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나의 생각

산불의 주범

지오마린 GeoMarine 2025. 3. 27. 11:32
1.
2016년 이스라엘에 대형 산불이 났다.
총리 네타냐후는 음모론에 불을 지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인이 일부러 불을 저질렀다며 엄중한 처벌을 하겠다고 야단을 피웠다.
당시 산불이 난 곳은 대부분 소나무숲이었다.
2021년 이스라엘에 또다시 대형 산불이 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충격적인 비밀이 드러났다.
소나무숲이 불타자 그동안 가려졌던 테라스 형태의 공간들이 드러난 것이다.
바로 이곳에 예전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살았다는 증거였다.
아래 사진에서 보다시피 과거 팔레스타인인들은 저렇게 계단 형태의 경사에 올리브나무를 심고 살았다.
조상 대대로 그들은 올리브와 땅의 가치를 존중하며 살아온 터였다.

바로 그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대대적으로 추방한 나크바 이후, 이곳에 다시 돌아오지 못하도록 유럽 소나무를 심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나무 심기는 20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다.
"사막에 꽃을 피우자"는 시오니즘의 구호 아래 유럽 소나무, 그리고 호주에서 들여온 유칼립투스를 심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고 소나무와 유칼립투스를 심어 그들의 땅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하필 왜 두 나무였나? 생장이 빨랐다.
또 물을 많이 흡수했다.
우물가와 식수원에 두 나무를 심어 물을 말리기 위해서였다.

