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지주작업과 선수들의 등장
경기도 성남시 대장동은 판교 신도시 남쪽 끝에 있으며 성남시 분당과 판교가 개발되면서 마지막 '노른자위 땅' 으로 불리던 곳이다. 따라서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다양한 방향의 개발 시도가 있었으나, 공무원들의 투기나 계획 유출, 공영과 민영 개발 계획안의 충돌로 인해 번번히 좌초되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이대엽 성남시장 시절이던 2004년 12월경 이 지역 128만㎡를 미니 새 도시로 개발하는 계획을 담은 ‘2020년 성남시 도시기본계획’을 세워 공개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도시기본계획 공개 후 성남시는 1년 동안 개발 행위 제한을 하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투기를 유발시키고 말았다.
국토부는 2005년 6월 성남시가 제출한 “2020년 성남시 도시기본계획”을 승인했고 곧이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대장동 공공개발사업을 결정했다. 이때 주택공사의 대장동 일대‘택지개발사업계획’이 유출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보상을 노린 다세대 주택 등 건축물 신축 계획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성남시 대장동 일대는 LH공사 공공개발에서 민간개발로 전환되기 전부터 개발계획 소문이 돌며 대부분의 토지가 팔렸다. 2005년 11월에는 토지수용 보상 수익을 노리고 불법으로 토지를 사들인 공무원과 업자들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토지 매입 후 미등기 전매로 거액을 챙겨 대장동 일대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던 이연택이 대장동 사업 로비와 청탁 협의로 구속되었고 그와 관련된 공무원 등 22명의 연루자가 입건되었다. 이후 계속된 수사를 통해 총 171 명이 입건되고 주택공사 택지개발사업이 잠정적으로 중단 되었다.
2005년 성남시 도시개발계획이 유출되자 많은 부동산 개발업체들이 성남시로 몰려들었는데, 종중 땅이 60%가 넘는 상황에서 이 토지를 확보하는 것이 관건이었다. 보수적인 종중의 땅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태에서 개발은 답보상태에 빠졌고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도시개발업체도 대장동에서 지주작업(토지매수)을 원활하게 추진하지 못했다.
20여 년간 부동산 도시개발 사업으로 잔뼈가 굵은‘이강길’에게 성남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은 먼 산 보듯 지켜볼 사업이 아니었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이강길은 대장동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 5개 종중 임원들과 교감을 이루고 있었다. 2008년 여름 성남에‘씨세븐’이라는 시행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지주작업에 들어갔다. 이때 도시개발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자 실제 부동산 개발에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던 정영학 회계사를 지인에게 소개받아 사업에 참여시켰다.
정영학은 68년생으로 서강대를 졸업한 후 30대 초반인 1990년부터 부동산과 관련된 일을 했다. 군대에서도 회계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학사장교로 복무했고 부동산 개발과 세금에 관련된 내용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여 회계 법인에서 근무할 당시에도 주로 도시정비사업팀의 팀장을 맡아 일을 했다. 2010년 이후로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실력가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회계사의 자질에 걸맞는 냉철하고 치밀하며 창의력을 갖춘 인물이었다.
대장동 종중 땅은 ‘우계 이 씨 성남파 종중’과 ‘전의 이 씨 전성군 평강공 평강 종중’의 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강길은 2009년 9월에 이르러 이 2개 종중과 도시개발사업을 할 수 있는 동의서와 부동산 매매계약서에 날인함으로써 지주작업을 완벽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도시개발 사업을 민영방식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전체 사업부지의 67% 이상을 확보하고, 토지 소유자들의 50%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종중 땅에 대한 문제가 해결되니 그 다음 일들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도시개발사업 중 가장 중요한 지주작업이 완료되자, 곧바로 자금을 조달받기 위한 금융사와 설계 및 인허가를 담당할 용역사, 그리고 공사를 맡을 시공사들을 선정하기 위한 업무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하였다.
금융 쪽과 관련된 업무는 정영학이 주도하였는데‘미래에셋증권’을 대주단으로 지정하고 박민호 부산저축은행 회장의 매제인 조우형을 컨소시움에 합류시켰다.
조우형은 부산저축은행에 관련된 업무를 주로 맡아 일했다. 씨세븐 대표 이강길은 부산저축은행에서 받은 1,155억 원을 포함하여 11개 저축은행으로부터 1,800억 원을 차입해 개발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토지매입을 순조롭게 진행해나갔다.
대장동 인근에 있는 경양식 레스토랑에서 이강길과 정영학이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강길이 정영학에게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만든 술잔을 건네며 말했다.
“정 회계사 덕분에 금융 브릿지론이 잘 마무리됐네, 정말 수고했어.”
“자! 술 한잔 하세.”
“정말 고맙네”
정영학이 두 손으로 술잔을 받아들고는 대답했다.
“아닙니다.”
“사장님께서 지주작업을 잘해 놓으신 덕분입니다.”
