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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참나무의 기적

지오마린 GeoMarine 2025. 3. 28. 03:38

굴참나무의 기적

2017년 포르투갈에 거대한 산불이 일어났다. 포르투갈의 역사에서 가장 최악의 산불이었다. 50만 헥타르가 불타올랐고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전례없는 재난이었다.

고온과 강풍이 산불의 확산 조건을 만들었지만,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도화선을 제공했다. 화재가 진화된 후 산불의 경로를 살펴보니 정확히 유칼립투스 플랜테이션을 따라 불길이 번졌다.

포르투갈은 세계에서 가장 유칼립투스를 많이 심는 나라다. 펄프 산업이 발달돼 있어서다. 본디 지중해의 대표적인 농촌 풍경이란 참나무와 굴참나무의 숲이었다. 하지만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압력에 농민들이 떠나고, 지주들이 유칼립투스와 소나무를 단일 재배하면서 농촌 풍경이 완연히 바뀌게 됐다. 생장 속도가 빠른 유칼립투스가 포르투갈 전역으로 뻗어나가며 숲을 잠식해버렸다.

산불과 함께 진화해온 수종, 유칼립투스. 불이 나야만 더 많이 증식할 수 있는 수종.

2017년 프로투갈의 산불 재난은 이처럼 유칼립투스 단일 재배라는 생태 재난을 배경에 두고 있다.

그런데 페라리아 데 상주앙(Ferraria de São João)이라는 작은 외딴 마을에 기적이 발생했다. 유칼립투스 군락지를 따라 거의 모든 지역이 새까맣게 불탔는데 이 마을만 덩그라니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바로 조상들이 마을 주변으로 심어놓은 굴참나무 때문이었다. 200년 이상 수령의 아름드리 굴참나무들이 이 마을의 수호신이었고 방화벽이었다. 상수리과에 속하고 코르크 마개를 만드는 그 굴참나무다. 물을 잔뜩 머금은 이 활엽수는 마을을 두 손처럼 에워싼 채 불길을 막아냈던 것이다.

이 굴참나무의 기적은 곧장 입길에 오르내렸다. 왜 아니겠는가. 모두가 까맣게 타버린 와중에 혼자만 등대처럼, 희망처럼 멀쩡한데. 이 사건은 포르투갈 시민들에게 유칼립투스가 얼마나 위험한 나무인지, 그리고 예전의 포르투갈 농촌 풍경의 정점을 차지하던 참나무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다.

산불 발생 후, 굴참나무와 참나무에서 영감을 얻은 주민들은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산불로부터 마을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계속 회의를 거듭한 끝에, 만장일치로 '마을 보호 구역(VPZ)'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마을 주변 100m 반경에 내화성이 강한 토종 참나무를 심기로 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 소유에 대한 이야기들이 오갔고, 결국 마을 주민들은 '마을 보호 구역'을 공유지로 구성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포르투갈 시민들이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를 자처하며 이 마을에 몰려왔다. 그 공유지에 함께 나무를 심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굴참나무의 기적, 굴참나무의 교훈이다.

한국의 산림청은 지난 10년간 소나무 비중을 1.5배 더 늘였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국의 국토를 소나무 단일 지배 농장, 즉 소나무 플랜테이션으로 만들어놓고 또 그것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면서 끝내 오늘과 같은 비극적인 산불 참사를 야기한 산림청의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한다. 예산 잔치는 물론이거니와 소나무 묘목과 우드 펠릿 생산, 그리고 탄소배출권 발급 과정에서 산림청과 기업들이 맺는 저 지겹고 지겨운 돈놀이가 바로 이번 참사의 원인 중 하나다. 산림청은 병든 한국 자본주의의 전형이다.

우리는 저 굴참나무의 기적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심고, 우리가 사는 곳을 어떻게 공유지로 만들고, 또 누군가와 함께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 어떤 나무를 심고, 어떻게 생태계를 건강하게 구성해야 하는지. 저 참나무들의 푸른 힘을 보라.

부디 얼른 산불이 진화되고,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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