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장동 게임
2010년 7월에 치뤄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뜻밖에도 민주당 이재명이 성남시장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대장동 개발사업이 공영개발에서 민영개발로 변경된 점을 지적하며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을 공영방식으로 개발하여 개발 이익을 시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것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였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LH공사가 공공개발사업으로 추진하던 것을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적극적인 개입에 힘입어 민간개발방식으로 전환되었던 사업이었다.
이재명의 시장 취임 이후, 성남시는 민간개발사업의 주체였던 씨세븐의 사업제안을 반려하고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의한 공영개발 방식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였다. 이를 위해 성남시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타당성 조사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민간개발 사업으로 확정짓기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던 남욱을 비롯한 씨세븐의 자문단은 맨붕에 빠졌다. 민간개발방식의 다양한 제안과 전방위의 로비에도 이재명은 요지부동이었다. 믿을 데라고는 한나라당이 과반수가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성남시의회밖에 없었다. 김만배와 남욱은 의원들을 만나 끈질기게설득하였고 성남시의회는 이재명의 시정에 대해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방식으로 그들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이재명은 움직이지 않았다.
2010년 11월 성남시의회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의견 청취(안)˃ 제출안을 부결시켜 버렸고 관련 설명회에 대해서도 세 차례씩이나 거부하는 등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각각 한 차례씩 심사를 보류하였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2011년 3월 17일에 이르러 성남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한 공공개발방식을 심의 의결하였다. 그리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취임 2주년이 되던 해인 2011년의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제1공단 부지는 단 한 푼도 시민혈세 부담 없이 도심공원으로 조성하겠습니다. 방법은 추진 중이던 대장동 지역 30만평의 개발사업을 공영개발로 전환하여 그 개발이익을 성남시가 확보하고 올해 개정된 관계 법령에 따라 제1공단과 대장동 구역을 단일사업 구역으로 묶어 결합개발로 시행하여 시민 세금 부담이 전혀 없이 (제1공단을) 공원화하고 대장동 지역 개발이익 대부분을 환수하는 2중의 효과를 얻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성남시의회는 성남시가 공공개발을 위해 제출한 ˂대장동 공공개발을 위한 지방체 발행 계획안˃과 ˂성남시 도시개발공사 설립안˃에 대한 반대의견을 냈다. 그리고 11월 27일에는 성남시의회의 34석 가운데 18석을 차지하고 있던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의 반대로 ˂대장동 공공개발 관련 조례안˃이 부결되어 버렸다.
이로 인해 성남시와 성남시의회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사사건건 부딪쳤다. 지루한 공방전은 계속되고 물러설 수 없는 대립이 끝없이 이어졌다.
성남시는 대장동 사업 추진 일정표를 작성하고 대장동 SPC 설립 및 출자방안에 대해 검토하여 의회에 보고했다.
부산저축은행을 필두로 한 저축은행 사건에 대해 수사가 마무리되고 어느 정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자 이강길은 씨세븐을 되찾기 위해 남욱과 잦은 언쟁을 벌였다.
돈 한 푼들이지 않고 손에 넣은 사업권을 남욱이 그냥 넘겨 줄 리가 없었다. 이강길이 성남시 대장동에 나타나면 십여 명의 건달들이 자동차로 길을 가로막고 몸으로 밀어붙이며 이강길의 진입을 방해했다.
건달들의 완력을 동원한 이러한 협박과 방해가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는데 그것은 남욱에게 탄탄한 법조 인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강길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동안 가깝게 지내던 성남의 건달들 십여 명을 동원하여 대장동으로 밀고 들어갔다. 대장동에서 건달들이 지키려는 자와 되찾으려는 자의 진영으로 나뉘어 살벌하게 대치하였다. 몸싸움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자주 연출되었다. 그렇게 전쟁과 같은 대치 전선을 지속하는 가운데 2013년으로 접어들었다.
봄볕 아지랑이가 사라지고 여름으로 접어들던 어느 날 오전, 남욱이 이강길에게 연락을 했다.