“모든 게 사장님의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겸손하고 예의 바른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몸을 왼쪽으로 돌려 술잔을 비웠다. 술잔을 다 비운 뒤 정영학이 다시 소맥으로 술잔을 채우는 사이 이강길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정 회계사”
“네?”
정영학이 술잔을 채우다 말고 엉거주춤한 동작으로 손에 맥주병을 든 채 이강길을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정 회계사”
“이제 지주작업도 다 된 마당에, 지금 성남시와 LH공사가 공영개발로 밀어붙이고 있는 걸 민간개발로 바꿔서 추진해야 우리가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지 않겠나?”
이강길은 부드러운 말투로 사업의 야심을 드러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남시와 정치권의 로비가 필요하네.”
“네, 그렇습니다.”
엉겁결에 정영학이 대답했다.
“그래서 말인데, 최근에 이 분야에 아주 적합한 사람을 소개받았네”
“부동산 개발과 PF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정치권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인데, 아마 자네와도 대학 동문으로 알고 있네.”
“조금 있으면 이리로 올걸세.”
스테이크를 안주 삼은 술자리가 무르익어가는 중에 키가 크고 마른 체구에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가 룸으로 들어서면서 정중히 인사를 했다.
“사장님 조금 늦었습니다.”
이강길이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청했다.
“아이쿠 어서오세요. 이렇게 이곳까지 오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이쪽으로 와서 앉으세요”
반갑게 맞이한 이강길이 그에게 정영학이 앉아 있는 옆자리를 권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정영학에게 인사를 시켰다.
“자, 인사하지 내가 조금 전에 이야기했던 남욱 변호사네.”
정영학과 남욱은 서로 악수를 하면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정영학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대단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아니 무슨 말씀을요.”
“정말 대단한 분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대학 동문이시라고... 정말 반갑습니다.”
남욱이 정영학의 인사에 답인사를 나누고는 자리에 앉았다. 정영학과 남욱은 그렇게 만났다.
LH공사는 대장동 개발사업을 따내기 위해 1년 가까이 공을 들였고 2008년 12월 30일과 이듬해 2009년 3월 30일에 지정 제안서를 공식으로 제출하였다.
성남시가 ˂개발 타당성 용역 연구˃가 진행 중이라며 반려하자 7월 29일 한 차례 더 지정 제안서를 냈다.
그해 9월에 LH공사가 수용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성남시에 제안을 하였고 성남시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주민의견 청취 과정을 거쳐 공람공고가 끝이 났다.
성남시와 LH공사에 의해 공영개발로 추진되던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이 민영개발로 추진되도록 바꾸는 과정에서 남욱 변호사가 정관계 로비를 주로 맡았다. 남욱은 씨세븐의 이강길 대표에게 로비 비용으로 15억 원을 요구했다.
당시 성남시를 지역구로 둔 국토위 소속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던 신영수의 친동생이 LH공사 담당자였는데, 남욱은 그에게 "민간개발로 바꾸도록 도와 달라"는 청탁 비용으로 2억 원을 건넸다. 이후에 이 LH공사 담당자는 구속되어 2년 형의 실형을 선고 받게 된다.
남욱 변호사는 8억 3천만 원을 사용한 것과 관련하여 변호사법 위반과 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기소되었으나 1심에서 무죄를 받았으며, 항소심에서 담당 재판장인 최재형 부장판사가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여 무죄가 확정되었다. 이때 남욱의 담당 변호인이 박영수 변호사였다.
LH공사는 각고의 노력 끝에 대장동 개발사업의 공공개발사업자로 선정되었으나 LH공사가 공람 절차를 시작한 지 불과 이틀 뒤에 한국토지개발공사와 한국주택공사가 한국주택토지공사(LH 공사)로 합병되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합병된 LH공사 출범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10월 7일 “오로지 스스로 경쟁해야 한다.”는 말을 통해“민간 기업이 이익 나지 않아 일하지 않겠다고 하는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이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이지송 당시 LH공사 사장은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민간과 경쟁하는 부분은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LH공사는 진행 중이던 개발사업을 철회하는 방안을 검토하게 되었고 대장동 도시개발사업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결국 LH공사는 2010년 6월 8일에“LH공사 주도로 공영개발을 하지 않는다.”고 발표하면서 대장동 도시개발사업과 관련해서는 재정난으로 인한 사업구조조정을 명분으로 내세워 사업 포기를 성남시에 통보하였다. 공영개발을 통해 얻게 될 개발이익이 적어도 3천억 원에 이를 것이 예상되던 성남시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을 LH공사는 이렇게 뜬금없이 포기하였다. 결국 이강길이 의도한 대로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은 100% 민영개발 사업으로 방향을 틀어 정리 되었다.
이강길이 운영하는 씨세븐에 의한 지주작업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고 미래에셋증권을 대주단으로 세움으로써 저축은행 컨소시움에서 받은 대출금으로 나머지 토지 매입 작업이 순롭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성남시와 LH공사가 공영개발로 추진하던 것도 민영개발로 전환되었으니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사업 인허가를 위해 정영학 회계사와 남욱 변호사가 열심히 움직였으며 이런 와중에 정영학 회계사로부터 알게 된 YTN의 배성준 기자가 행정기관과 법조계 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지위를 이용해 도움을 주게 되자 사업은 순풍을 받은 돛배와 같았다.
