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65년 전인 1960년에 일어난 4.19 혁명은 당시 이승만 자유당 정권(현 국민의힘 근원)이 이승만 자신을 대통령에 당선시키고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한 투개표 조작을 하자 이에 저항한 학생들의 시위로 시작됐다.
당시 전체 국민 거의가 '대통령 이승만은 물러가라'고 원성이 높았다.
그야말로 '국민통합'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4.19 의거 기간 동안 학생 시민 등 비무장 시위대에 발포하여 185명이 사망하고 1천5백여명이 부상했다.
피를 흘리고 독재자 이승만을 권좌에서 쫒아냈지만 1년 후 1961년 5월 16일 일본군 출신 육군소장 박정희가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18년 장기독재, 박정희 피살. 이어서 1979년 박정희 경호장교 출신 보안사령관 육군소장 전두환 군사반란 1980년 전두환 광주시민학살 무단 독재. 1987년 민주화 운동 헌법개정, 김영삼 김대중 분열, 쿠데타 2인자 노태우 집권.
1993년 2월 김영삼 대통령 취임, 1993년 3월부터 5월까지 한국 사회 현대사 최초로 대대적인 군부 사조직 숙청, 군사반란 원천 봉쇄.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 2003년 2월 민주 정권으로 이양 성공 노무현 대통령 집권, 그러나 민주개혁 대실패, 그 반동으로 부패 기득권 세력 총집결 2008년 2월 이명박 집권에서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 박근혜 탄핵 파면까지 약 9년여 기득권 부패세력, 뉴라이트 역사 반동 파괴세력 공고한 체제.
박근혜 탄핵 중도 하차 이후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집권. 외교, 국방력 신장. 최저임금 상승시켜 기본소득 확충 촉발 등 민주화 저변 확대 노력, 그러나 인사 대실패 검찰총장 윤석열 다단계 쿠데타 성공 집권, 최악의 불의 무능 무도 윤석열 내란 군사동원 반란 획책, 국회 군사 동원 무력화 시도 실패, 검찰 정치검사 쿠데타 좌절,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 윤석열 탄핵 파면 확정, 윤석열 내란죄 재판 중 2025년 6월 3일 대통령 선거 예정, 이렇듯 4.19 혁명은 미완의 혁명인 상태다.
65년이 지난 2025년 4월 19일 오늘, 정치검사 윤석열 친위 쿠데타를 다행히 학생들도 시민들도 피를 흘리면서 내쫒지는 않았다. 시민들도 쿠데타 동원 군도 무력 자제 불복종 슬기로왔다.
그러나 아직도 내란 중이다. 윤석열은 직파면 확정됐지만 내란 재판은 정체 불명의 기득권 사법 카르텔 일원 판사 지귀연에 의해 내란 수괴 윤석열은 합법을 가장한 ‘탈옥‘에 성공했다.
이 재판은 민주주의 시민 국민들이 내란 수괴 윤석열 사법단죄 처형때까지 긴장을 요구하고 있다. 여전히 다시 말하지만 4.19 혁명은 미완의 혁명인 상태다.
오늘 역사의 4.19 정신은 민주주의 광범위하고 실질적인 실현을 경각으로 깨우치고 있다. 따라서 내란당인 국민의힘당 해체와 언론 개혁, 검찰 및 사법개혁 등 적폐청산은 치열하고 촘촘하고 단호해야 한다. 국가 내란 반란은 법에서 명시한 그대로 처리해야 한다. 윤석열 내란은 무기징역형으로 사회 소요 가능성을 남기면 안 된다. 반드시 사형 집행으로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 내란 반란 세력이 다시 기어나오지 못한다. 국가 민주주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차기 민주 정권은 이 역사의 현실에서 민주주의 당위의 역할을 해내야만 한다.

사진 - 4.19 의거 추념식 1960년 당시 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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