“만나서 이야기 좀 합시다”
“그래 만나서 이야기 좀 하자”
이강길이 강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수원 끝자락에 위치한 리비돌 리조트 1층 커피숍에 이강길이 들어서니 남욱이 일행 서너 명과 미리 와 기다리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오는 이강길을 발견하고 남욱이 일어서며 손짓을 했다.
“이 사장님 이쪽입니다”
“오랜만입니다.”
남욱이 먼저 악수를 청하며 인사말을 건넸다. 건성으로 이강길도 악수를 하며 불만 섞인 목소리로 인사를 받았다.
“차암 오랜만입니다.”
남욱이 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소개를 하였다.
“인사하시죠. 홍광식 사장님이십니다.”
이강길도 익히 아는 인물이었다. 수원 남문파의 건달 오야붕이었다. 홍 사장이 앉은 채로 이강길에게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홍광식입니다. 그동안 이 사장님에 대해서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늘 이 사장님을 뵙자고 한 것은 그동안 내 동생들과 사장님 사이에 크고 작은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늘 여기 남욱 변호사와 대화로 좋은 합의점을 찾았으면 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다소 누그러진 어조로 이강길이 말을 받았다.
“네 자리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남욱 변호사를 만나서 대화로 잘 풀어보려고 했는데 그렇게 연락이 안 되더니 여기에서 만나게 됩니다..... 나는 다른 거 없습니다. 대장동 개발사업은 내가 시작한 건데 남욱 변호사가 가지고 간 것을 이제 원상복귀 해달라는 것뿐입니다.”
옆에 앉아 있던 남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홍 사장이 말을 이어갔다.
“저는 오늘 두 분이 잘 화해했으면 합니다. 서로 싸워서 해결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합의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한 쪽이 포기를 해야 끝날 일 같았다. 점잖게 시작한 대화는 급기야 격렬한 언쟁으로 발전했고 결국 감정만 상해져 자리를 파했다. 남욱과 이강길,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갈등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서울 남산에 위치한 하얏트 호텔 1층 라운지 카페에 이강길과 조 회장이라 불리는 사내가 마주 앉아 있었다. 조 회장은 이강길과 가까이 지내던 건달 출신으로 수원 남문파의 홍광식과 함께 남욱 변호사를 돕고 있었다.
“이 사장, 너 조심해라. 너를 대장동 사업에서 손을 떼게 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남욱이 하고 김만배 뒤에 박영수, 최재경, 곽상도가 있단 말이야. 너를 제거하려고 서울 중앙지검에 있는 강찬우 차장검사가 곧 수원지검장으로 온단다. 너 손떼게 하려고 난리다.”
그의 말은 차분했지만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 무게감은 그가 조폭 출신이어서라기보다 권력층이 동원된 위협에서 오는 것이었다.
“잘 알겠습니다. 형님”
이강길은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동차를 몰고 남산 길을 돌아 한남대교로 달리면서 조 회장의 말을 떠올렸다. 모든 걸 포기해야 할지 꿋꿋이 맞서 싸워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아 머리가 어지러웠다.
2012년 6월에 성남시의회는 ˂대장동 공공개발 관련 조례안˃을 다시 부결시켜 버렸다. 벌써 세 번째였다.
그해 12월 31일 성남시의회는 대장동 공공개발을 반대하며 집단으로 등원을 거부하고 2013년도의 시 예산안을 보이콧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시장은 2013년 1월 1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3천억 원 이상의 개발이익이 예상되는 대장동 지역을 공영개발로 전환하여 개발이익을 시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고 대장동 지역과 제1공단을 결합 개발함으로써 시민 세금 한 푼들이지 않고 최단기간 내에 제1공단을 본 시가지의 랜드마크가 되는 도심 자연공원으로 조성하겠다.”
2월에는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가 통과되었으나 계속되는 시의회의 반발로 100% 공공개발을 관철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5월이 되어서야 대장동 지역과 제1공단을 묶은 도시개발 구역지정 용역이 착수되었고, 9월에는 황무성을 성남시 산하기관인 성남시도시개발공사 사장으로 임명하였다. 그 동안 한나라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성남시의회의 갖은 방해로 인해 지체되다가 사장 임명과 함께 3년여 만에 출범하게 된 것이었다.