2010년의 해가 바뀐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씨가 몹시 추운 2월 어느 날, 배성준 기자가 자기 선배라며“머니투데이”소속 김만배 기자를 사무실로 데리고 와 소개해주었다.
김만배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한국일보사 공채 기자로 입사한 뒤 일간스포츠와 민영통신사 뉴시스에서 근무하다가 머니투데이 사회부 법조팀장을 거쳐 부국장에 오른 인물이었다. 그는 2006년 한 해에만 해도, 현직 고등법원 부장 판사가 사법사상 최초로 구속되었던 법조브로커 사건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론스타 수사, 그리고 검찰 간부들과 감사원 고위직 공무원이 연루된 김흥주 게이트를 단독 보도할 만큼 탄탄한 법조계 정보망을 갖춘 실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2007년 머니투데이 법조팀장이었던 당시 한국일보 법조팀장 김영화 기자와 함께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BBK 취재 파일˃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하게 된 법조인들을 보면 직·간접적으로 김만배의 넓은 법조 인맥과 대부분 일치한다.
이렇게 정영학, 남욱, 배성준 그리고 김만배는 자연스럽게 씨세븐의 자문단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씨쎄븐 자문단으로 활동하게 된 네 명은 자주 만났다. 씨세븐의 대표는 이강길이었지만 그와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 이들은 자기들끼리 따로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스스럼없이 이야기 나누곤 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이들은 대장동 인근에 있는 남서울 컨트리클럽에서 만나 서로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고는 라운딩을 시작했다.
“이렇게 좋은 날 같이 라운딩하게 돼서 너무 좋습니다.”
“이제 서서히 더위가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다들 그 동안 별일 없으셨죠?”
완연한 초록을 드러내기 시작한 골프장 잔디의 향긋한 풀 내음이 기분을 들뜨게 만드는 것 같았다. 서로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푸른 잔디 위를 걸으면서 남욱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생각지도 않게 이재명 시장이 당선됐어요?”
“그동안 우리가 그렇게 어렵게 해서 민영개발로 만들어놨는데 모두 공염불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게 말이야.”
“그래도 성남시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건 아직 한나라당 의원들이라 이재명이 아무리 그렇게 밀어붙여도 그리 녹록지는 않을 걸세.”
정보에 밝은 김만배 기자가 천천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받았다.
“그리고 형님”
언제부턴가 남욱은 김만배 기자를 형님으로 불렀다.
“지주작업도 잘 됐고, 브릿지론으로 토지매입 작업도 순조롭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린 고생만 하고 이강길 사장한테 모두 상납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이 사업을 우리 것으로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남욱이 야심을 드러냈다. 그들 중 제일 나이가 많은 김만배가 모르는 체하며 남욱을 쳐다봤다.
“무슨 좋은 방법이 있어?”
“그건 정 회계사가 여러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형님은 지켜봐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앞으로 형님께서 할 일이 많을 겁니다.”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는 2009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대장동 개발사업의 추진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전문가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이들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장지구 외에도 민관 합동으로 추진되는 다른 공영개발사업에 투자자나 사업자를 선정하는 심의평가자로 참여하곤 했는데 지난 2013년 11월에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설립된 이후 첫 공영개발사업으로 추진한‘위례신도시 공동주택 신축사업’에 가족 명의로 직접 투자하기도 했다.
위례 사업의 자산관리회사와 투자사의 법인 등기부등본에 남욱 변호사의 아내인 정시내 MBC 기자와 정영학 회계사의 가족이 이사로 등재되어 있었다. 이들은 이렇게 대장동 개발의 축소판으로 불린 위례 사업에서도 수십억 원대의 이익 배당금을 챙겼다.
그리고 정 회계사는 2014년 2월에 의왕시 장안지구 도시개발사업 민간사업자 선정 과정에 심사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도시개발사업에 관한 한 국내 최고의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졌다. 정영학은 의왕도시공사 50%+1 주와 민간사업자 50%-1 주의 지분율로 구성된 특수목적법인(SPC)을 만들 때, 성남시도시개발공사의 성남의뜰과 같은 구도로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관여하였다.
그리고 대장동 도시개발 문제가 언론에 보도되기 전인 2021년 8월경에 안양도시공사가 박달 스마트밸리 조성사업의 민간사업자 공모를 할 때‘엔에스제이 홀딩스’라는 업체가 참여 의사를 밝혔는데 엔에스제이 홀딩스가 바로 화천대유 자회사로서 남욱이 만든‘천화동인 4호’의 회사명만 바꾼 업체였다.
결국 안양도시공사는 대장동 도시개발사업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자 유사한 사업방식으로 추진했던 민간사업자 공모 절차를 11월 16일 취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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