에 구속된다는 말을 듣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선처를 호소해 벌금 500만 원으로 무마된 일도 있었다. 가난에서 비롯된 이재명의 고난은 그렇게 가족들의 불화로 더욱 심화된 셈이었다.
사법연수원 시절에 노무현의 강연을 듣게 된 이재명은 인권변호사로 살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사법연수원 상위권 성적에 들면 대개는 판사나 검사의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이때 들었던 강연의 영향이 컸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재명은 그때의 결심대로 성남에서 인권변호사로 시작하여 시민운동가와활동을 거쳐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로서 행정가의 자질을 입증해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대통령이 되어 국민의 삶을 개선시키겠다는 포부를 안고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서게 된 것이었다.
제대로 정치적 기반도 갖추지 못한 변방의 행정가 출신이 대통령 후보가 되고자 출사표로 던졌으니 주류 정치인들의 눈에는 달갑지 않은 존재로 보였을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삶과 순탄치 않은 가족사는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보내는 조롱과 멸시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모든 이력이 정치적 공격의 대상으로 이용될 때마다, 그에 맞서 홀로 뚫고 가야 하는 외로운 처지가 정치 기반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재명 후보가 성공적인 치적으로 여겨왔던 성남시 대장동 도시개발 사업은 당내 주류들을 포함한 정치적 반대편의 눈에는 잘만 사용하면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좋은 패로 보였고 더욱이 그것이 그의 치적 사업으로 굳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제보를 받고 작성된 기사가 신호탄이 되어 언론의 집중포화가 시작되었고 야당은 물론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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