2013년 말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의 지휘 아래 경기남부경찰서는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수사에 본격적으로 돌입하였다. 성남시장, 성남도시개발공사, 성남시의회 등 전방위로 압수수색이 진행되었고 이강길, 남욱, 정영학이 차례로 불려갔다. 그러다 2014년 2월에 수원지검 특수부로 사건이 돌연 이첩되었다. 바로 조 회장이 언급했던 강찬우 검사가 수원지검장으로 부임한 시점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이강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불안감이 밀려와 그를 괴롭혔다. 결국 이강길과 남욱은 기소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결과는 달랐다. 2014년 말 이강길은 배임 횡령으로 징역 3년의 형을 확정받았으나 남욱의 경우에는 1심에서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리고 모든 회계서류를 관리하고 집행했던 정영학은 검찰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댓가로 참고인 조사만 받고 풀려났다.
이강길은 무혐의로 풀려난 남욱이나 참고인 조사만 받고 끝난 정영학의 뒤에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불현듯 상대할 수 없는 거대한 힘과 마주하고 있다는 두려움이 그를 엄습해왔다.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의 시행사로 주도권을 쥐고 물꼬를 텄던 씨세븐의 창업자 이강길은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그렇게 배제되었다. 그리고 남욱을 비롯한 씨세븐의 자문단이 이강길이 추진해 왔던 사업권을 통째로 손아귀에 쥐게 되었다.
2011년 성남시는 지방채 4,526억 원을 발행하여 대장동 개발사업을 100% 공영개발 방식으로 추진하는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1년 11월 새누리당이 과반을 차지한 성남시의회는 사업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을 이유로 지방채 발행 계획안을 부결시켰고 이명박 정부는 지자체의 부채율 등을 언급하며 지방채 발행을 승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당시 새누리당에서는 개발허가권을 갖고 있는 이재명 시장이 민간업체에 개발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면서 민영개발을 허가해줄 것을 요구하며 이재명 시장을 압박하고 있었다. 민영개발 허가를 압박하는 그들의 명분은 매우 빈약한 것이었다.
“원래 대장동 개발은 민영개발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민영개발회사의 이익이나 손해가 얼마가 발생하든 개발허가를 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요구 뒤에는 남욱을 비롯한 씨세븐 자문단의 활발한 로비활동이 있었음이 명확해 보였다. 이러한 압박에 대해 이재명 시장은 회의석상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의회가 승인하지 않으면 지방채 발행은 할 수 없는 것이만, 앞서 판교 개발 때는 왜 승인했습니까? 판교 개발과 대장동 개발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지방채 발행이 좌절된 이후 2012년에 성남시가 작성한 ˂사업검토 보고서˃에는 SPC를 통한 민관 합동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당시 성남시 도시개발사업단 내부 문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방채 발행 승인 가능성이 낮아 민간자본을 유치할 수 있는 SPC(PFV) 형태로 사업방식 전환이 필요하다”
도시개발구역 지구지정 만료일인 2014년 3월까지 실시계획인가 신청을 해야 하는데 중앙정부는 지방채 발행 심사 불가 입장을 통보해 왔고 성남시 단독으로는 사업비를 충당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후 2012년 4월 25일,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의 시의회 상정을 앞두고 유동규 당시 성남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수년간 표류하던 사업을 민관 공동 개발 방식으로 추진함으로써 성남시와 민간이 윈윈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겠다..... 특히 성남시는 입지가 좋아 과도한 사업만 벌이지 않는다면 주민에게 충분히 이익을 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민영개발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온 힘을 쏟던 씨세븐의 새로운 대표 남욱은 판교프로젝트 금융투자(PFV)회를 설립하여“앞으로 조례안이 통과되면 성남도시개발공사, 주민추진위원회와 협의해 빠른 도시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욱은 민간사업승인 신청을 받아 줄 것을 지속적으로 요청하면서 성남시의회의 의원들에게 열심히 로비 할동을 벌였다. 하지만 민관공동개발에 대한 이재명 시장의 확고한 의지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성남시는 민관공동개발 사업을 위한 추진 속도를 높여갔다. 성남시와 의회의 대립은 심화되었으나 2014년 1월에 황무성 사장의 취임과 함께 성남시 산하기관을 통합한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출범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바로 ˂대장동·제1공단 결합 도시개발 구역지정 추진˃을 발표하고, 도시개발 구역지정을 위한 주민공람과 의회 의견청취 절차를 진행하였다.