여기에, 소나무는 끊임없이 잎을 떨어뜨린다.
산성물질을 내뿜는 솔가루들이다.
그래서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
팔레스타인 목동들이 다시 돌아온들 양을 먹일 목초가 없다.
버틸 재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오늘날, 이것이 이스라엘에 소나무와 유칼립투스가 많은 이유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소나무는 송진 등 전체의 20%가 오일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말 그대로 화약고다.
또 유칼립투스는 애초에 호주에서 산불과 함께 진화한 수종이다.
오일 에어로졸을 주변에 내뿜으며 산불을 유혹하다가, 산불과 함께 번식하는 수종이다.
다른 식물들이 다 타죽었을 때 가장 빨리 발아하고 다른 식물이 못 자라도록 타감 작용을 하는 놀라운 수종이다.
따라서 기후위기가 심화되는 과정에 소나무와 유칼립투스는 산불의 도화선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스라엘에서 산불이 크고 자주 일어나는 이유다.
얼마나 역설적인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해 소나무를 심었는데, 이제 기후위기 시대에 소나무로 인해 산불 재난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깨알처럼 음모론을 퍼뜨리는 저 제국주의자들의 파렴치를 보라.
2.
라틴 아메리카에서 산불이 가장 많이 나는 곳은 칠레다.
왜 그런가? 신자유주의와 관련이 있다.
민주사회주의 아옌덴 정부를 쿠데타로 궤멸시킨 피노체트는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미국 신자유주의 이론가 집단인 '시카고 보이즈'의 실험실을 자처했다.
가장 먼저 시범적으로 한 것이 임업 사업이다.
무슨 나무를 심었냐,
바로 소나무를 심었다.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그것을 미국과 유럽으로 수출할 요량이었다.
공공재정을 털어 단 두 개의 임엄 기업에 쏟아붓고, 그 기업들은 닥치는 대로 소나무 플랜테이션을 만들었다.
자, 점점 건조 고온의 상태가 심화되면서 칠레에서 산불이 어디에서 나냐면, 대부분이 소나무 플랜테이션이다.
여기에 뒤늦게 조성한 유칼립투스 플랜테이션이 나란히 도화선 역할을 하는 것이다.
2년 전 칠레 과학자들이 왜 이렇게 칠레에 산불이 많이 나냐를 놓고 연구를 진행하다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소나무와 유칼립투스가 문제라는 것.
3.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녹색 자본주의는 열심히 탄소 배출권을 팔아먹는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아르헨티나에는 마푸체족의 땅이 있다.
그곳에 어느 날부터 소나무를 심는다.
그곳에 살던 마푸체족들은 조상 대대로 그 숲의 자생림과 함께 살아왔다.
버섯을 따고, 가축을 양육하고, 땅을 일궜다.
그런데 이제 소나무 때문에 땅에서 쫓겨난다.
소나무를 심으면 탄소배출권이 발급되고 돈벌이 시장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가장 많은 탄소배출권을 받는 기업이 자칭 명품 기업인 베네통이다.
전세계에 걸쳐 빨리 자라는 소나무와 유칼립투스를 식재하면서 탄소배출권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데, 다 이런 식이다.
원래 살던 숲과 사람을 내쫓고 빨리 자라는 소나무와 유칼립투스를 심는다.
탄소배출권을 팔아먹고 나면 소나무와 유칼리투스를 목재와 펄프 등의 상품으로 또 팔아먹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수종이 화약고라는 점이다.
기후위기라면서, 탄소배출권을 팔아먹으면서, 계속 산불이 나도록 방관한 채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지역 등 남반구에 소나무와 유칼립투스 플랜테이션을 구축하는 것이다.
당연히 산불은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한다.
4.
지금, 지구의 지도를 펴고 산불의 지도를 그려보라.
산불이 주로 어디에서 나는가?
소나무가 있는 곳이다.
유칼립투스가 있는 곳이다.
예를 들어 세계에서 유칼립투스가 가장 많은 곳 중에 하나가 포르투갈이다.
거대한 유칼립투스 플랜테이션이 형성되어 있다.
펄프 및 제지 산업 때문이다.
이곳은 산불의 핫스팟이 된 지 오래다.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이 세계 농촌을 쓸어버리면서 혼농업을 하던 지중해의 자급 경제를 파괴하는 바람에, 황폐화된 지중해 농촌에 지주들이 소나무와 유칼립투스 플랜테이션을 구축했다.
매년 그리스, 포르투갈 등 지중해에서 산불이 저렇게 극성을 피우는 이유다.
심지어 미국에 빽빽하게 자라 있는 북미 소나무는 산불 수종이다.
산불이 나야만 솔방울이 터져 씨앗을 발아시킨다.
애초에 산불과 함께, 산불 속에서 번식하기에 끊임없이 산불을 유도한다.
미국 산불이 소나무 군락에서 극성을 피우는 이유다.
요약하면 이렇다.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빽빽하게 단일 수종을 심어놓는 조림은 산불에 취약하다.
그런데 소나무와 유칼립투스는 수종 중에서도 산불에 가장 취약한 수종이다.
이 두 수종의 플랜테이션이 바로 지금 이 시대의 중요한 산불 도화선이다.
말하자면, 오늘날의 산불은 자본 축적 경로를 따라 일어난다.
자본을 축적하느라 본래의 생태 시스템을 망가뜨리고 단일 수종을 심어놓은 그 슬픈 플랜테이션을 따라 발생한다.
5.
박정희 시대 녹화사업부터 부단히 소나무를 심었다.
빽빽하고 균일하게. 6.25 이후의 민둥산들을 녹화해야 된다는 목적 외에도 시장성을 확보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애초에 생태적 목적이 아니었다.
오늘날, 산림청은 계속 소나무를 조림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소나무를 심으면 안 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산주들이 원한다며 계속 소나무를 심는다.
그러다 불이 나면 다시 예산을 따와 또 그 자리에 소나무를 심는다.
계속 산불의 도화선을 심는 것이다.
관료제의 관성과 더불어, 전 국토를 소나무 플랜테이션으로 가꿔 시장성을 유지하려는 저 끈질긴 성장주의 관성이 이처럼 터무니없는 짓을 반복하게 하는 힘이다.
덕분에 어제 오늘, 우리는 남한의 산하가 휴지처럼 활활 타오르는 지옥도를 보게 된 것이다.
산불은 복합 재난이다.
충적세가 끝나고 지금으로부터 11,000~13,000년 전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인간과 숲은 함께 섞여 살아왔다.
우리의 자유주의 환경운동가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순수한 야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시작되기 전, 대부분의 인류는 숲과 공존하며 서로의 지문을 찍어왔다.
홀로세가 깨지기 전까지 산불은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작용했다.
누가 불을 냈냐는 점화의 문제, 그리고 숲의 연료가 얼마나 부하되었는지의 문제. 그래서 호주, 북미,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의 슬기로운 선주민들은 관행소각과 부분 벌목 시스템으로 꾸준히 숲의 연료 부하를 막아왔다.
하지만 이제 기후위기로 인해 홀로세가 붕괴되면서 세 번째 기후위기 요소가 더해졌다.
따라서 오늘날 산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요소만 가지고는 설명이 어렵다.
오늘 당장만 하더라도 한국뿐 아니라 일본, 그리스, 미국 등지 등에서도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복합적이다.
고온-건조-강풍이라는 소위 '기후 채찍질' 현상 속에서, 누가 불을 점화했나, 그리고 산불이 어떤 연료로 불타올랐는가, 이렇게 세 가지 요소를 함께 들여다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화석 자본주의와 함께, 산림청은 이 산불 재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왜 이 나라에 산마다 도화선을 심어놓았는가? 왜 산불 연료를 축적하는 숲 가꾸기에 강박되었는가?
산불이 나면 그대로 놔둬도 된다. 한반도 기후대가 변했기 때문에 활엽수들이 알아서 자랄 것이다. 활엽수는 물기를 많이 머금고 있다. 산불이 난 곳에 한 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은 안다. 도미노처럼 타들어간 소나무, 그리고 그 산불이 멈춘 곳에 활엽수가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활엽수가 즉 방화벽인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이치를 무시하면서 왜 산림청은 한국의 땅에 온통 도화선을 심어놓았는가?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의 비판에 귀를 막아왔는가? 이제는 여기에 답을 내놓아야 한다. 책임을 져야 한다. 저 까맣게 타들어간 수많은 목숨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펌] 희일이송 Facebook, 2025.03.26.<iframe src="https://www.facebook.com/plugins/post.php?href=https%3A%2F%2Fwww.facebook.com%2Fleesongheeil%2Fposts%2F28935654996083011&show_text=true&width=500" width="500" height="748" style="border:none;overflow:hidden" scrolling="no" frameborder="0" allowfullscreen="true" allow="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picture-in-picture; web-share"></ifr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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