성남시와 도시개발공사는 4월 1일에 ˂대장동·제1공단 결합 도시개발사업 추진˃에 대한 협약을 수행하였고 5월에는 ˂대장동·제1공단 결합 도시개발 구역˃을 지정하였다. 협약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명시되었다.
도시개발구역 지정 목적으로는 성남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대장동 일원의 전략적 개발 필요성에 따라, 서로 다른 2개 지역을 하나의 구역으로 결합 개발하여 계획적이고 체계적인 개발로 지역주민의 숙원사항을 해소하고 지역균형 발전을 도모함으로써 대장동 일원의 개발이익을 환원하고 부족했던 성남 구시가지의 근린공원을 확보하여 지역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한다.
결합개발 사유로는 대장동 일원의 개발을 통해 얻어지는 개발이익 환원을 통해 성남시의 기존 시가지 중심 지역인 신흥동 역세권 지역에 부족한 근린공원 조성 재원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남욱, 정영학, 김만배, 배성준, 김용철 등은 손안에 거의 다 들어왔다고 생각했던 사업이 잘못될까봐 노심초사하였다. 수단과 방법을 모두 동원했지만 이재명 시장의 의지를 꺾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민관공동개발 사업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바꿀 수가 없었다.
법무법인 강남의 직원이 모두 퇴근한 늦은 시간에 여전히 불을 밝히고 있는 회의실에는 심각한 표정의 정영학이 자료를 넘기며 무언가 설명을 하고 있었다. 김만배를 비롯해 남욱, 배성준, 법무법인 강남의 대표변호사 박영수가 말없이 듣고 있었다.
“이강길이 구속되고 지금까지 대장동에서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던 기존 사업은 모두 정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민간개발로 쉽게 추진될 것으로 알았던 대장동 개발사업이 이 시장 때문에 민관결합 방식으로 추진한다고 합니다.
이제 새로운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곧 민자사업자 공고가 날 텐데 이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 동안 이강길이 한 지주작업이 완료되었고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받은 브릿지론으로 토지매입 작업도 마무리 된 상태입니다.
남욱 변호사님과 김만배 기자님께서 적극적으로 접촉하여 한나라당과 성남시의회에서 민간개발사업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이 시장을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민영개발은 이제 씨알도 안 먹힙니다.
이제까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긴 했지만 원점에서 새롭게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김만배가 말을 꺼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가?”
남욱이 무겁게 말을 받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많은 준비를 해왔습니다. 이재명 시장 때문에 맨붕에 빠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금에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민자 사업자 공모에 적극 참여해서 우리가 선정되어야 합니다.
이 시장이 당선되는 바람에 우리 몫이 많이 줄어들겠지만 그동안 우리가 준비한 것이 많은 만큼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우리가 참여해야 합니다.”
결심이 섰다는 듯이 김만배가 재촉하며 물었다.
“정 회계사, 자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
질문을 받은 정영학이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민자사업자 공모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사업자 설립요건으로 자본금 50억 이상, 금융기관 출자비율 5% 이상, 한시적으로 설립된 명목회사로서 존립기간 2년 이상을 갖춘 민간사업자에 한해 공모 자격을 준다고 합니다.
일단 먼저 법인을 설립해야 합니다. 저와 남욱 변호사님은 현재 재판중이기 때문에 대표를 맡을 수 없습니다. 정·재계, 법조계 등에 발이 넓으신 김만배 기자님께서 대표를 맞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입찰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금융기관과의 컨소시움 구성입니다. 그동안 많은 금융기관에 접촉을 했습니다만 부동산 경기가 워낙 침체되어 있어 선뜻 나서는 업체가 없습니다. 금융기관과 공동 컨소시움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모든 게 공염불입니다. 이 부분은 김만배 기자님과 박 변호사님께서 해결 방법을 찾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박영수 변호사님은 현재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이신 만큼 직접 참여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법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일단 그렇게 시작을 하지”
듣고만 있던 박 변호사가 테이블에 놓여있던 다 식은 녹차를 입으로 가져가며 짧게 한마디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사무실이 없는 만큼 입찰서류 준비는 이곳에서 했으면 합니다. 업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부탁이 있습니다. 입찰 준비를 하려면 자금이 필요합니다. 발주처와 접촉도 해야 하고 법인설립 자본금과 경비도 있어야 합니다.”
............
“얼마 정도가 있으면 되겠나?”
박영수 변호사가 조용하고 차분한 어조로 또 물었다. 정영학이 이미 준비된 듯 곧바로 대답했다.
“일단 5억 정도 필요합니다.”
............
“알았어, 내가 이곳 사무실에서 일할 공간을 마련하고, 초기자금 5억을 마련하겠네. 더 필요한 것이 있나.?”
............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우리 지인 몇 명을 직원으로 채용하게 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공모 입찰 조건을 우리한테 유리하게 설계할 수 있을 겁니다.”
............
“그래 추천할 사람은 있고?”
재차 이어지는 박 변호사의 물음에 정영학의 대답이 이어졌다.
“네, 지금 이곳에서 근무하는 정민용 변호사와 저와 같이 근무를 했던 김민걸 회계사가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다른 분도 의견이 있으신지요?.”
잠자코 듣고만 있던 남욱이 몇 마디 덧붙였다.
“입찰 컨소시움에 반드시 금융권이 참여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당장 하나씩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민간개발 사업자로 선정이 되면 곧바로 브릿지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인허가 비용과 운영경비도 필요하구요. 대략 삼사백억 정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김만배는 조용히 눈을 감고 그동안 쌓아온 인맥을 떠올리며 마땅한 사람을 추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입을 열었다.
“브리지론과 금융 컨소시움은 내가 조합을 해 보겠네. 떠오르는 사람들이 몇 있으니 한번 알아 보겠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으니 이제 제대로 결실을 맺어 보세.”
회의가 끝났음을 알리듯 정영학이 말하였다.
“앞으로 추진하면서 세부적인 사항은 지속적으로 공유해야 합니다.”
그날은 그들에게 새로운 판이 짜여지는 의미깊은 날이었고 대장동 사업을 둘러싼 그들의 야심은 다시 꿈틀거렸다. 많은 논의를 거쳐 다시 의기를 투합한 만큼 그들은 심기일전하여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박영수 변호사는 주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들과 한 배를 탄 몸이었고 함께 성공의 결실을 나눌 동반자였다. 이렇게 대장동 도시개발 사업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2015년 2월 성남시 도시개발공사는 민자사업자 공모를 위한 공고를 냈다. 그리고 3월에‘성남의뜰’컨소시움과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하였다. 사업추진 10여 년 만에 많은 논란과 우여곡절을 겪은 대장동 사업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정권이 바뀐 후에도 장기적인 부동산 침체를 타계한다는 명분 아래 분양권 상환제와 개발 부담금을 한시적으로 유예시켜 주면서까지 민영방식의 개발사업을 활성화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했었다. 그것이 한라당과 그들이 배출한 정부에서 일관되게 취해왔던 개발사업에 대한 정책방향이었다.
그런데 성남시는 대장동 개발사업을 민관공동개발 방식으로 추진하여 민간기업의 개발이익 부분을 줄이고 공공이익 부분을 늘려 지역주민에게 그 혜택을 돌려주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으니 대장동 민영개발에 온 힘을 쏟던 이들에게는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재명이 성남시장에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의도한 대로 대장동 개발사업은 민영개발로 이루어졌을 것이며 엄청난 수익이 민간기업과 그들의 조력자들의 수중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성남시의회에 의한 강한 반발과 압박에도 결국 이재명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결국 대장동 사업은 민·관공동방식을 적용하여 추진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렇게 대장동 게임의 규칙이 확정되었다.
부동산 경기침체기에 진행하는 도시개발사업인 만큼 이재명 시장은 수익의 확정이익 배분과 공원 등의 복합개발을 연계하여 추진하는 것은 확고했다.
이재명은 개발행위에 대한 인허가권을 잘 활용하여 개발사업자들이 독식하려던 개발이익의 일부가 시민들에게 공여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동안 지자체의 인허가로 진행되어 왔던 개발사업에서 이러한 방식의 사업추진은 전무했었다. 그동안 개발 사업은 인허가 비리로 얼룩지고 개발이권을 둘러싼 분쟁과 다툼이 난무하며 최종 승자가 모든 수익을 독식하는 구조를 갖고 있었다. 개발사업자로 선정된 민간사업자들은 기득권 카르텔에 영합하여 적당히 이익을 나누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대장동 도시개발 사업은 영화배우 출신인 한나라당 이대엽 전 성남시장 시절에 시작되었다. 비리 종합판이라는 오명으로 점철된 이대엽 전 시장 시절에 대장동이 공공개발사업에서 민영개발로 바뀌었다는 점은 그의 비리와 얽힌 이력과 무관하지 않으며 한나라당이 당시에 성남시의회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얽혀있음은 자명하다.
이대엽 시장 재임 시절 그의 친인척들은 세상을 얻은 듯 각종 비리와 횡령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친인척 일당이 승마연습장 허가와 택지개발에 개입해 2억여 원을 받아 챙기고 업무추진비를 받아 가짜 영수증으로 처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장 자신은 관사의 가정부를 공무원으로 속여 예산에서 임금을 주는 등 2억 5000만원의 시 예산을 횡령하기도 하였다.
그의 조카는 작은 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횡포가 심했는데 공영주차장 신축공사에 개입하여 6억여 원을 챙겼고 그 조카의 아내까지도 공무원 17명으로부터 인사 청탁 댓가로 1억 5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대엽 전 시장은 말썽 많던 호화청사를 짓는 과정에서 17억 원짜리 조경공사를 조카의 아들에게 맡기기도 하였다.
이 전 시장 일가 6명이 챙긴 뇌물이 8년 동안 21건에 15억 원에 이르렀다. 게다가 이 전 시장 가택 압수수색 시에는 뇌물로 받은 선물은 물론이고 달러와 엔화를 포함한 현금 뭉치가 쏟아져 나왔다. 5,000만에서 수백만 원대 양주가 수두룩했고 포장지를 뜯지 않은 고급 넥타이 300개, 명품 가방 30개가 발견되었을 정도였다. 시장과 친인척이 이와 같았으니 측근 공무원들도 덩달아 날뛰었다.
3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대엽은 국회 교통체신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10여 년 활동이 뜸했던 그는 2002년 4대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성남시장에 당선되었고 연임에 성공하며 8년 동안 시장직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그의 성공가도는 거기까지였다.
대장동 도시개발사업과 그가 임기 말에 추진한 호화청사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바람에 결국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하였다. 이때 그를 낙선시키며 당선된 새로운 시장이 이재명이었다.
대장동 개발은 한나라당 이대엽 시장 재임 기간인 2003년부터 시작되었다. LH공사가 공영개발로 추진하던 일을 이명박 정부 시절 한나라당의 세력들이 공모하여 민간개발로 만들었던 사업이었다. 개발수익의 극대화를 노린 민간기업의 로비 속에서 기득권 세력의 비리가 얽혀 만들어진 판이었다. 하지만 이대엽 전 시장의 부정부패로 인한 추락과 함께 이재명 시장이 등장하게 되었고 기득권 세력이 짜놓은 판이 뒤집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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